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7월

책 표지와 독특한 제목만 보고도, 얼마 전 참 재미있게 읽은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쓴 요나스 요나손의 새로운 소설임을 알아챘다. 이번에는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참 궁금해 졌고, 줄거리를 얼핏 읽어보니 이전 소설과 비슷한 부분이 많겠다 싶었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니 설정이나 유머코드등 비슷한 부분들은 있지만 또 확연이 다른 내용이기도 했다. 이번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살고 있는, 100세 노인보다는 더 더 어린 14살 소녀 놈베코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된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최대 게토의 분뇨 수거인으로 일하고 있는 놈베코는 어려서부터 곱셉이나 뺄셈등을 척척 해내는 등 수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하지만 글을 읽을 수는 없었던 그녀는, 옆집에 살고 있는 호색한 타보에게서 글 읽는 법을 배우게 되고 라디오를 들으며 소웨토 바깥에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후 안타깝게도 죽음을 맞은 타보에게서 다이아몬드를 훔친 놈베코는 이 곳에서 탈출하기로 결심한다. 걸어서 요하네스버그 중심가로 간 그녀는 우연히 자동차 사고를 당하고, 황당한 판결로 인해 차에 타고 있던 엔지니어의 하녀가 되어 핵을 연구하고 있는 연구소에서 일을 하게 된다.

생각보다 똑똑하지 못한 엔지니어에게 이따금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것들을 알려주며 보좌를 하고, 수년이 흘러 다시 스웨덴으로 도망을 가게 되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자기 손에 들어오게 된 핵폭탄 때문에 골머리를 알기도 한다. 이후 스웨덴에서는 놈베코가 이 핵폭탄을 처리해야 겠다는 일념 하나로 부터 많은 이야기들이 전개된다고 해도 과흔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들 중에서 만나게 되는, 그렇지 않은 인물도 있지만 지극히 정상이라고 보기 힘든 인물들이 나와서 상상치도 못한 엉뚱한 일들을 벌이기도 한다. (나라간의 이해관계라든가 실제 존재하는 인물들이 책에 등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여러 사건들에도 휘말리게 되지만 이 능력있고 당찬 놈베코는 늘 차분히 일을 수습하려고 고군분투 한다. 이 소설의 매력은 이 놈베코라는 캐릭터 자체에서 오는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나는 제목에서 뿐만 아니라 놈베코가 숫자에 강하고 수학에 강한 여자라 그런 능력들을 보여주는 일들이 많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런 부분은 앞부분에만 발휘되고 뒤로 갈 수록 양념처럼 아주 조금씩 사용되며 약해졌다. 뭔가 더 대단하고 큰 일을 할 줄 알았는데 그런 기대치를 채워주지 못한 이야기가 너무 아쉬웠다. 내가 전작 알란 할아버지의 그 좌충우돌 어디로 튈지 모르는 대단한 모험을 이 놈베코도 당연히 겪겠구나 하는 큰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뭔가 유쾌하고 즐겁다기 보다는 '이건 뭐지' 하는 물음표를 더 많이 달았던 것 같다.  그리고 새로운 인물들에 대한 소개는 좋지만, 그 인물들의 과거까지 너무 거슬러 올라서 다 설명하려고 하는 부분들이 많아서 지루한 부분들도 있었다. 정치적 견해가 너무 강한 인물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도 했었고...여러모로 전작에 비해 아쉬웠던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아무래도 다음 요나스 요나손의 소설을 한번 더 기대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