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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었겠지만 - 제주4.3, 당신에게 건네는 일흔한 번째의 봄
허영선 지음 / 마음의숲 / 2019년 4월
평점 :
4.3은. 이제 현대사 속에서 하나의 기호로 인식되지만, 우리에게 평화와 인권, 희망을 읽게 하는 기호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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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가진 자들에겐 돈이면 되는 세상이다. 한번 그 맛을 본 어떤 자들에겐 권력이면 다 될 것 같은 세상이다. 그러다 곪는다.
뿌리까지 곪으면 결국 터질 일밖에 더 남겠는가. 그 증거를 우리는 지금 본다. 썩을 만큼 썩었고, 뿌리까지 흔들렸다. 다 뽑고, 다 터트려라.
그래야 새살이 돋는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우리 안에 질문을 한번 던져야 할 때가 아닌가. 과연 내 안의 세월호는 없는가, 물어야 할 때다. 그것을 찾았다면 이러한 최악은 없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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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시린 날, 제주해녀들은 그 물음에 답한다. 맨몸으로.
바다와 생태 친화적인 존재가 만나는 지점에 그녀들이 있다. 산소통 하나 없이 오로지 맨몸으로 바다로 투척한다.
테왁 하나에 둥둥 몸을 의지한 채. 어머니의 어머니가 그랬듯이 대해에서 숨비소리를 낸다.
어머니에서 딸, 시어머니에서 며느리로 전승되는 해녀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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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그의 생은 완전히 조각났다. 고문은 질겼고, 기억의 힘은 너무 강해서 지금도 고통은 밤까지 따라붙는다.
깊은 기억은 죽을 때까지 살아남는 힘을 갖는 건가. 그럼에도 여인은 누구에데고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았다.
죽도록 매를 맞으면서도 그는 여럿의 마을 사람들을 지켜냈다. 4.3의 열사였다. 그로 인해 살아낸 목숨들이 얼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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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엔 산이 무섭고, 낮에는 아래가 무섭다고 울부짖던 젊은 여성들은 4.3 비극이 "시국 탓"이라 말한다. 국가의 폭력에 희생됐으나 이들은 누구를 원망해야 좋을지도 몰랐다.
이들의 감춰진 목소리는 여전히 4.3 역사에서 제 위치를 찾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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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례21, 제민일보, 코리아나 등 여러 매체에 발표한 글들을 수정하고, 새로 쓴 산문들을 모은 책이라고 한다.
끌려가는 남편에게 찐빵하나 먹이고 싶어, 급하게 사서 허둥지둥 달려갔지만, 끝끝내 건내지 못해, 살아생전 찐빵을 먹지 않는다고 한 박경생 할머니.
스물 둘에 딸하나와 아내를 남겨두고 영영 돌아오지 못한 길을떠난 그 애달픈 이야기에 시작부터 울컥.
읽는 내내 먹먹함이 가득했다.
막연하게 4.3제주 사건에 숙연해지기도 했지만, 내게 제주는 "청정자연 아름다운 제주" 라는 인식이 강했기에,
이 책은 충격적이고, 마음 아프고, 분노하고,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사람이다. 동등한 인격체이고, 사유하고, 삶을 함께 이어가는 사람인데, 그들은 생명들을 앗아가고, 삶을 짓밟았다.
그리고 조금의 죄책감도 없이 인간이하의 짓들을 행했다.
부모를 잃고, 자식을 잃고, 배우자를 잃고, 성폭행을 당하고, 고문을 당하고, 학살을 당해도 겨우겨우 이어 오던 삶.
그들은 위로받지 못했고, 보상받지 못했고, 사과받지 못했다.
상군해녀로 일본땅을 밟고 다시는 제주 땅으로 돌아오지 못한 해녀의 삶이며, 조선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명박, 박근혜 재임시절 고국을 밟지 못한 그녀들의 삶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돈을 벌어야 했고, 혹은 그렇게 팔려갔음에도, 그녀들은 대우 받지 못한 삶을 살고, 현재도 살아가고 있다.
제주가 고향 아닌가. 그럼에도 정치적 이유만으로 그들은 자신의 고향땅을 밟을 권리도 보장받지 못한다.
시국을 탓하는 것으로 용서하고 자신의 삶을 이어가려 노력했던 순박한 그들은 끝까지 인권을 유린 당했다.
처절한 삶의 고통과, 절망의 역사가 이 속에 있다.
그리고 아름다운 제주의 모습과 순박하고, 따뜻한 그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더 이상은 외면해서도 안되는 우리의 뼈아픈 역사의 한자락.
자국의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고, 위로하지 못하고, 위할 줄 모르는 국가가 무슨 소용인가.
묻고 싶다.
우리는 서러워할 봄이라도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