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스, 달콤씁쓸한 모호
앤 카슨 지음, 황유원 옮김 / 난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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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 달콤씁쓸한
쾌락인 동시에 고통인 경험.

에로스는 욕망의 순간이다. 이 조용한 침입자는 ‘사랑‘이라는 단어로 욕망에 새로운 옷을 입힌다. 우리는 쉽게 휘청거리고 분열되며, 쾌락에 모든 감각을 상실해 그 이면에 존재하는 고통을 알아채지 못한다. 사랑의 달콤함이라는 것은 이미 온 세상을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찬란하게 바꾸어 놓기 충분하다. 저항할 수 없이 쳐들어오는 에로스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고 나서야 우리는 뒤늦은 후회와 증오, 내가 사라지고 마는 것을 두 눈으로 지켜볼 뿐이다. 사라지고 난 후에야 다시 애달퍼지는 것. 에로스는 이렇게 달콤씁쓸한 순간에 대한 모든 감각을 우리 몸에 새겨두고는 홀연히 사라진다.

결핍된 것, 수중에 없는 것, 나에게 없는 것이기에 그것을 끊임없이 향하게 하는 인간의 본성. 하지만 그토록 갈망하던 것이 내 수중에 들어오고 나면 그 즉시 그 빛은 사라지고 있는 것은 없는 것이 되어버리는 모순. 에로스는 이 모든 사랑의 감정을 아우른다. 그렇기에 달콤씁슬함은 공존하며 서로를 완성한다. 상처를 받더라도 반드시 그 속으로 뛰어들고 만다. 그리고 상처받은 우리는 그 자체로 삶이라고 정의하는 인생의 수많은 시간을 견디고 살아낸다. 에로스가 아니라면 알지 못했을 세계를 살고 있다.

이 글은 앤 카슨의 논문을 에세이화 시킨 것으로 서문의 이야기처럼 글 자체가 에로스적인 특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사랑에 대해 논하는가 하면 멀찌감치 달아나 증오에 대해 이야기한다. 결핍으로부터 태어난 사랑에 대한 학문적 자료들을 끊임없이 파헤치며 오래된 역사 속의 문장에서 길어올린다. 그 덕분에 조금 어렵다. 분명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달콤씁쓸함에 대한 학문적 연구의 깊이와 방대한 자료들로부터 끌어낸 그의 사유를 보고있으면, 어느새 우리는 앤 카슨만이 끌어낼 수 있는 ‘come into focus’의 상태, 에로스에게로 초점이 맞춰지는 상태가 되고만다.


+ 문장들,

에로스의 궤적을 따라가보면, 우리는 그것이 늘 이처럼 똑같은 경로를 그린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연인에게서 나와 상대연인을 향했다가 다시 튀어나와 연인 자신과, 전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연인 안의 구멍으로 향한다. 대부분의 사랑 시에서 진짜 대상은 누구인가? 그것은 상대 연인이 아니다. 그것은 그 구멍이다. | 60

내가 당신을 욕망할 때, 나의 일부는 사라진다: 나에게 당신이 결핍되었다는 사실은 나의 일부를 먹어치운다. 에로스의 가장자리에서 연인은 그렇게 생각한다. 결핍의 현존은 그에게 전체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의 생각은 개인의 정체성의 문제로 향한다: 완전한 사람이 되려면 사라진 것을 회복하고 다시 통합해야만 한다. | 60

소설은 에로스의 책략을 제도화한다. 그것은 일관되게 부적합한, 정서적이고 인식적인 내러티브 조직이 된다. 그것은 독자가 이야기의 인물들과 삼각관계에 놓이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또한 독자가 인물들이 욕망하는 대상을 붙잡고자 텍스트 속으로 손을 뻗으며 그들의 갈망을 공유하는 동시에 그것과 거리를 두고, 인물들이 바라보는 현실과 동시에 그 오해까지 목격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것은 거의 사랑에 빠지는 것이나 다름없다. | 149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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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 달콤씁쓸한 모호
앤 카슨 지음, 황유원 옮김 / 난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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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고 난 후에야 다시 애달퍼지는 것. 에로스는 이렇게 달콤씁쓸한 순간에 대한 모든 감각을 우리 몸에 새겨두고는 홀연히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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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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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움가트너는 그의 서재 책상에 앉아있다.
오늘은 동생에게 전화를 하기로 한 날이고, 또 무슨 일을 해야하더라.. 적막이 흐르는 집에서 일상을 보내며 그저 해야할 일들을 해내지만 어쩐지 오늘은 일찍부터 스토브 위의 낡은 알루미늄 냄비로 시선이 가고 말았다. 저 냄비는 ‘그때’를 떠올린다.

‘환지통’
10년전 아내가 갑작스럽게 죽었다. 한 번만 더 물 속에 들어갔다 오겠다던 그녀는 별안간 바다 속으로 침몰해 버렸고, 이 갑작스러운 죽음은 그대로 바움가트너의 가슴에 커다란 생채기를 남겼다. ‘당장이라도 불이 붙어 그 자리에서 완전히 타버릴 것만 같은’ 고통이었다. 어떤 경고도 없이, 어떤 신호도 없이. 하루 아침에 아내의 존재가 없어졌다. 환지통. 이미 없어졌지만 마치 있는 것 처럼 느껴지는 감각. 고통. 아픔. 그리움.

이야기는 바움가트너의 평범한 어떤 날을 시작으로 그의 생각에서 뻗어나가는 다양한 사고의 확장이 여러 인물들에 대한 회상으로 바뀌고 그들의 고유한 추억 속에서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이 끊임없이 교차하며 아내의 죽음 이후에 그가 깨달은 삶에 대한 이야기를 조용하게 이어간다.

에피소드마다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물론 대부분은 그의 아내 애나와의 추억을 회상하는 것이고,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 어머니의 할머니, 동생, 우편배달부, 수도 검침원… 수 많은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서로 촘촘하게 얽혀있으면서도 어색한 부분없이 유려하게 흘러가는 것이 인상적인 독서 경험이었다. 나는 폴 오스터의 글이 처음인데 이런 분위기의 글이 그의 대표적인 이미지는 아닌 것 같지만 이 글을 쓰던 당시 작가의 나이, 상황 등에서 이제는 많은 것을 내려놓고 어쩌면 본인조차도 이 글이 마지막임을 알고 써내려간 글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종일관 주변의 삶을 정리하는 시선이 느껴졌고, 그래서 더 아팠다.

아무도 없는 집안의 적막을 깨고싶어 아내의 서재에 들어가 하릴 없이 타자기를 두드리던 그는, 그곳에서 아내가 남긴 시와 에세이, 번역, 그와 주고받았던 편지 등 그녀가 남긴 수백 편의 글 속에 파뭍혀 다시 한번 세상 속으로 걸어들어갈 용기를 갖게 된다. 아내의 글이 그를 영원한 침묵과 슬픔의 소용돌이 속에서 꺼내어준 셈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그들은 여전히 연결되어 있고 다시금 활기를 되찾아 무언가 시작될 것 같은 찰나에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폴 오스터는 그렇게 무언가 시작될 것 같은 끝을 보여준다. 이야기는 끝이 나지만 그 안에서 바움가트너는 여전히 삶의 여정을 계속하고 있다. 사라지지 않을 기억 속에서,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글로 남겨지고 사유가 되고 이야기가 되어. 이 글이 그의 마지막인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것 처럼 글이 끝났다. 바움가트너는 폴 오스터의 ‘작별 인사’가 되었다.

+ 문장들

그녀는 어떤 것도 학신하지 못한다, 그녀는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녀가 이런 이해할 수 없는 내세의 삶, 의식적 비존재라는 이 역설적 상태를 계속 유지하게해주는 존재는 그라고 생각한다. 이런 상태는 언젠가는 끝날 것이다, 그녀의 느낌으로는. 하지만 그가 살아있고 그녀에 관해 계속 생각할 수 있는 한 그녀의 의식은 그의 생각에 의해 깨어나고 또 꺠어날 거이며 심지어 가끔 그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그의 생각들을 듣고 그의 눈을 통해 그가 보는 것을 볼 수 있다. | 76

외로움은 사람을 죽여요, 주디스. 그건 사람의 모든 부분을 한 덩어리씩 먹어 치우다 마침내 온몸을 삼켜 버려요.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삶이 없는 것과 같죠. 운이 좋아 다른 사람과 깊이 연결되면, 그 다른 사람이 자신만큼 중요해질 정도로 가까워지면, 삶은 단지 가능해질 뿐 아니라 좋은 것이 돼요. | 123

이것은 바움가트너에게 인간의 역사에서 벌써 몇 번째인지는 모르지만, 우리 모두 서로 의존하고 있고 어떤 사람도, 심지어 가장 고립된 사람이라 해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일일 뿐이었다. | 171

운도 맞지 않고, 때도 맞지 않고, 뭐가 됐든 다 맞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놓쳐버린 기회들이 괴상하게 쌓여 갔다. | 223

이제 세부적인 것은 기억에 없지만, 한 가지, 어딘가에서 차를 세우고 피크닉 점심을 먹었던 일, 모래가 많은 땅에 담요를 펼치고 애나의 아름답게 빛나는 얼굴을 건너다보았던 일은 떠오른다. 그때 그는 강렬한 행복감이 큰물처럼 밀려오는 바람에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고, 자신에게 말했다. 이 순간을 기억하도록 해, 얘야, 남은 평생 기억해, 앞으로 너한테 일어날 어떤 일도 지금 이것보다 중요하진 않을테니까. | 242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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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손턴 와일더 지음, 정해영 옮김, 신형철 해제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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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4년 7월의 어느 날, 페루에서 가장 멋진 다리가 무너지며 다섯 명의 여행자가 그 아래의 골짜기로 추락했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는 매일 수백 명의 사람들이 건너다녔던 그 지역의 대표적인 다리였고, 사고가 일어난 후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한 번 신의 보호 아래 평안이 이어지기를 기도해야했다.

사고를 당한 다섯 명의 운명에 대해 ‘주니퍼 수사’는
그것이 신의 의도인지, 만약 신의 의도라면 그들의 삶이 어떠했기에 신이 한 사람의 삶을 끝내버리는 선택을 한 것인지 그 연관성을 알아내고 싶어했다. 그것만 입증해내면 뿌연 안개가 걷히듯 삶의 모순을 뒤로한 채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에 한 치의 오해나 망설임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챕터에서부터 당시 사고를 당한 다섯명의 운명에 대한 철저한 뒷조사가 이루어진다.

우리는 우연히 살고 우연히 죽는 것일까,
아니면 계획에 의해 살고
계획에 의해 죽는 것일까. | 15

우리 주변에서는 이런 일들이 너무나도 자주 발생한다.
세월호 사건에서부터 이태원 참사까지, 사건은 그 당시의 중대한 이슈일 뿐 시간이 흐르면서 기억은 점점 흐려진다. 그래서 산 루이스 레이 다리가 무너지던 날, 절벽 아래로 추락한 다섯 명은 대체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까. 수년
간의 조사 끝에 주니퍼 수사가 낸 결론은 무엇일까.


작가는 한 줄로 요약되는 결론 보다는
개개인의 고유한 삶 자체에 더욱 집중하는 선택을 한다.
멀리서 보면 그저 잊혀져가는 사건일 뿐이지만 그 안에 속한 각자의 삶 속으로 들어가보면, 모두 저마다의 서사를 간직한 채 다리 밑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그들의 서사에는 어떤 공통점도, 인과관계도 없었고, 있다고 한들 그것을 따지는 것 조차 무의미했다. ‘인간이 죽음을 어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신형철 평론가는 이런 말을 남긴다.
“ 신의 사랑이라는 대양에서 인간의 사랑은 서로 섞인다. 더 크게 섞이기 위한 다리는 많을수록 좋을 것이다. 우리에게 신이 필요한 때는 다리가 끊어지는 때가 아니라 그럴 줄 알면서도 그것을 놓는 때다. ” | 218


내 삶의 모든 선택이 신의 의도라면,
그가 내 삶에 이토록 깊이 관여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어쩐지 기운 빠지고 서글퍼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미 수세대에 걸쳐 이런 고민을 지속해왔다.
우연이건 의도이건 제 나름의 삶을 개척하고 때때로 신의 도움을 갈망하며 오늘날의 인간의 삶 속으로 이어져온 것이다. 이 하찮은 인간의 노력이, 나의 모든 좌절과 인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같은 것들이 그렇게 무의미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느 순간 우리는 신에 대한 질문을 인간에게로 돌렸기 때문에. 신이라는 존재에 앞서 인간이라는 실존에 운명을 걸었고 그 결과가 ‘오늘의 나’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랑은 영원이라는 시간을 건너왔고
어떤 믿음은 그 사랑을 포기하지 않은 채
지금 이 순간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마치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가 약 100년이라는 시간동안
수 많은 독자의 손을 거쳐 오늘의 우리에게 닿은 것처럼.


우리는 곧 죽은 것이고, 그 다섯 명에 대한 모든 기억도 지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우리 자신도 한동안 사랑받다가 잊힐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 사랑이면 충분하다. 모든 사랑의 충동은 그것을 만들어 낸 사랑으로 돌아간다. 사랑을 위해서는 기억조차 필요하지 않다. 산 자들의 땅과 죽은 자들의 땅이 있고, 그 둘을 잇는 다리가 바로 사랑이다. 오직 사랑만이 남는다. 오직 사랑만이 의미를 지닌다. | 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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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문을 매일 여는 사람이 되었다 - 강세형의 산책 일기
강세형 지음 / 수오서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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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산책을 하기로 한다.
산책, 그리고 현관문이라는 단어가 가장 우선순위였던 사람.
작가는 매일 그 문을 열고 나가 어디로든 걷기로 했다.
이렇게 매일이 될지 모르고. 이렇게 길어질지 모른채로.

이 사소한 시도로 그의 생각 속에는 어떤 변화가 일었을까.
떠오르는 말들은 글이 되어 차곡차곡 쌓여갔고 지금 여기 내 앞에 펼쳐지기까지의 여정에 수 많은 서사로 남겨졌다.
산책은 어느새 이야기가 되었다.

계절이 변해가고 발길이 향하는 길도 매일 변한다.
매일 새롭게 시야에 들어오는 사물, 상황,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는 작가의 시선을 통해 감추었던 수줍은 얼굴을 드러내고 우리 삶이 선사하는 수만가지 오묘한 색을 내어보인다.
그리고 나는 산책을 마친 후에 이어질 그의 이야기가 또 다시 궁금해진다.

산책은 더이상 걷는 것 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산책은 더이상 바깥 세상만이 가질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한 해를 사는 동안 다양한 모습의 새로운 ‘나‘를 마주하는 시간,
그것이 산책이었다.

“ 내 안에 있는 양면성 사이에서,
내가 부러 문을 닫고 보려하지 않았던 나를 만나기도 했다. ”
| 397

저 하얀 문 뒤의 세상.
하얀 표지에 담긴 하얀 문
아무 색도 드러내지 않는 텅 빈 공간
공기 속을 부유하는 비눗방울처럼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여기에는 모든 색이, 모든 가능성이 담겨있다.
문 뒤의 세상에는 미처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수많은 색을 가진 세상, 사람의 고유의 삶이 존재한다.
모든 색을 품는 세상속으로 들어가는 문.
매일 그가 걸으면서 마주한 기적은
이 문에서 시작되었다.

“ 내 삶의 어떤 특정한 시기에 그 모든 사소한 일들이,
우연과 같이 동시에 나를 찾아왔을 뿐이었다. ” | 391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익숙한 것에서 벗어난다는 두려운 마음이 앞서지만
이내 나는 바깥으로 향하는 시선을 멈출 수 없어진다.
조금은 달라진 내가, 조금 더 넓은 세상으로,
이 사소한 걸음을 옮겨본다.

“ 매일 현관문을 열고 매일 걷는 동안,
수많은 단어들이 나에게 와 말을 걸었다, ”

“ 내가 너무 약해져 있을 때,
초라한 내가 한없이 작게 느껴질 때도,
나만 보는 사람, 나밖에 볼 수 없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나보다 약하고 작은 존재는, 언제나 어디에나 있을 테니까. ”
| 20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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