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의 고고학 - 로마 시대부터 소셜미디어 시대까지, 허위정보는 어떻게 여론을 흔들었나
최은창 지음 / 동아시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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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더라!’ 통신 일색이다. 우리는 매일을 카더라 통신을 보고 있다. 최근 포항의 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 18명이 코로나 환자를 보기 싫어 사표를 냈다는 기사가 났다. 어떤 이들은 이해했지만, 대부분은 “이 시기에? 설마?”라는 반응이었다.

코로나 집중병원으로 확정된 뒤 낸 집단사표라는 헤드라인은 혼란스러운 시기에 사람들을 동요 시키기에 충분했다. 이튿날 정정보도가 올라오긴 했으나 간호사들의 마음의 상처는 누가 정정해주랴? 인터넷에선 기레기(쓰레기 같은 기사를 쓰는 기자를 이르는 속어)를 욕했고, 이제까지 나온 기사들의 진실성을 의심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가짜뉴스 일색이다. 유튜브나 페이스북 등의 SNS와 각종 미디어의 발달은 가짜뉴스를 대량생산해내기 시작했다. 알고리듬에 의한 맞춤형 뉴스와 정보가 넘쳐나 ‘확증편향’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무엇이 진실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대체 그들이 감추고픈 진실, 주입시키고 싶은 사상은 무엇인가 하는 의심만 늘어날 뿐이다.

가짜뉴스는 로마시대부터 있어왔다. 아마도 그전부터 정치권력의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해, 혹은 권력투쟁에서 이기기 위해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가짜뉴스를 만들어왔을 것이다. 로마의 최초 황제가 된 옥타비아누스부터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등모두 권력이나 돈을 위한 투쟁이다.

구전으로만 유포되던 허위사실이나 가짜뉴스는 새로운 매체가 등장할 때마다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중세 인쇄술이 발명 되었을 때 종교에 대항하는 세력이 생기고, 신문이 발행되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을 자극하기 위한 가짜뉴스로 매체들은 돈을 벌었다. 뉴스의 팩트를 체크하기 시작한 것이 1923년이라고 하니 그 전에는 얼마나 많은 사실들이 왜곡되고 오도되었을지는 말할 것도 없을 듯 하다.

고대부터 줄곧 있어왔던 프로파간다(대중을 특정한 방향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유도하는 홍보전술)는 미디어의 발달로 앞으로 더 심화될 것이다. 그렇다고 국가가 가짜뉴스를 통제하는 역할을 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의 사상적 자유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고 자칫 잘못하다간 사상의 통제까지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실을 억누르지 않으면서 거짓을 억누르는 방법은 없다” <예일대학교 로스쿨 토머스 에머슨>


물론 일반인들이 정보를 필터링해서 받아들이고 비판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한다면 좋겠지만, 사상의 주입과도 같은 확증편향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정확한 보도, 팩트체크 등 저널리즘의 역할과 책임도 중요할 뿐 아니라, 알고리듬을 통해 뉴스를 걸러주는 소셜 미디어 플랫폼의 역할이 무척이나 중요해지는 시기이다. 올바른 언론문화가 정착할 수 있는
소셜미디어 플랫폼 시스템이 생겨나길 간절히 바래본다.



📚 책 속에서...
그는 파리의 변두리에서 수제 인쇄기로 가짜뉴스를 찍어냈다. 보스턴에서 발행되던 신문 《인디펜던트 크로니클Independent Chronicle》의 ‘증보판’을 위조하여 뉴스를 실은 다음, 영국의 신문 편집자 손에 자연스럽게 들어가도록 매우 주도면밀하게 움직였다.

📚 책 속에서...
거짓과 허위정보는 대중의 관심을 이끌고 분노 감정을 유도하기 위한 사실의 날조, 왜곡하는 전언傳言, 증오심 부풀리기, 적군과 아군을 나누는 선동의 요소였다. 그것은 갑작스러운 낯선 침입자가 아니라 정보 생태계의 오랜 주민이었고, 우리 자신이기도 했다. 인쇄술, 라디오, 무선 전신, 웹브라우져, 모바일 인터넷 등 기술 발전에 힘입어 미디어의 힘이 강력해지는 동안 허위정보도 그림자와 같이 진화를 거듭했다.

📚 책 속에서...
미디어의 역사는 허위정보 전파의 역사이기도 했다. 16세기 팸플릿의 시대부터 1930년대 라디오의 전성기, 1960년대 TV 뉴스 방송에서도 오보와 허위정보는 흘러나왔다. 완전한 사실만이 뉴스로 전달되던 시대는 한 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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