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길 1,2

아버지의 길 1 - 노몬한의 조선인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10월

한 PD가 탈북자와 관련된 추석 시즌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호스피스에서 한 노인을 만나는 것에서 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처음에 폐암 말기의 노인은 시선도 마주치지 않고 입도 열지 않지만, PD의 일주일간의 노력끝에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놀랍게도 노인의 아버지는 바로 '노르망디 코리안'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는 한 장의 사진 속의 주인공이었다. '노르망디 코리안' 사진은 연합군 측에 잡힌 독일군 포로의 모습이 담긴 사진 중 한장이었다. 어떻게 조선인이었던 그가 전쟁의 한복판에 있게 된 것인지 숨겨져 있던 그의 험난한 인생이 펼쳐진다.


신의주에서 아들 건우와 단둘이 살아가고 있던 김길수. 그리 풍족하지 않아도 대장간에서 열심히 일하며 서로를 아끼며 살아가고 있었다. 아들의 생일이었던 어느 날, 평소보다 일찍 일을 마치고 돌아가던 길수는 스기타의 눈에 띄어 강제징집을 당하게 된다. 아들에게 한 마디 말도 전하지 못하고 끌려가게 된 그는 만주로 향하는 기차에 다른 징집병들과 함께 오르게 된다. 그렇게 23사단에 배정받아 생활을 하게 되고 전쟁의 최전방에서 일본군이 되어 싸운다. 그렇게 한바탕 전쟁이 치러진 후 패한 일본군을 뒤로 하고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를 수 없다고 판단한 길수는 탈출을 감행하게 된다.


처음엔 일본군에 징집되어 만주로, 탈출과정에서 소련군에게 포로로 붙잡혀 무서운 추위와 혹독한 강제노역이 기다리고 있던 러시아로, 소련군이 되어 싸우다 또다시 독일의 포로로, 노르망디로 와서 싸우다 또 다시 연합군의 포로로 잡혀 의도치 않게 수 많은 나라들을 전전하며 그들이 일으킨 전쟁들에 휘말릴 수 밖에 없었다. 그저 조선으로 돌아가 아들과 함께 살고 싶었을 뿐인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기위해 몸부림 쳐야 했다.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힘들어 보이는 그의 여정. 여정이라고 표현하기엔 너무나 혹독했고 계속 해서 생사의 갈림길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서 있어야 했던 그의 이야기는 정말로 애잔했다.


길수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길수의 아내 월화의 이야기, 같은 부대에 있었던 소년병 영수와 정대와 명선아씨의 사연많은 이야기들까지도 흥미진진하게 이어진다. 전쟁의 참혹함 앞에서 조마조마 하고 무슨 큰일이 또 벌어지지나 않을까 싶어 혼자 안절부절 하기도 하고, 함께 했던 사람들이 전쟁앞에서 쓰러져 갈때 나도 책 속 주인공들만큼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 가운데서 일본인들에게 유린 당할 수 밖에 없었던 강제징용된 조선인들의 모습과 말로만 듣던 위안부들의 참혹한 모습들등 역사속 사실들과도 마주할 수 있었다. 또한 세계 2차 대전이라는 거대한 역사 속 전쟁이야기들과 상황들도 잘 묘사되어 이 소설이 정말 '노르망이 코리안'의 진짜 이야기가 아닐까 싶을만큼 현실적인 느낌이었다.


역사를 증언하는 하나의 이야기이기도 했지만 그 험난한 곳에서도 꿈결에서 아들과 대화를 나누고 혼자 있을 아들을 더 걱정하는, 아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끼는 아버지의 진한 부성애가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모든 아버지들이 그러하듯 자식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그 애뜻한 마음이 참 눈물겹고도 눈부셨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참 아련한 느낌이 드는 것이 왠지 모를 여운을 많이 맴돌았다. 의도치 않게 점점 더 사랑하는 아들과는 멀어질 수 밖에 없었고, 계속해서 아들곁으로 가야한다는 일념으로 떠돌기만 했던 길수의 모습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다. 참 재미있게 읽었고 여러모로 읽기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소설 <아버지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