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녀들의 방 ㅣ 보리 만화밥 8
류승희 지음 / 보리 / 2019년 5월
평점 :
어렸을 때 물건이 생기면 항상 언니가 먼저였다.
새 옷, 새 신발, 새 책상.... 난 언제나 언니 다음이었다.
뭐든 먼저 경험하고 아는 척만하는 언니가 부러웠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언니보다 세 살이나 어리고, 아르바이트라도 하고 있는 현실에 마음이 놓인다.
ㅡㅡㅡ
생각해 보면 우린 항상 예외였다.
같은 공간에서 일했지만 일도 따로 하고, 밥도 따로 먹었다.
아르바이트니까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ㅡㅡㅡ
어렵게 대학을 졸업했지만 나에겐 토익 성적도, 자격증도, 어학 연수 경험도 없었다.
잘못 살아온 것 같진 않은데...
노력이 부족했던 걸까.
스물 아홉, 나는 여전히 스쳐 지나가는 중이다.
첫발을 잘못 디딘 건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00학번이 되었더라면,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지 않았더라면....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지금의 나는 그 겨울의 나보다 얼마나 멀리 지나온 걸까?
계속 똑같은 원을 그리고 있으면서 스쳐 지나가는 거라고 착각하는 걸까?
ㅡㅡㅡ
그 순간 생각했다.
지금 우리를 견디게 하는 건 미래에 대한 희망도 아니고 약속도 아닌,
신기루 같은 작은 오아시스라는 것을.
ㅡㅡㅡ
그때부터였을까?
나만의 작은 오아시스를 찾기 시작한 게...
바람이 불때마다 흔들리는 나무들 소리.
이름 모를 작은 들꽃들.
정상에 마시는 따뜻한 커피 한잔.
땀 흘리며 운동하는 사람들.
옆에서 웃고 떠드는 동생의 얼굴.
긴긴 수험 생활에서 나를 견디게 하는 것들.
ㅡㅡㅡ
공무원 시험에만 합격하면 더 이상 휩쓸리지 않을 줄 알았는데.
파도는 쉼 없이 계속 밀려온다.
ㅡㅡㅡ
이제 집에만 있는 엄마는 하염없이 어딘가를 쳐다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제는 엄마가 바라보는 곳이 엄마 자신의 풍경이었으면 좋겠다.
ㅡㅡㅡ
쉼 없이 밀려오는 파도에 작은 희망들은 모래알처럼 흩어진다.
.
.
다세대 주택 반지하에 살고 있는 모녀.
공장노동자로 일하며 세 딸을 거두고 있는 엄마,
공무원 시험을 5년째 도전하고 있는 첫째.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만화를 그리는 둘째.
졸업을 앞두고 있지만 휴학을 해야하는 셋째.
녹록잖은 현실에 매번 좌절하고, 실망하는 비루한 삶이지만, 가족이기에 서로 기대고 의지한다.
여덟개의 이야기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어쩌면 진짜 우리의 삶은 영화나 드라마와는 다르게 특별할것 없고, 재미있고 대단한 사건없이 반복되는 지루할정도로 평범한지도 모르겠다.
그런 삶 속에서 가끔 발견하는 행복, 소박한 즐거움 덕에 살아내는게 아닐까.
비루한 삶, 가난 속에서도 가족이라는 울타리안에서 발견하는 작은 오아시스처럼.
잔잔한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 만화였다.
보리출판사 만화시리즈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