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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없는 작가
다와다 요코 지음, 최윤영 옮김 / 엘리 / 2025년 8월
평점 :
#영혼없는작가 #다와다요코 🖌️
다와다 요코에게 글쓰기란, 경계를 넘나들며 쓰는 과정에서
한 언어에 얽매인 사고를 풀어내고, 다양한 언어와 문화
그리고 사유를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에게 ‘영혼이 없다’는 말은 나의 단편적인 상상을 넘어선 또 다른 차원으로의 여행 같았다. 말 그대로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영혼은 ‘언어’라는 날개를 달고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으로 멀리 떠나곤 한다. 어쩌면 그것을 어떤 상상속에 빠지는, 물리적으로는 책상에 앉아 있지만 나의 영혼은 낯선 단어들 사이를 유영하고 그 안에서 의미의 씨앗을 찾아 부지런지 ‘글’이라는 나무를 키워가는 시간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 시간동안 내 영혼은 나와 있지 않기 때문에 나는 영혼이 없는 글쓰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영혼’에 대한 정의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고유의 원본 텍스트를 가지고 있고 이것이 저장된 곳이 영혼이다. 그리고 원본 텍스트는 누군가의 번역을 거치지 않고서는 타인에게 가닿을 수 없다. 나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누구든지 나 자신의 번역가가 되어 나를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를 골라내야 한다.
그런데 이 과정은 전적으로 혼자만의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혼자만의 시간이고 지극한 외로움이다. ‘어머니 조차 없는’ 외로움의 상태 속에서 결국은 나를 떠나버릴 언어를 찾는 일.
그렇게 홀로 남겨질 영혼일지라도, 인간은 늘 언어를 곁에 두려 한다. 어제와는 다른 오늘의 말을 찾고, 또 다른 나를 대변할 새로운 의미를 찾기도 한다.
그리고 여기 남겨진 나는 나의 삶을 살고,
내가 떠나보낸 언어, 즉 나의 글은 그 글의 삶을 산다.
나의 운명에 속박되지 않고 자유의 날개를 달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의 마음에 내려앉고,
‘아로 새겨지며’ 그의 삶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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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태어날 때 고유한 원본 텍스트가 주어진다는 기본 생각에서 출발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이 원본 텍스트가 보존되는 장소를 영혼이라고 부른다. 54
영혼이 이 세상 어딘가에서 동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것은 근사한 상상이다. 이 영혼은 그 사람으로부터 독립되어 있다. 사람은 영혼이 무엇을 경험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사람과 그의 영혼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존재한다. 샤먼이 자신의 영혼과 함께 살아가듯, 나는 “나의 영혼”이라고 부르는 사람과 같이 삶을 살고 싶다. 나는 내 영혼을 보지도 못하고 내 영혼과 이야기를 할 수도 없겠지만, 내가 겪고 쓰는 모든 것은 영혼의 삶과 부합한다. 나는 영혼이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내 영혼은 항상 어딘가 떠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57
*어머니조차없이외로이 (전적으로 혼자)
영혼은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어머니다. 왜냐하면 영혼은 많은 단어들을 낳지만 혼자 죽기 때문이다. 영혼이 죽어도 단어들은 슬퍼하지조차 않는다. 영혼은 언어 없이 완전히 홀로 죽어야 하는 것이다.
외로움은 영혼의 어머니다. 어떤 사람이 외롭다고 느끼면 바로 혼자서 말하기를 시도한다. 그때 그는 언제나 자기 말을 들어주는 어떤 인물을 상상한다. 이 인물을 영혼이라 부르는 것 같다.
어머니는 외로움의 영혼이다. 167
+ 분명 쉽게 이해되는 글은 아니었지만 기록하고 남겨두고 싶은 사유의 잔상들이 많았다. 술술 읽히는 스타일은 아니라 호불호는 갈릴 수 있을 것 같다. 한편으로 클라리시 리스펙토르가 떠오르기도 했고. 다와다 요코의 작품을 읽어봤다면 이 책은 ‘필독서’이다. 분명 그녀의 세계관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고 말 그대로 ‘허를 찌르는 순간’은 갑갑했던 사고를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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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가 이 텍스트를 번역하게 되면, 나는 그 안에서 음악을 만나고 싶을 것이다. 음악은 바흐와 버르토크처럼 사실 이미 여기에 있지만, 번역 속에서 다시 한 번 만나야 한다. 커다란 우회로를 거쳐서, 사전의 도움을 받아, 그리고 대화와 꿈을 통해서. 이렇게 번역의 커다란 우회로를 거쳐, 나는 마법과 같은 시의 비가독성을 다시 만나고 싶어질 것이다.
p219, 글자들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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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