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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빨간 맛 - 발렌시아에서 보낸 꿈결 같은 한 해의 기록
한지은 지음 / 바이북스 / 2020년 4월
평점 :
‘아, 여기서 살아야겠다.’
유목민이 아닌 정착민들에게 어려운 선택이다. 어느 순간 떠나고, 어느 순간 머물며, 또 어느 순간
돌아오는 일. 저자인 그녀는 가능했다. 50여 개국 이상을 여행한 그녀는 어느 날 스페인 남동부에 위치해있는 발렌시아에 머물기로 했다. 아니, 더 정확히 밀하자면 빨래를 하기로 했다.
대한항공의 광고문구가 한창 유행을 한 적이 있었다. ‘여행은 살아보는 것’이라는 광고카피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주요 관광지에 내려 사진만 찰칵하고 찍고, 그 다음 지점을 찾아나서던 시절이었다. 아마도 여행에 익숙치 않은 한국인들에게 진짜 여행이라는 의미가 다가오게 된 광고가 아니었을까 한다.
“이제 이곳은 토마토가 곳곳에 흩뿌려져 있는 정도의 가벼운 사건 현장이 아니었다.”
그녀는 토마토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스페인의 빨간 맛’을 느끼기로 했다. 관광지를 찾아나선 것이 아니라 진짜 그곳을 경험하기로 한 것이다. 목적만 보며 질주하는 것을 그만두고, 잠시 쉼을 찾아가는 시간. 조금 긴 여행의 기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녀의 책으로 잠시나마 스페인을 경험한다. 빨간 맛의 토마토 전쟁이 일어나는 곳. 그곳의 진짜 문화를, 진짜 사람들을 그녀를 통해 만나본다. 잠시의 쉼이다.
📚 책 속에서...
그 해의 발렌시아를 떠올리면 나는 오묘한 기분에 휩싸인다. 꿈이라고 하기엔 분명 1년여의 시간 동안 내 몸이 숨을 내쉬고 들이마신 곳이었고, 현실이라고 하기엔 그 공간도 그 시간도 어딘지 아득한 느낌이 있다. 2018년의 스페인을 나는 꿈과 현실, 그 사이의 어디쯤인가로 기억한다.
📚 책 속에서...
사람은 모름지기 꿈을 갖고 살아야 하는 법이고, 꿈을 향해 달리는 인생만이 이상적이고 가치 있는 인생이라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꿈은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인 동시에 때때로 나를 모질게 옭아매는 굴레일 수 있음을, 나는 세월을 통해 시나브로 알아갔다.
📚 책 속에서...
발렌시아에선 길을 잃어도 괜찮아. 아저씨의 그 한마디가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았다. 도시는 그 넉넉한 품 안으로 모든 이들을 차별 없이 끌어안았다. 그리고 우리는 그 품 안에서 깊은 안정감을 누렸다. 그 평온에 관한 기억으로 아저씨와 내가 공감대를 이루기까지 우리의 어휘엔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