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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 ㅣ 자이언트 픽
이유리 외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1월
평점 :
아무래도 감정이 그만큼 진하고 강렬하기 때문이 아닐까. 단지 떠올리며 숨을 내쉬기만 했는데도 날숨에 뚝뚝 묻어 나올 만큼, 내 안에 이 기억들이 아직 생생하게 살아 있는 탓이겠지. 그건 아직도 이렇게 예쁜 색깔이구나. 이토록 고통스러운데도 이토록 아름답구나.p26-27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 中-
어른들은 내 삶이 하나의 단계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내게서 자신의 과거를 보고, 나의 미래를 자신의 현재라 여긴다. 어른들은 학생을 만나면 사람으로 보지 않고, 어떤 시절이라고 믿는게 틀림없다.p63-64 -폴터가이스트 中-
어떤 사람들은 지금의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되기를 꿈꿔요. 그런 욕망 중 쉽게 승인되는 것들은 거대한 시장을 이루죠. 하지만 승인받지 못한 욕망들도 결국은 어디론가 흘러들어 조그만 웅덩이를 만들어요. 그런 갈망은 쉽게 떨쳐버릴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p132-133
다른 존재가 되고 싶다는 갈망, 혹은 진짜 내가 되고 싶다는 갈망이란 대체 뭘까요? 그것은 어떻게 태어나고 자라서 한 사람의 뼈를 이루게 되는 걸까요. 그 마음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손끝에 닿는 두툼한 인공 피부의 감촉을 느낄 때면 알 수 있었죠. 아, 이 갈망은 분명 여기 실재하는 것이구나.p134
-수브다니의 여름휴가 中-
-그림자를 볼때 모든 나비가 똑같아 보이는 동일성.
-하지만 결국 같은 나비가 아니라는 차별성
-그리고 이 나비는 결코 진짜 나비가 될 수 없다는 불가능성. 그것이 아름다움이지. 같고, 다르고 불가능을 이야기하는.p254 -뼈의 기록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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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 # 이유리
-사랑하는 연인이 떠나고, 아픈 고양이만이 남은 수진은 사랑이라는 남은 감정이 쓸모없다 느끼고, 아픈 고양이의 치료비가 필요해, 마침 남편의 외도로 괴로워하는 친구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판다.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 영인은 수진에게 한 남자를 소개하고, 그와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그의 비밀을 알게 되는데...
<폴터가이스트> #김서해
-이상한 소리를 듣고, 학교에서는 따돌림을 당하는 세인이 인싸인 현수와 친해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갑자기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구가 나타나고, 사람들은 이상한 소리를 듣고, 갑작스레 사고가 발생하는데....
<수브다니의 여름휴가> #김초엽
-편지글의 형식으로, 원하는 피부로 만들어주는 인공피부시술소의 이야기를 담았다.
수브다니라는 손님이 자신의 피부를 금속피부로 교체해달라며 지속적이고 집요하게 요청하고, 수브다니가 원래 안드로이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요청을 수락해 금속으로 교체해주는데...
<미림 한 스푼> #설재인
-외계인 솜새끼가 벌이는 큰 서바이벌과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주경의 작은 서바이벌이 교차되며 진행되고, 솜새끼 때문에 집밖으로 나갈 수 없는 상황에서 주경은 지하에 사는 미림에게 찾아가는데...
-<뼈의 기록> #천선란
장의사 로봇 로비스의 이야기로, 여러 시신들의 염을 하면서, 그들의 삶을 그리고 가족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친구로 불러주던 청소부 로미의 죽음에 로비스는 처음으로 병원 밖을 나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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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하고 흥미롭다.
내게 있는 감정을 타인에게 이식하고 전이시킬 수 있는 세상, 살아남은 자의 고통과 죄책감에서 비롯된 감정, 기계와 인간 사이에서 정체성을 고민하는 삶, 가정폭력, 경쟁구도에 물들어 살아남아야하는 서바이벌 형식의 사회, 누구도 알지 못하는 죽은 이들의 삶을 마주하는 이야기들이 인간의 본질과 삶에 대해 생각하게 해 묵직하게 다가온다.
단편들 중에 천선란 작가의 뼈의 기록이 가장 마음에 들었는데,
역시나 천선란 작가 특유의 쓸쓸함과 다정함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일년에 한번 매해 첫 달에 출간될 예정인 자이언트픽 앤솔러지!
작년엔 놀이터, 이번엔 사랑을 주제로 젊은 작가들이 한대 모여 다채로운 이야기를 펼쳐냈다.
내년엔 어떤 주제로 어떤 작가들이 재미와 감동을 선사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