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다 다이어리 - 나에게 말하지 않는 단어들
베로니크 풀랭 지음, 권선영 옮김 / 애플북스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의 슬픔을 기억한다.
내가 느낀 분노를 기억한다.
내 안의 폭력성, 살기를 기억한다.
나는 엄마 아빠를 지키고 싶었다.
나는 부모님에 대한 자랑스러움과 창피함, 분노 사이에서 끊임없이 방황했다.p31

나는 TV를 보지 않고 목소리만 듣는다. 목소리를 듣기 위해 TV를 틀어야 했다.
나는 고요함에 대해 말할 수 있다. 부모님들이 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집안은 고요해 보였지만 그들의 시끄러운 숨소리, 입으로 내는 소리들, 냄비를 옮기는 소리 때문에 절대 고요하지 않았다.
불쾌하고 위협적인 소리들이 죽고 싶을 만큼 싫었다.
나는 말을 하고 싶었다.p34

나는 그들의 말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움직이는 손, 온갖 방향으로 뻗어 나가는 팔은 꽤 아름다웠지만,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희한한 웃음소리, 의성어들 그리고 꿀꿀거리는 불평등, 헐떡거리는 소리, 가끔씩 들리는 단어 하나.... 그럴 때면 이들 사이에서 뭘 하고 있나 싶었다.p39

나는 평범한 부모님을 갖고 싶었다. 가끔 전생에 나쁜 짓을 많이 해서 이런 벌을 받았다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부모님을 싫어하는 내 자신이 싫다. 부모님이 장애인이라고 불평하는 것도 싫다. 그들 잘못이 아닌데도 나는 그들을 원망했다.
....
엄마 아빠에게 소소한 고민을 털어놓고 싶었다. 부모님이 나에게 조언도 해주고 진로 상담도 해주길 바랐다. 엄마에게 마음껏 전화를 걸어(중략)위로가 필요해서 엄마의 강자 요리가 먹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
나는 집을 떠나고 나서야 부모님이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 말을 하지 못해도 과분할 정도로 좋은 부모님이었다.p93-95

나는 엄마 아빠를 좋아했다.
그들을 미워했다.
그들을 밀어냈다.
그들을 존경했다.
그들을 창피해했다.
그들을 보호해주고 싶었다.
그들을 지루해했다.
죄책감을 느꼈다.
부모님이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오늘의 나는 엄마 아빠가 자랑스럽다.
그들을 지지한다.
그디로 그들을 사랑한다.
부모님이 이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p158-159
.
.
영화 #코다 의 원작 소설로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았다.
CADA는 'A Child of deaf adult' 의 약자로 청각장애인 부모나 보호자에 의해 양육된 사람을 뜻한다.
농인과 청인의 사이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부모를 부정하고 괴로워하지만, 그들의 사랑과 보살핌에 조금씩 성장해가는 주인공의 모습이 담겨 있어 뭉클하다.
농인도, 청인도 알지 못하는 코다만이 느끼는 감정들을 섬세하게 표현해 읽는 독자로 하여금 원망과 감사, 슬픔과 기쁨, 체념과 행복의 감정에 함께 공감하게 한다.

코다는 부모 혹은 보호자의 장애로 놀림을 당하고, 효도를 강요 받고, 원치 않는 과도한 동정을 받는 등의 경험으로 남들보다 조금 더 빨리 어른이 된다.
그들은 불쌍하고 동정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들리는 언어와 보이는 언어로 청인과 농인의 두 세계를 연결하고 조율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존재이기에 우리는 그들을 응원하고 자긍심을 갖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고 인식의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

여담이지만,
이 책을 읽으며 코다로 살아가며 겪었던 다양한 차별과 사회적 문제점들이 담겨 있었던 이길보라 감독의 '당신을 이어 말한다'가 생각났다.
수어는 하나의 언어로 인정되면서 수화에서 수어로 바뀌었고, 지금은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손 끝으로 전하는 표현과 마음이 배우고 싶어서, 1년 가까이 수어를 배운적이 있었는데, 너무 어려웠고 사용하지 않으니 지금은 모두 잊어 버렸다.
잠시 잠깐이었지만, 아주 조금이나마 농인들의 문화에 대해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올해도 시간이 허락한다면 다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화이트 러시 설산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연구소에서 유전자를 조작해 백신이 없는 탄저균을 가공해 생물학 무기인 K-55를 만들었다가 발각돼 연구소에서 쫓겨나게 되고, 여직원을 이용해 K-55를 훔친 구즈하라 가쓰야는 한 스키장의 나무 아래에 숨긴 후 수신기를 숨겨두고 표시로 테디베어를 걸어두고 사진을 찍어 연구소 소장에게 3억엔을 요구하며 협박 메일을 보낸다.
하지만 다음 날, 가쓰야가 자동차 사고로 죽게 되고, 소장의 지시로 구리바야시 가즈유키는 K-55를 찾으려 하지만, 스키장과 테디베어만으로 증거를 찾을 수 없어 스노보드에 빠져 있는 아들 슈토에게 도움을 요청해 스키장의 위치를 알아내고 아들과 함께 그 곳으로 간다.
스키장 패트롤 대원 네즈와 스노보더 치아키와 함께 공조해 K-55를 찾는 여정을 그려냈다.
이 작품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설산 시리즈 두번째로 약 10여년전에 #질풍론도 로 출간되었었고, 최근 소미미디어에서 화이트러시라는 이름으로 재 출간 된 작품이다.
일본에서는 영화로 만들어져 아베히로시가 주연으로 출연했다.

범인의 갑작스러운 죽음부터 생각지도 못한 전개인데다 다른 의도를 가지고 접근한 이들과 스키장을 누비며 추격전을 벌이는 이야기들이 스릴있게 펼쳐진다.
눈으로 뒤 덮힌 장대한 설원 스키장을 배경으로 해 쫓고 쫓기는 숨막히는 추격전을 통해 속도감과 스릴을, 다양한 인간군상을 통해그들의 탐욕과 고뇌를, 생각지도 못한 전개로 반전을, 청춘의 풋풋한 감정을 통해 설렘을, 그리고 저마다의 사연들을 담은 휴머니즘까지 다양함을 담아내 재미를 선사한다.
무엇보다 눈보라체이스에서 만났던 네즈 쇼헤이와 세리 치아키의 등장에 반가운건 비단 나만은 아닐 것이다.
페이지 터너 장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답게 이번에도 앉은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역시 겨울에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진과 데이브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0
서수진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술을 전공하고 제법 총망받았으나 현실의 벽에 부딪혀 학원 강사를 하다 꽃기듯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난다. 그리고 그 곳에서 호주 현지인 데이브를 만나 연애를 시작한다.
연애를 하며 서로 다른 문화에 소소한 싸움부터 큰 갈등까지 굉장히 생동감있고 세밀하게 담아냈다.
'문화차이'는 정말 많은 것들을 내포하고 있다. 하나하나 열거하기 힘들정도로 정말 소소한것들이 모두 갈등과 싸움의 원인이 된다.

물론 살아온 환경이나 문화차이가 좁혀지기 쉬운 문제는 아니지만, 비단 그게 국적이 달라서만은 아닐 것이다.
같은 국적, 비슷한 환경, 비슷한 성격, 취향, 가치관을 가져도 갈등은 항상 존재하고, 결국 좁혀지지 않고 문제가 계속되면 파국으로 치닫는 경우들이 비일비재하니까.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름을 매일매일 되새기며 서로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
국적과 상관없이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말이 아닐까 싶다.

상황을 모면하고자 하는 노력이나, 서로에 대한 애정 그리고 갈등상황들을 세심하게 담아 생생한 현실감이 느껴진다.
게다가 가독성도 좋아 재미있게 읽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두둥실 천국 같은
오가와 이토 지음, 이지수 옮김 / 더블북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슬픈 점은 그런 일을 당해도 아이는 부모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얻어 맞는 건 내가 잘못해서라고 생각했다.p9

사람이 사람으로서 분수를 지키며, 사람답게 명랑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지 않을까 싶은데.p20-21

아이가 부모를 고르지 못하듯 태어나는 나라도 고를 수 없다.
난민이 되고 싶어서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어쩌면 자기가 그런 나라에서 태어날 수도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걸까.
이대로라면 인간으로서의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게 된다.
모처럼 인간으로서 노력을 거듭해 쌓아온 것이 허사가 된다.
매우 슬픈 일이다.p43

행복한 나날이 갱신된다.
내가 타자를 이렇게나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예전에는 전혀 깨닫지 못했다.
...
회피하기 위해 애정을 억제하기란 불가능하니, 이렇게 된 이상 그 부분을 각오하고 온몸으로 직접 벽에 부딪히는 수밖에 없다.
인간 자식은 부모에게서 독립해 품을 떠나지만, 반려동물은 수명이 다할 때까지 계속 함께한다.p61

가족이 서로 돕는 건 이상적인 모습이고, 가능하면 그렇게 지내고 싶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뜻처럼 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런 것을 나라가, 법률이 강제하지 말았으면 한다.
가족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으니까.p92
.
.
달팽이 식당과 츠바키 문구점으로 유명한 오가와 이토의 에세이로 평범한 일상과 소소한 행복을 담았다.
함께 사는 반려견, 반려인과 도쿄와 독일 베를린을 오가며 지낸 1년간의 기록을 담은 이야기다.
폭력을 휘두른 엄마였으나 그럼에도 엄마를 사랑했고, 암으로 돌아가신 후에 자신의 방법으로 애도하며 그리워하는 내용과 트럼프에 분노하는 내용, 반려견과의 평범한 날들을 담았다.

작은 일에 기뻐하고, 맑은 하늘을 보며 행복해하는 소박하고 평온한 일상과 생각들이 잔잔하게 흘러 따뜻함을 선사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주에 대하여
김화진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로의 밑바닥을 봐야만 진정한 사이라는 말을 믿지 않았다. 스스로의 밑바닥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낙관적인 인간들이나 그런 말을 한다고 여겼다. 밑바닥은 그렇게 보여주자고 마음 먹는다고 보여지는 게 아니라 둑처럼 터지는 것이었다. 차오를대로 차오른 물의 무게를 견디다 못해 둑이 터지고 마는 것이라고.p108 -꿈과 요리 中-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고 피하고 싶은 것은 절대 피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아주 많이 불안했고, 그럼에도 누군가가 좋았다.p165 -척출기 中-

소수는 외롭지만 그렇기 때문에 외롭지 않을걸요. 반대로 그 외롭지 않을 수 있는 능력 때문에 외로워지기도 하고요.p257-침묵의사자 中-
.
.
-새 이야기: 좋아했던 남자가 실은 자신을 너무 좋아해서 사람이 된 천둥오리라는 이야기
-나주에 대하여 : 사별한 남자친구의 전 여자친구이자 직장동료 나주를 관찰하고 SNS를 몰래 염탐하며 지켜보는 이야기
-꿈과 요리: 서로를 향한 질투와 불만을 가졌던 두 친구 이야기
-근육의 모양: 필라테스 강사와 수강생의 이야기
-척출기: 귀에 생긴 종양 제거 수술을 앞둔 임용고시생 이야기
-정체기: 성소수자 연인 이야기
-쉬운 마음: 성소수자가 이성애자라 생각한 직장후배에게 호감을 갖는 이야기
-침묵의 사자: 누구도 볼 수 없는 사자를 보는 이야기

누군가에 대한 열망, 애틋함, 방황, 질투와 불안, 연민을 안고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흔한 이야기를 흔하지 않게 담아 타안의 마음에 귀 기울이고, 위로하고, 공감하게 해 주는 책이다.
먹먹한 가운데 '새 이야기' 단편은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이유리 작가의 브로콜리 펀치가 생각나기도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