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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세계
톰 스웨터리치 지음, 장호연 옮김 / 허블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모든 인간의 치명적인 결함은 우리 자신이 실재한다고 철석같이 믿는다는 거네. 자신이 실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확인할 때까지는 그렇게 믿지.”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존재를 믿는다. 지금 이 순간 만져지고 느껴지는 육체와 심리의 모든 것들이 진실이라고 믿으며 삶을 살아간다. 저 문장을 보고 소름이 돋는다. 우리는 진짜 실재하는 존재는 맞는 것일까? 우리는그저 거품처럼 사라질 존재는 아니던가? 손으로 만져지지 않는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 봉착한다. 나는 실재하는 것인가?
이 소설은 인류의 종말을 막기 위해 미래를 수사하는 ‘장애인’이자 ‘여성’인 수사관의 이야기가 담긴 시간 여행 SF소설이다. 소설은 20년의 시간을 오가며 진행된다. 주인공인 섀넌 모스는 일가족의 살인사건을 좇으며 시간 여행을 하면서 인류의 종말이 이 사건과 관련 있음을 알게 되고, 종말이라는 절망적인 상황과 맞서게 된다.
시간 여행을 한다는 설정은 ‘존재’와 ‘비존재’의 사이에서 많은 것을 고민하게 한다. 확정되지 않은 미래를 관측하고 다시 돌아왔을 때, 그 미래는 다시 ‘존재하지 않던’ 세계로 돌아가지만 늘 혼자이다. 누구에게도 도움받지 못하고 상흔만 남긴 채 계속해서 낯선 곳에서 수사를 펼쳐간다.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으면서 또 존재하는 존재의 의미마저 생각하게 한다.
시간 여행자가 돌아오면 ‘사라지는 세계’.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이 설정은 ‘사라져버릴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인간들의 관점이 얼마나 가볍고 잔인한지를 동시에 보여준다. 사라져버릴 세계이기에 잔혹한 살인을 아무렇지 않게 일삼고, 불행하기만 한 미래의 내 모습 혹은 내 가족의 모습을 보며 존재하지 않는 세계라 눈감아버리는 장면들은 인간의 이중성마저 느끼게 한다. 첫 장면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 소설은 잔인한 공포를 갖게 하여 독자들의 시각적 상상을 전개시키며, 매혹적인 시간 여행으로 독자들을 매료시킨다.
* 영화 <디스트릭스9>의 감독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작품’이라 칭송했을 뿐 아니라 여러 세계적인 잡지에서도 찬사를 받은 이 소설은 ‘올해 최고의 책’으로 선정 되기도 하였다.
📚 책 속에서...
어렸을 때 모스는 어머니가 그저 술만 마시는 망가져버린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녀 또한 상처를 받은 사람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시야가 넓어진 것이다. 누구든지 성인이 되면 똑같은 수렁에 빠지고, 그렇게 상처를 받고 나면 타인의 상처를 더 쉽게 알아보는 법이다.
📚 책 속에서...
내가 해당 미래 세계에 도착함으로써 존재하게 된 삶, 내가 떠나고 나면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끝나버리는 삶이다. 그녀는 아주 작은 존재 가능성에 기댄, 마치 유령 같은 존재였다.
📚 책 속에서...
더 이상 죽지 않게 되자 불멸의 사람들은 오히려 죽음을 간절히 바랐습니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삶이란 의미가 없으니까요. 예전에는 지옥이 신의 부재라고 생각했지만, 지옥은 죽음의 부재입니다.
📚 책 속에서...
모든 인간의 치명적인 결함은 우리 자신이 실재한다고 철석같이 믿는다는 거네. 자신이 실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확인할 때까지는 그렇게 믿지. 우리가 보는 모든 것, 우리가 느끼는 모든 것은 우리가 살아 있다고 말하지. 우리 주위의 모든 것이 진짜라고 떠들어대는 거야. 하지만 전부 새빨간 거짓말이야. 우리는 그저 환상을 꿰뚫어보지 못하는 것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