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인간 김동식 소설집 1
김동식 지음 / 요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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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존재가 밑바닥까지 추락했을 때, 그들에게 있어 문화란 하등 쓸모없는 것이었다.
ㅡㅡㅡ
인간이란 존재가 밑바닥까지 추락했을 때, 어떻게 될까? 인간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 그저 배고픔을 느끼는 몸뚱이 하나만 남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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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입한지는 제법 오래 되었는데, 미루다 이제서야 읽고 왜 늦게 읽었을까 후회할만큼 재미있었다.
10년간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면서 생각했던 이야기들을 매일 인터넷 게시판에 올렸다는 김동식 작가.

이책은 그의 300편이 넘는 짧은 소설 중 66편을 추려 놓은 소설집이다.
외계인, SF, 가상현실, 인조인간 등이 등장에 이질감이 느껴지진 않을까 생각했지만, 첫장부터 상상력 넘치는 구성과 내용들에 매료되었다.
어렵고 꾸밈이 많은 문장이 아닌, 투박하지만 쉽고 재미있는 문체들로 그야말로 술술 읽히는데다, 전달하는 메시지에서 엄청난 힘을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인간의 추악한 이면과, 위선, 부조리함과 탐욕들을 섬뜩하게 표현해두고, 생각지 못한 반전들은 그 재미를 더 한다.

문학에 대한 전문지식이나 배움 없이,
문학상 공모나 수상하지 않았어도,
소위 말하는 등단작가가 아니라도 글을 쓰고 작가가 될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준 작가가 아닌가 싶다.
놀라운 상상력과 사회를 바라보는 예리한 시선들이 단편마다 큰 울림을 준다.
유쾌하면서도 잔인하게 그려진 인간 통찰들이 빛나는 책이었다.
다른 책도 참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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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곤베리 소녀
수산네 얀손 지음, 이경아 옮김 / 검은숲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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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인 육신 외에 자신의 본모습을 알아보지 못하는 우리의 무능함을 드러내는 절망.
삶에서건 죽음 앞에서건 그 육신을 놓아버리지 못하는 우리를 보여주는 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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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지에서 내 발에 걸린 것은 시체에 꽂힌 장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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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은 날씨가 갑자기 변할 때 자신의 제물을 고른다는 이론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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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의 사건으로 인해 고향을 떠나 양부모의 손에 길러진 나탈리에는 14년만에 자신의 박사논문을 완성하기 위해 늪지로 유명한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 곳에서 매일 조깅하던 남자에게 호감을 갖던 중 그가 조깅을 위해 숲으로 간 뒤 갑작스레 날씨가 변한것을 알아차리고 그를 찾아나선다. 그는 누군가에게 공격을 받아 쓰러져 있었고,그 사건을 조사하던 중 늪에서 지난 14년동안 실종되었던 사람들의 시신들이 발견되는데.... 링곤베리 소녀는 기원전 300년 늪지에 어떤 강력한 존재가 깃들어 있을 것이라 생각한 사람들이 평온을 기원하며 제물로 바친 아이가 산소가 부족한 늪에 가라앉아 거의 부패되지 않은 채 미라가 되어 발견된 시신을 부르는 이름이라고 한다.

무언가를 기원할때 사람을 제물로 바쳤던 링곤베리 소녀 이야기와 요한네스가 습격 당한 사건, 그리고 발견된 시신들까지 조금씩 연결고리들이 밝혀지면서 이야기의 재미를 더한다.

안개가 자욱하고 습한 늪지라는 장소에 기이하고 신비함이 감돌고, 뭔가 섬뜩한 느낌도 든다.
잔인하거나, 어떤 특별한 사건 없이도 지역에 전설같이 내려오는 이야기와 접목한 소설은 묘한 공포를 자아낸다.
상상만으로도 묘한 공포를 선사하는 분위기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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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
고수리 지음 / 수오서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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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하지 않아서 소소하다 느끼는 일들이야말로 특별하다고.
행복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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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좀처럼 울지 않는 어른이 되었다. 눈물보다 한숨이 편한 어른이 되었다.
어쩌면 어른들이 울지 않는 건, 슬픔에 무뎌져서가 아니라 슬픔을 너무 많이 겪어서 다 설명하고 표현하기가 버거워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가장 슬픈 일은, 제 슬픔만 꾸역꾸역 삼키다 보니 타인의 슬픔을 헤아릴 여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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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괜찮아. 남들과 다른 길을 가도 괜찮아. 부모님이 반대해도 괜찮아. 돈을 좀 못 벌어도 괜찮아. 언제든지 그만둬도 괜찮아. 이 길이 아니라면 방향을 틀어도 괜찮아. 그러니까 네가 하고 싶은 일을 계속 해도 괜찮아.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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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거였다. 이는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엔 길이 없다. 다니는 사람이 많다보니 길이 된 것이다." -루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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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우리 어쩔 수 없이 상처는 받았지만요.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우리만 알 수 있는 게 있어요. 단 한사람에게만이라도 온전한 사랑을 받으면 제대로 살 수 있다는 것."
ㅡㅡㅡ
우리 모두에게는 고유하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 나의 이야기를 꾸준히 쓰다 보면 제 삶에 너그러운 사람이 된다. 나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꺼내고 나면 바깥세상과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름 없는 존재들을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는 따뜻한 힘이 생긴다.
내가 글을 쓰며 배운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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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한 미소로 따뜻한 글을 전하는 것만 같은 에세이.
감정에 호소하고, 여기저기의 글들을 짜깁기해서 묶어 놓은 것만 같은 에세이는 좋아하지 않는데, 오랜만에 마음을 울리는 따뜻한 책을 만났다.

자신의 삶을, 그리고 우리의 삶을 이야기한다.
다정하고 따뜻하게 등을 쓰다듬듯 가만가만 자신의 이야기를 건넨다.

어쩌면 숨기고 싶었을지도 모를 자신의 감정과 지난 시절 이야기를 이렇게 조용히 당당히 강하게 이야기하다니 참 멋지다.

다른 이의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는 마음,
따뜻하게 누군가를 바라볼 수 있는 시선들이 가득하다.

글을 쓰며 배웠다고 하는 그녀처럼, 나는 글을 쓰며 배울수는 없지만, 누군가의 글로, 말로, 시선으로 세상을 배운다.
나 또한 이름 없는 존재들을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작은 것에도 감사할줄 알고, 소박한 행복을 느끼는 따뜻한 사람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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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언니에게 소설Q
최진영 지음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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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내가 겪은 일이 먼지인 줄 안다. 먼지처럼 털어내라고 말한다. 먼지가 아니다. 압사시키는 태산이다. 꼼짝할 수 없다. 나는 살아 있다. 나는 움직일 수 있다, 걷고 보고 말하고 달릴 수 있다. 울고 웃고 판단할 수 있다. 나는 쓸 수 있다. 나는 하고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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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끝에 제야는 그편을 선택하기로 했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그런 일을 당할 만한 애가 되는 편을. 더 나은 선택이란 없다. 지옥뿐이고, 지옥뿐이라면, 당숙도 지옥에 있어야 했다.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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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내가 의심받는가. 어째서 내가 증거를 대야 하는가. 어째서 내가 설명해야 하는가. 어째서 내가 사라져야 하나.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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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은 뭔가를 책임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나 말고는 아무도, 아무것도 책임지도 싶지 않았거든.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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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선해지고 나빠지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다른 길이 있는지, 다른 삶이 가능했던 건지, 시간을 되돌릴 수 없더라도 알고 싶었다. 그럼 조금은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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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고 싶다는 말이야.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살고 싶단 말이 아니야. 그런 일이 있었던 나로, 온전한 나로, 아무 눈치도 보지 않고, 내 편에 서서, 제대로 살고 싶단 말이야.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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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을 즐겁고 밝게 지내던 소녀 제야는 2008년 7월 14일 수업을 마치고 동생 제니와 사촌 동생 승호와의 아지트 버려진 컨테이너에 간다. 승호와 만나기로 했지만, 기다린 승호는 오지 않고, 자신에게 늘 친절하고 다정하던 당숙이 컨테이너에 오게 되고, 그 곳에서 성폭행을 당하고 만다.
두려움에 떨던 십대 소녀는 엄마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절대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며, 숨기고, 제야는 그를 처벌하고자 혼자 산부인과와 경찰서를 찾아가 자신이 당한일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부모와 친인척은 그녀를 외면하고, 일말의 도움을 주지 않는다.

부모는 아무에게도 말해선 안된다고 했고, 없었던 일처럼 넘어가라 했다.
친인척들, 동네 모든 사람들은 "그런일을 당할만한 여자애"라고 치부하며 제야의 상처를 더욱 짓밟는다. 어느 누구도 그 어린 소녀의 아픔과 상처와 고통을 함께 나누려하지 않고 숨기기 급급해하는 어른들 때문에, 피해자가 마치 가해자처럼 돌변하는 상황들이 벌어지고, 피해자는 되려 잘 지내는데... 견디기 힘든 그녀는 강릉에서 혼자 사는 이모와 함께 지내며 그 곳에서 조금씩 치유해가는 듯 보이지만, 지옥같았던 그 사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상대를 증오하고, 주변 사람들을 경멸하고,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고통속에 사는 그녀는 사실 그저 살고 싶을 뿐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주변에서는 매 순간 긴장하고 불안에 떨며 예민하고 조심하면서 살아가는 것만이 답이라 한다.
그렇게 혼자가 되라고 했다.

그냥 실수였다고, 그럴 수도 있다고 여기며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 잘 사는 가해자들.
그리고 되려 피해자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그럴만한 사람이라고, 왜 그걸 피하지 못했느냐고 2차 폭력과 고통을 주는 주변사람들.
다 지나갈꺼라고, 다 이해한다고, 힘든거 안다고..
이겨낼 수 있다며 피해자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처럼 보이나, 일말의 이해도 공감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지금도 어디선가 지옥같은 그 기억속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치며 고통과 싸우고 있을지 나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나 또한 위로한답시고, 누군가에게 더 큰 상처를 주고 있는것은 아닌지...
그들에게 2차 폭력을 가하고 있는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했다.

이 책은 성폭행 피해자의 고통을 고스란히 담고 있고, 그 고통속에서 묵묵히 견뎌내고 살아내고 있는 피해자의 간절한 목소리를 담고 있어 묵직한 울림을 준다.

주인공 제야의 일기형식으로 쓰여져 있어 세밀하고 깊이 있는 감정표현들이 돋보이고, 깔끔한 문체덕에 더욱 진심이 묻어나는 듯 했다. "내일을 향한 질문 젊은 문학의 새로운 발견"이라는 모토로 시작된 창비의 "소설Q" 시리즈의 첫작품!
시리즈 소장욕구를 자극시키는 책!
다음 작품도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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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초
T. M. 로건 지음, 천화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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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장을 펼치는 순간 관심을 집중시킨다.
대학에서 강사로 재직중인 주인공 세라는 자신의 승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러브록의 성희롱과 괴롭힘, 협박에 늘 시달린다.
하지만, 자신의 일자리를 박탈당하거나 혹은 승진기회를 놓칠까봐 강하게 저항하지 못하고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거부의사를 매번 밝히지만, 능글맞은 변태 로브록 교수에게는 전혀 소용이 없다.
세라의 거부가 강해질수록 더욱 더 강하게 세라를 성희롱하며 괴롭히는 러브록은 세라의 성과 역시 가로채버리거나, 회의시간을 변경해 참석하지 못하게 하는 등의 악질적인 괴롭힘을 계속한다.

그러던 어느날, 세라는 납치당할 위기에 빠진 여자아이를 우연찮게 도와주고 아이의 아버지에게 누구든 원하는 사람 한명의 이름을 말하면 아무도 모르게 없애주겠는 제안을 받는다.
세라는 그 제안을 거절했으나, 러브록의 괴롭힘이 심해지자 결국 러브록의 이름을 말하게 된다.
다음 내용은 재미를 떨어뜨릴것 같아 더 이상은 이야기할 수 없지만, T.M로건의 전작 리얼라이즈를 읽어을때의 마지막 반전은 통쾌하다.

마지막 반전이 오기까지 세라를 보는 내 마음은 고구마 100개를 먹은 듯한 답답함이 계속 되었지만, 그것이 지금의 현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가 사라지길 원하지만, 죄책감에 시달리고, 후회를 반복하고, 자신의 의견을 번복하는 일들.
그리고 지금도 곳곳에서 벌어지는 여성들에 대한 차별들과 직장내 괴롭힘, 성희롱 등의 사회적 문제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성폭력 피해자들의 편이 아닌, 가해자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흘러가곤 한다.
여지를 주었기 때문이다, 원래 문제가 있는 여자였다, 혹은 행동거지를 조심했어야한다, 왜 더 강하게 거부하지 않았나 하는 류의 이야기들로 피해자들에게 두번째 폭력들을 가하고 있다.
어떤 누군가는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는 그럴 수 없는 경우들이 존재한다.
나라고 과연 그들과 다를까.

피해자들을 조금 더 따뜻하게 대해주고 보듬어주면 좋겠다.
가해자들은 더 강한 처벌을 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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