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주 - 진주를 품은 여자
권비영 지음 / 청조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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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비영 작가님의 책 <덕혜옹주>를, 그 당시 참 인상깊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조선의 마지막 황녀였던 덕혜옹주, 하지만 그 고귀한 신분과는 다르게 애처로웠던 그녀의 일생을 마주하면서 같은 여자로서 참 안타까웠었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덕혜옹주를, 그녀의 생을 알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 <덕혜옹주>의 권비영 작가님이 5년만에 선보이는 책이라고 해서 눈길이 갈 수 밖에 없었던 책 <은주>. 진주를 품은 여자라는 작은 부제까지 달려있는 이 책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지 참 궁금해 졌다.

 

이야기는 은주의 엄마가, 은주의 친구 성희의 엄마인 지숙을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다짜고짜 자신의 딸을 어디다 숨겼냐며 아침부터 집안을 헤집고 다니는 그녀를 보며, 지숙은 가출을 결심할 수 밖에 없었던 은주를 생각하며 가슴이 먹먹해 진다. 착하고 따뜻한 성품의 은주. 지숙과 다문화센터에서 이주민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일을 하며 그곳에서 만난 터키에서 온 에민을 사랑했던 그녀의 삶 이면에는, 부모로부터 당하는 참기 힘든 폭력의 그늘이 있었다. 그 폭력을 더이상 참지 못해 먼 곳으로 몸을 숨겼지만 다시 엄마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끌려오게 된 은주는 다시 한번 집을 나가기로 결심하고, 무작정 에민의 고향인 터키로 향하게 된다.

 

반복되는 부모의 폭력적인 모습들에 은주뿐만 아니라 나마저도 지치는 느낌이었고, 잠시 몸을 피했던 찜질방을 천국의 쉼터 같다고 표현하던 은주의 모습에서 그 동안 집에서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지 생생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처지 때문에 사랑에서조차도 조심스러웠던 그녀. 그런 은주가 다문화센터에서 만난 이주여성들에게 진한 동질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새 가족을 꾸려서 한국이라는 곳에 정착을 하긴 했지만 자랐던 고국을 그리고 두고 온 가족들을 그리워 하는 그녀들. 그와 반대로 가족들과 가까이 있지만 오히려 먼 곳에 있을지도 모를, 자신을 이해해 줄 진정한 누군가를 그리워 하고 있었던게 아닌가 싶었던 은주. 그녀들과 부모들의 공간적인 거리감이 먼 만큼 은주에게는 부모들과의 심리적 거리가 참 멀었던 게 아닌가 싶다. 공간의 가까움이 심리적 가까움을 뜻하지 않기도 하듯 함께만 있는다고 해서 가까운게 아니라는 것, 생각들을 느낌들을 공유할 수 있는 친밀한 관계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은주의 이야기가 주이긴 했지만 덧붙여 그녀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 마음을 터 놓을 수 있었던 지숙, 이주민 소피아와 준코, 은주의 엄마 아빠등 여러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집중되는 인물이 자주 바뀌고 시점의 변화들이 많다보니 조금은 어지러운 느낌이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자 해서 그 사연들의 농도들이 조금씩 묽어진 느낌이라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나는 은주의 이야기에 조금 더 집중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녀의 처지에 대한 구구절절한 사연보다는 무작정 떠난 터키에서 보낸 몇달간의 여행에세이 같은 이야기들, 여러사람들을 만나고 어떻게 그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성장했는지 등의 이야기가 많이 펼쳐지기를 바랬다. 하지만 그런 나의 기대와는 멀어져 나에게는 덜 와 닿았던 이야기 <은주>. 아무래도 작가님의 다음 작품을 더 기대해봐야 할 것 같다.

 

- 삶이란, 존재의 확인을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 행동하고 거미줄을 치듯 관계를

만들어 가는 일이다.   -p134

 

- "사람 사는 게 어디서나 비슷한 거 같아요. 사는 곳도 그렇고 사람의 신념이나

사는 방식도 대동소이하다고 봐요.

행복한 삶이 최종의 목표 아니겠어요? 행복의 척도가 다르기는 하지만 말이예요.

형은 이런 삶이 우스워 보일 수 있겠지만 공부 많이 했다고 다 행복한 건 아니잖아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말도 있긴 하지만 행복이 공부 많이 한 순서대로도 아니다 싶어요.

건강한 정신에 건강한 삶이 깃든다는 말을 나는 신봉하고 안분자족이란 말을

좌우명처럼 여기고 살아요.

    불행은 스스로 자초하는 것, 사람에 대한, 타인에 대한 이해는

내 마음의 깊이만큼인 것 같아요."     -p214~

 

-"그래. 인생에 확답을 할 일이 많지는 않지. 알 수 없는 게 인생이야.

마음이 실리는 대로 살아가야지.

       마음이 가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그것이 진정 내가 가고 싶은 길이라는

생각이 들게 되지"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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