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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평점 :
어쩌면 기억이란 매번 말과 시간을 통과할 때마다 살금살금 움직이고 자리를 바꾸도록 구성되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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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과거라는 건 말입니다. 무서운 타지이고 이방인입니다. 과거는 말입니다, 어떻게 해도 수정이 안되는 끔찍한 오탈자, 씻을 수 없는 얼룩, 아무리 발버둥쳐도 제거할 수 없는 요지부동의 이물질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기억이 그렇게 엄청난 융통성을 발휘하도록 진화했는지 모릅니다. 부동의 과거를 조금이라도 유동적이게 만들 수 있도록, 육중한 과거를 흔들바위처럼 이리저리 기우뚱기우뚱 흔들 수 있도록, 이것과 저것을 뒤섞거나 숨기거나 심지어 무화시킬 수 있도록, 그렇게 우리의 기억은 정확성과는 어긋난 방향으로, 그렇다고 완전한 부정확성은 아닌 방향으로 기괴하게 진화해온 것일 수 있어요."
- 역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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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불행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만 감지되고 어떤 불행은 지독한 원시의 눈으로만 볼 수 있으며 또 어떤 불행은 어느 각도와 시점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불행은 눈만 돌리면 바로 보이는 곳에 있지만 결코 보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실내화 한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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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 삼인행,이모,카메라, 역광, 실내화 한 켤레, 층
이렇게 일곱편의 단편을 엮은 책으로, 각자의 처지와 상황과 이유들을 술과 관련된 등장인물과 상황들로 연관지어 제법 묵직하고 비극적으로 담아냈다.
시종일관 무거운 분위기가 지속되고, 뭉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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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없이는 살수 없고, 술을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이들의 저마다의 사연과 아픔을 세밀하게 표현했다.
행복과 기쁨을 표현한 축배의 술이 아닌, 슬픔과 연민을 표현하는 술은 각 단편의 중요한 매개체가 된다.
제법 섬뜩하기도 한 작품도 있고, 묘한 여운을 남기는 잔잔한 작품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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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통해 무언가를 얻고 혹은 무언가를 잃기도 하고, 그 술에 기대어 용기를 내기도 하고, 그 뒤로 숨어버리기도 하는 우리네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레몬이라는 책에 매력을 느껴 권여선작가님 책은 두번째로 읽는데, 역시나 긴 여운을 남기는 책이었다.
특히 이모, 카메라, 실내화 한켤레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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