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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 인간에 대한 비공식 보고서
매트 헤이그 지음, 강동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8월
평점 :
인간의 핵심은 변화였다. 그게 인간이 살아남는 방식이었다. 행하고, 되돌리고, 다시 하는 것, — p392
어느 날 갑자기 인간 ‘앤드루 마틴’이 된 보나도리아의 보랏빛 외계인. 앤드루 마틴의 의식은 이미 사라졌고 그의 몸을 장악한 외계인은 그가 증명한 리만 가설에 대한 모든 증거 자료와 관련된 주변 인물들을 없애라는 명령을 받았다. 무시무시한 암살 명령을 실행해야 하지만 그에 앞서 이 낯선 지구에서 ‘인간’으로서 살아남아야만 한다. 그러기엔 이미 나체로 공원과 도시를 활보하다가 매스컴에 노출되고 경찰에 연행되어 버린 외계인의 시련은 꽤 길게 이어진다.
성인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지구에서의 모든 경험이 처음인 그는 물을 마실 줄도, 옷을 입어야 한다는 사실 조차도 알지 못했다. 또한 인간이란 감정을 느끼고, 본능적으로 행동하며 때로는 폭력적이기도 하고 때로는 사랑스럽기도 한 복잡하기 그지없는 존재라는 것을 매일 피부로 느끼고 있다.
“ 인간의 놀라운 점이 그것이었다. 다른 종족의 앞길을 정해주는 능력, 그들의 근본적 본성을 바꿔놓는 능력. 어쩌면 내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지 몰랐다. 어쩌면 나 역시 변할 수 있을지 몰랐다. 혹시 이미 변하고 있는 건 아닐까? 누가 알겠는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지시받은 대로 순수하게 남아 있고 싶었다. 소수처럼, 97처럼, 강하고 고립된 채로. ” |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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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의 시선에서 인간을 해석하는 것은 너무 익숙해서 무시하고 지나갔던 모든 부끄러운 인간 존재의 이면을 낱낱히 보여주었다. (매트 헤이그는 외계인이었던가) 이쯤이면 SF소설을 가장한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 결과 보고서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차갑고 이성적이었던 이 외계인은 어느 순간 슬픔, 기쁨, 두려움 등 인간 감정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이해하게 되고, 빛과 어둠처럼 존재하는 인간의 나약함 자체에 매료된다.
“ 사랑이 두려운 건 강렬한 힘으로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겉보기에 사랑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당신이 아는 모든 이성적인 것을 뒤흔드는 초거대 질량의 블랙홀이다. 아주 따뜻한 소멸 속에서, 내가 그랬듯, 당신도 당신 자신을 잃게 된다.
사랑은 바보 같은 일을, 모든 논리를 거스르는 일을 하게 한다. 평온보다 고통을, 영원보다 필멸을, 고향보다 지구를 선택하게 한다. ” | 272
이 엉뚱한 외계인의 보고서는 유쾌하면서도 부끄러운 진실을 아무렇지 않게 눈 앞에 펼쳐놓는다. 읽지 않고는 지나갈 수 없게끔. 그리고 생각하게 한다. 지금 이 삶을 내가 얼마나 하찮게 여기고 있는지, 평범한 일상의 이면에 보석처럼 숨겨진 삶의 즐거움을 잊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분명히 일깨워 준다.
삶은 지루하기 마련이지만 가끔은 고통, 시련, 좌절 따위 없는, 무엇이든 다 이루게 되는 삶에 대해 생각해본다. 사랑과 욕망, 오해와 다툼, 폭력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이미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완벽의 경지에 올라있는 존재가 된다면. 그들의 문명에서 보았을때 인간의 삶은 ‘결함’ 그 자체일 것이다. 그런데 그게 정말 ‘천국’일까? 아무런 자극 없이 평화롭고 갈등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정말 천국이 맞을까?
“ 천국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우리는 천국에서 무엇을 할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결함을 갈망하게 되지 않을까? 사랑과 욕망과 오해를, 심지어 만물에 활기를 불어넣는 약간의 폭력을 원하게 되지 않을까? 빛에는 그림자가 필요하지 않은가? ” | 243
빛에는 늘 그림자가 따라다니듯
부족하기에 그 자체로 의미있는 인간의 삶.
완벽을 추구하려고 하지만 이미 태어난 이상 늘 부족한 것 투성이인 인간의 본성을 이해한다면 우리에게 필요한건 완벽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하는 것임을 깨닫게된다.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던대로 계속하는 것.
그러면서 조금씩 변화하고 서로에게 맞춰지며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삶.
결함 가득한 인간이 해야할 일은
결함이 가득한 채로 아름다운 삶을 껴안는 것이다. 🩷
+ 개인적으로는 <미드나잇 라이브러리>가 좀 더 재밌었지만 ‘휴먼’이라는 제목답게 인간이 영위하는 삶에 대한 성찰이 무척 공감가고 배울 점도 많았던 책! 매트 헤이그는 옳다! :)
#서평단 #도서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