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어떤 식으로 떠올리지?""슬픈 거부터.""내가 잘못했던 것들을,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상대방의 모습을."p29"무엇을 지키려 했다는 게 뭐가 중요해. 그것을 지키기 위해 무얼 했느냐가 중요하겠지."p33'마음에 드는 걸 선물해야 해. 그래야 너한테 준 걸 내가 보고 싶어서 자꾸 너를 보러 오지.'p41'마음은 목적이야. 네 목적에 가장 빨리 닿으려고 애쓰는 게 마음이야.'p44마모되지 않은 기억의 모서리를 천천히 쓰다듬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날카로움에 손끝이 베이지 않길 기도하는 것뿐이다.p70인간은 초월적인 힘을 원한다. 세상 대부분을 물질의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도 초자연적인 현상은 다른 범주의 일이라 믿는다. 세상의 단순한 규칙을 두고 어렵고 복잡하며 이해할 수 없는 희생적 규율을 만든다. 비슷하지만 다른 형태로 지역과 시대를 망라하며 무수히 많은 종교가 생겼다 사라졌다.p76-77우주에 갈 수 있던 시대의 사람들이 별을 알 수 있었음에 감사하지 않았다는 건 안다. 도시의 불빛은 낮의 태양처럼 밝아 밤에도 별이 보이지 않고, 그렇게 사라진 별을 아무도 찾지 않고, 세상의 범위가 우주로 확장되며 지구를 마치 하나의 마을처럼 취급하지 않았던가. 이 마을 하나쯤은 사라져도 다른 곳으로 가면 그만이라고 착각하며.p85"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 그게 그리움이라는걸.""그럴까...""그건 정말이지 못된 감정이야. 시효도 길어 우리를 뜨겁게 하는 것들! 사랑! 질투! 원망! 이런 건 다 금방 증발하는데 우리를 하염없이 가라앉게 만드는 이 감정은 정말이지 너무너무 길어. 그래서 시간이 흐를수록 생명체는 잠잠해지나봐."p136..49세기 사막에서 랑은 사막에 묻혀 있는 전쟁시대에 만들어진 로봇을 발견해 집으로 옮겨 와 고고라는 이름을 지어 준다.유한한 인간의 수명을 다한 랑이 세상을 떠난 후 고고는 홀로 사막에 남는다.랑의 친구는 고고에게 같이 떠나길 권하지만, 고고는 거절하고 과거로 가는 길을 찾아 나선다.모래폭풍이 몰아치면 무릎을 끓어안아 몸을 움추려 폭풍을 피하고, 홀로 떠난 길에 말라서 미라가 된 한 남자의 시신을 발견해 묻어주기도 하고, 자신을 만들어 준 인간을 기다리며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양쪽 팔이 없는 로봇을 만나 자신의 팔 한쪽을 내어주기도 한다.고고는 과거로 가는 길의 여정 내내 랑을 떠올린다.그리움이라는 감정을 모르는 로봇이지만, 고고는 걷는 내내 랑을 추억하다 이 감정이 그리움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자신을 발견해 함께 해준 랑을 떠나 보내고, 외롭고 열악한 사막에서 홀로 버티며 내내 애도하는 고고의 그리움이 느껴져 안타깝기도 하고, 과거로 돌아가기 위한 고고의 마음이 따뜻하기도 하다.쓸쓸하지만 다정한 위로를 건네는 작품이다.참 좋다. 천선란 작가가 만들어 내는 이야기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