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X 이옥토 리커버 특별판) - 유년의 기억 소설로 그린 자화상 (개정판) 1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찬란한 예감, #그많던싱아는누가다먹었을까

이제 막 대학생이 된 완서는 성인이 된 후 처음 맞는 찬란한 봄을 느낄 겨를도 없이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그 해 6월, 싱그러운 꽃이 만발하고 수려하게 드리워진 나뭇잎 사이로 드는 햇살을 오롯이 느껴본 날이 몇 날이나 되었을까요. 피난통에 설상가상으로 다리까지 다친 오빠를 수레에 싣고 유난히 높은 무악재 고개를 넘어가며 이 모질고 고된 운명이 이끄는 자리가 과연 어디일지 완서의 가족 그 누구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돌아온 현저동 자락에서, 아무도 없이 텅 비어버린 서울 시내를 바라보며 완서는 한 가지 깊은 다짐을 합니다.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는 것, 지금 이 시간, 이 곳에 오롯이 나 홀로 서 있다는 것. 내가 바로 이 시대의 목격자라는 것은 이 모든 것을 쓰지 않고는 차마 견뎌낼 수 없었던 완서의 뜨거운 욕망이었습니다.

박적골에서 할아버지를 기다리며 멀리 내다보았던 풍경과는 참담하리만치 달랐던 그 날의 모습을. 글을 쓰리라는 꿈을 품은 완서에게 그 모습은 단지 어두운 현실만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희망의 깃발이 펄럭이는, 그 어떤 시간보다 찬란할 미래를 향한 작은 시작이었습니다.

-

박적골에서 자란 어린 시절부터 서울 현저동으로 이어지는 완서의 유년기에 이르는 그녀의 기억을 고스란히 읽고 있으면, 긴박한 사건이나 어떤 눈에 띄는 소설적 장치가 없이도 한 사람의 인생에 이렇게 기나긴 시간을 푹 빠져들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시절에 대한 묘사는 마치 그 때의 냄새까지 내게 전해주는 듯 생생했고, 그녀의 기억이 고스란히 내게 전해진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이 쓸쓸하면서도 따뜻하게 번져오는듯 했습니다.

살아간다는게 무엇일까.
삶을 살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누린다는 것이,
때로는 아무렇지 않게 펑펑 써버려도 다시금 솟아나는 것이 시간인지라 아무런 의미없이 사라져 버려도 그만이다 싶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어요.
매일 똑같이 돌아오는 시간이 종국에는 내 기억 언저리에 남을 작고 연약한, 소중한 순간들이 전부일 것임을. 그 순간을 우리는 고이 간직하게 될 것이고, 흩어져 사라질 시간임을 알기에 우리는 이내 그리워하고 말것임을요.

찬란한 기억을 벗삼아 우리는 또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한다고
서로를 붙들고 이끌고 끈질기게 나아갑니다.
누군가에게서 전해진 기억을 안고 흐르는 시간을 벗삼아,
오늘을 살고, 내일을 꿈꾸며. 살아갑니다.

-
이 큰 도시에 우리만 남아 있다.
이 거대한 공허를 보는 것도 나 혼자뿐이고 앞으로 닥칠 미지의 사태를 보는 것도 우리뿐이라니,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차라리 우리도 감쪽같이 소멸할 방법이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그때 문득 막다른 골목까지 쫓긴 도망자가 획 돌아서는 것처럼 찰나적으로 사고의 전환이 왔다. 나만 보았다는 데 무슨 뜻이 있을 것 같았다. 우리만 여기 남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약한 우연이 엎치고 덮쳤던가. 그래,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그거야말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다. 증언할 게 어찌 이 거대한 공허뿐이랴. 벌레의 시간도 증언해야지. 그래야 난 벌레를 벗어날 수가 있다.
그건 앞으로 언젠가 글을 쓸 것 같은 예감이었다.
그 예감이 공포를 몰아냈다. 조금밖에 없는 식량도 걱정이 안 됐다. 다닥다닥 붙은 빈집들이 식량으로 보였다. 집집마다 설마 밀가루 몇 줌, 보리쌀 한두 됫박쯤 없을라구. 나는 벌써 빈집을 털 계획까지 세워 놓고 있었기 때문에 목구멍이 포도청도 겁나지 않았다.

p309

(도서제공)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