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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와 비밀의 부채
리사 시 지음, 양선아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도광제 재위 3년 째 되던 해에 태어난 나리는 야오족의 후손이며 마을에서 가장 흔한 이씨 가문의 일족이었다. 아빠와 삼촌은 부유한 지주에게 땅을 빌려 쌀,목화, 토란을 재배했고 여자들이 일하고 아직 시집가지 않은 딸들이 자는 전형적인 농가의 이층방에서 생활하며 자라났다. 6살이 되어 전족이 할 시기가 되자 전족을 시작할 길일을 정하기 위해 점쟁이를 불러 들였고, 점쟁이는 나리를 보고나서 중매쟁이를 함께 부르라고 한다. 중매쟁이는 나리의 발을 살피며 나리가 통코우 집안으로 시집을 갈 수도 있고 그녀의 운명이 집을 살릴 수도 있다는 말을 건넨다. 그리고 의자매와 달리 다른 마을에 사는 두 소녀가 평생 관계를 유지하는 라오통을 맺을 것을 제안한다. 시간이 지나 중매쟁이는 같은 날 전족을 시작한 설화를 나리의 라오통으로 짝을 지어주고, 설화가 건넨 '누슈'가 적힌 부채를 나리에게 건넨다.
<설화와 비밀의 부채>는 여든의 미망인이 된 나리가 지난 날을 회상하며 글을 써내려 가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댕기머리 딸내미 시절, 머리를 얹은 처녀시절, 시집살이 시절, 조용히 앉아서 보내는 시절을 거친 나리와 설화의 여자로서의 일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일생들 속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었던 서로의 소중한 존재와 우정도 함께 아름다운 꽃을 피웠다. 하지만 너무 소중히 여기고 헌신했기에 아무일도 아닌 작은 일 하나에 상처를 받기도 하고 서로에게 상처 입히기도 했고 그런 분노들과 어리석음이 훗날 후회로 돌아오기도 했다.
그녀들의 이야기 속에서 빼놓을 수 없었던 한가지가 바로 수천년동안 남자들에게 비밀로 지켜지던 여자들만의 비밀언어라고 불리우는 '누슈'다. 부채나 천 등에 누슈를 써서 서로의 안부를 전하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고 마음을 나누었다. 누슈는 단순한 문자가 아니라 나리와 설화의 우정과 사랑을 전하고 마음을 이어주던 아름다운 통로였다. 아마 그녀들에게 부채속 누슈들은 한자 한자 마음속에 추억들로 고스란히 새겨져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누슈는 실제로 여러가지 이유들로 거의 멸종되었는데, 최근 누슈를 압제에 대한 혁명적인 투쟁의 중요한 요소로 받아들여 정부가 푸웨이에 누슈 학교를 열고 이 언어를 되살리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책 속 나리와 설화의 삶은 비단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당시의 중국여성들의 삶이기도 했다. 여자들은 딸이었을 때 아비에게 복종하고, 결혼하면 남편에게 복종하고, 미망인이 되면 아들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유교사상인 3종이 있었던 것만 보아도 여성들의 삶이 어땠는지 짐작이 간다. 그리고 그런 문화 속에서 주목할 만한 것이 바로 전족이다. 발이 작아야 미덕이라고 여겼고 결혼도 잘 할 수 있었던 그때는 대략 7cm가 발의 이상적인 길이였고, 그런 작은 발을 만들기 위해 붕대로 칭칭감고 발가락 뼈가 부러지고 죽을 위험이 있어도 여성들은 전족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결혼생활을 좀 더 편하게 해 주고 여자의 인생에서 가장 큰 기쁨이자 행복인 아들 낳는 일을 좀 더 쉽게 해 준다는 이유에서 행해진 전족의 슬픈 전통을 새삼 알게 되었다.
중국의 문화와 전족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고, 여자들의 생에 관한 아름다운 이야기기도 했지만 조금은 슬프기도 했기에 아련하고 찡한 마음이 맴돈다. 2011년에 영화로 개봉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배우 전지현이 설화역을 맡았고, 중국배우 이빙빙이 나리 역을 맡았다. 포스터랑 예고편은 이미 나왔는데, 책을 읽고 나니 이들의 아름다운 우정이 어떻게 스크린에서 펼쳐질 지 정말 기대가 된다. 누슈가 어떤 글자인지 궁금했는데, 영화에서는 그녀들이 주고 받았던 부채와 누슈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볼 수 있을까??
책의 재미를 넘어 그 당시의 분위기기 고스란히 녹아있을 영화가 더 기대되는 <설화와 비밀의 부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