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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안고 코끼리와 헤엄치다 ㅣ 오가와 요코 컬렉션
오가와 요코 지음, 권영주 옮김 / 현대문학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오가와 요코의 작품을 제일 처음 만난 게 된 건 <미나의 행진>으로 였다. 사실 그땐 작가가 누구였는지도 모르고 그저 누군가의 재미있다는 글 한줄에 책을 읽게 되었는데, 포치코라는 하마의 등에 타고 학교를 오가는 미나와 토모코 두 소녀의 소소한 비밀일기와도 같은 이야기가 참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제목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던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빌려왔는데, 초반의 몇 페이지 읽고 별로 흥미가 잃지 않아 그대로 반납. '이게 뭐가 재미있다는 거지??'라는 의문만 잔뜩 품게 되었는데, 우연히 다시 읽게 된 책은 루트와 박사가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수식들과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어 정말이지 읽지 않았다면 후회했을 정도였다. 만약 내가 다시 책을 읽어볼 생각을 안했더라면, 그때도 그 책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했더라면 아마 오가와 요코라는 작가의 이름과 책들은 내 머리속에서 지워져 버렸을 것이다.
비록 두권밖에 읽지는 못했지만 두권 모두 내 마음속에 좋은 여운과 느낌들을 남겨줬고, <고양이를 안고 코끼리와 헤엄치다>도 오가와 요코의 작품이라 무조건 읽고 싶었다. 하마를 타고 다니는 소녀, 소년과 수식으로 대화하던 박사에 이어 어떤 주인공이 어떤 특별한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를 들려줄지 사뭇 궁금해 졌다. 이번에는 한 소년과 체스가 그 주인공이다. 입술이 붙은 채로 태어났던 소년은 수술을 받고 정강이의 피부를 이식해 솜털이 자라는 입술을 가져서 그런지 몰라도 유독 과묵했다. 소년은 백화점 옥상에서 몸집이 커져 내려올 수 없게 된 코끼리 인디라와 집 벽과 벽 사이에 끼어 있는 소녀 미라를 상상 속 친구로 삼아 대화를 나누곤 했다. 그러다 소년은 우연히 멈춰진 버스에서 살고 있던 거대한 몸집을 지닌 마스터를 만나 체스를 배우게 된다. 한 대국에서는 리틀 알레힌이라는 이름을 얻고, 그 후에는 자동인형속에 작은 몸을 숨기고 계속 체스를 두게 된다.
커지는 것을 비극이라 여기며 스스로 몸이 성장하는 것을 멈추었지만, 체스와 함께 마음이 조금씩은 아주 조금씩은 성장해 가던 리틀 알레힌의 이야기는 특별하게 또한 잔잔하고도 소소하게 다가왔다. 리틀 알레힌이 마스터와 체스를 만나고, 다른 사람들과 체스를 두며 주위 사람들과 엮어가는 이야기는 마음이 아련하고 애잔하게도 만들지만 따뜻한 느낌이 맴돌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8x8 작은 흑백의 체스판 앞에 있는 그는 가장 자유로워보였고, 가장 그 다웠다. 하고 싶은 말들은 모두 체스판 위에 있다는 듯이 체스판 위에서 말들로 시를 그리고 음악을 연주한다. 진심으로 체스를 생각하고 말의 소리를 들으며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간다. 리틀 알레힌이 두는 체스는 참 오묘하고 심원한 바다와 같은 심오하고도 아름다운 경기로 묘사되어 있어서 나조차도 그가 두는 체스를 눈 앞에서 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체스를 둔 많은 사람들이 리틀 알레힌과의 대전을 생애 최고의 게임이라 단언하는 그 아름다운 체스의 궤적을 말이다.
체스와 리틀 알레힌의 조화가 썩 잘 어울려서 괜히 체스에 호기심이 일게 만들기도 하는 <고양이를 안고 코끼리와 헤엄치다>. 제목이 참 인상적인데다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는데, 책을 읽고 나서 보니 리틀 알레힌의 체스를 가장 잘 표현한 제목이 아닐까 싶다. 내가 체스에 대해서 제대로 알았더라면 리틀 알레힌이 그려내는 아름다운 체스의 운율들을 더 잘 느끼고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참 아쉽다. 이번에도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은 조금 더 몽환적이고, 신비로웠던 이야기~다음에는 또 어떤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지 작가의 다음 작품이 너무나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