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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사람과 눈사람
임솔아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6월
평점 :
꽃잎은 만지면 부서졌다. 만지지 않고 바라보는 방법을 조금씩 익혀나가게 되었다. 바라보는 일은 무언가를 기다리는 일과 비슷했다. 기다리는 일은 무언가를 지키고 있는 일과 비슷했다.-줄게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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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아무도 보지 못했을까. 어째서 아무도 듣지 못했을까. 어떻게 모두가 한 가지만을 바라보고 말하는 일이 생길 수가 있을까. 그 누구도 어떤 것을 전혀 못 보고 못 듣는 일이 어떻게 생길 수가 있을까.- 줄게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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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다는 게 무너지 아니. 정상이 아니라는 거야. 정상이 아니면 사람이 아프게 되는 거야. 정상이 되고 싶은 건 욕망이 아니라 균형감각이야. 인간은 항상 회복을 지향하도록 되어 있어. 정상일때에는 자기가 정상인 데 둔감하지만, 비정상이 되고 나서는 정상이 무엇인지를 뼛속 깊이 생각하고 갈망하게 되는 법이야. 갈망이 신호를 보내는 게 아픔인 거야. -뻔한 세상의 아주 평범한 말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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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로 빼곡하게 적어나갔던 자기소개서들이 생각났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면 아무것도 될 수 없었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 아무 가치도 없다는 것으로 간주되어버린다는 점이 그 시절 나의 고난이었으나, 어떤 자기소개서에도 그런 고난을 적을 수는 없었다. 거짓고난과 거짓 깨달음과 거짓 열정을 지어냈다. 사람을 만날 때에도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은 내 거짓 아픔을 좋아해줬다. -선샤인 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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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텅빈 껍데기밖에 없는 이야기를 작성하고 있었다. 두리뭉실하게 옳은 말들. 이 뜻도 저 뜻도 아닌 중립적인 말들. 아무도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만이 겨우 살아남아 있었다. 오직 착하고 선한 말들. 선의만 남겨놓느라 공허해진 글이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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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8편으로 이루어진 단편집.
임솔아작가의 책은 처음 읽었는데, 단편이지만 읽는데 꽤나 오랜시간이 걸렸다.
억압된 감정이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차별받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이들을 이야기하고, 폭력이 아닌 것처럼 가장되어 있지만 엄연하게 폭력인 것들에 대해 담았다.
아픔도 아픔이 아닌냥 포장하고, 억압과 폭력을 일삼지만 그것이 옳다 생각하는 이들이 곳곳에 등장하고 자신만의 잣대를 들어 생각하고, 타인을 판단한다.
온 몸으로 저항하지만, 미약한 힘은 번번히 좌절하고 만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왜곡되어 상처받은 삶을 묵직하게 그려냈고, 가혹한 현실속에서도 살아가야만 하는 이들의 처절함이 담겨 있어 시종일관 무거움이 가득했던 책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무단히도 노력하는 이들에게서 미약하게나마 희망을 느끼기도 했다.
선한폭력은 누가 정하나요? 라는 물음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