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언 달러 초콜릿
황경신 지음, 권신아 그림 / 북하우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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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황경신님을 처음 만난 건 잡지 '페이퍼'에서였다. 페이퍼의 필진들 모두 독특한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이라 잡지 자체에 묘한 매력이 풍기기도 했지만, 특히 황경신님의 글은 무엇인가에 푹 빠져들기 두려워하는 겁쟁인 나에게, 빠져들 수 있음의 미학을 가르쳐주었다고 할 수 있겠다.

 

'밀리언 달러 초콜릿'은 황경신님이 12년 동안 PAPER를 통해 발표한 글들과 권신아 작가의 일러스트가 함께 수록된 감성 에세이이다. 때로는 시로, 때로는 동화로, 때로는 에세이의 느낌으로 사랑에 대해, 추억에 대해 조근조근 이야기해주고 있다.

 

사랑에 처음 빠졌을때의 달콤함, 그리고 막 이별하고 돌아설때의 쌉싸름함에 대해 여러가지 형태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럴테면 이런 구절들.

 

달콤한 데이지꽃 향기가 손바닥에 가득 찼다

은밀한 초콜릿 향기가 심장을 찔렀다

나의 마음은 우윳빛 눈보라가 몰아치는 강,

조각배 위에 누워 있었다.

 

모든 것이 너무 순간이었고, 나는 너무 두려웠다

뜨거운 불을 만진 듯 달빛으롭터 황급히 손을 거두었다

툭,툭,메마른 땅 위로, 먼 우주에서 지금 막 도착한 사랑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사랑은 어디서 오는가 中>

 

 

사랑을 해도 외롭고 사랑을 하지 않아도 쓸쓸한 봄날, 하지만 세상은 너무나 아름다워 그것만으로 눈물겹게 행복해지는 봄날, 그런 날들이 막 시작되려 하는 어느 날 아침에 나는 무엇인가를 잃어버렸다. 그건 어제까지만 해도 소중하게 붙잡고 있었던 기억이었을까? 아니면 끝내 떨쳐버리고 싶었던 기억이었을까? 다시 돌아온 이 봄날이 또다시 떠나는 그날, 그는 내게서 무엇을 가지고 갈까? 혹은 무엇을 남겨두고 갈까?

<봄날이 가지고 가는 것 中>

 

사랑이란 것은 영원히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라고 늘 생각해왔다. 손에 잡히지 않으니 애써 모른척해도 된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황경신님의 달콤쌉싸름한 글들을 읽으며 그런 내 생각은 바보같은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는걸 깨달았다. "내가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는 한, 나의 삶과 나의 꿈에서는 언제나 초콜릿 향기가 날 것이다."라고 서문에 밝힌 황경신 작가-그의 말처럼 사랑은 어쩌면 달콤쌉싸름한 초콜릿과 닮아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맛보는 것만으로, 향기를 맡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초콜릿과 사랑은...비슷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황경신님의 맛있는 글과 더불와 권신아 작가의 아름다운 일러스트를 함께 감상할 수 있다는건 이 책의 또다른 매력이라 말할 수 있겠다. 나만의 개인적인 생각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황경신님의 달콤한 글은 권신아 작가의 쌉싸름한 일러스트와 제일 잘 어울리는것 같다.

 

무언가 심심하고 무료한 오후 저녁, 밝은 햇살과 <밀리언 달러 초콜릿> 책 한 권만 있다면 당신은 이 세상 어느곳이라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을 것이다. 달콤 쌉싸름한 그 무엇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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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버린 여인들 - 實錄이 말하지 않은 이야기
손경희 지음 / 글항아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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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느 시대이든지, 하층민 여인들의 삶은 고단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조선시대만큼 그녀들이 고단했던 시대가 또 있었을까 싶다. 남성과 여성의 입지가 거의 평등했던 고려시대가 무너지고 새로운 조선이 들어섰다. 조선은 망한 고려를 대신해 새로운 윤리를 내세워야했다. 그래야 국가의 질서가 제대로 잡힌다고 생각했다.

성리학적 윤리를 내세워 여성들에게'' 무자비한 압박을 가했다. 친척외에는 친구도 만나지 못하고 하고, 삼강행실도에서 '열녀편'을 제작해 오로지 자신의 남편에게만 복종하고 순종하도록 만들었다. 또한 여자종에게는 강상 윤리가 적용되어 주인이나, 주인마님에겐 어떤 반항도 할 수 없었다. 살기 위해선 그저 바짝 엎드려 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실록에서조차 일반 여성들이나, 밑바닥 삶을 살았던 여인들에 대한 기록은 없다. 다만 실록에 언급되는 여인들은 왕에게 그 사실이 보고될 정도로 사회적 파장을 크게 일으킨 경우에만 기록되었다.

책에 기록된 33人의 여인들의 사건을 살펴보노라면, 그들의 억울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꿈에 남자를 봤다는 이유로 처참하게 난자당해 죽은 고읍지(32p)는 결국 억울한 죽음으로 남았다. 고읍지를 죽인 남자는 왕의 아들이였기에, 사건이 허겁지겁 덮여졌기 때문이다. 아들과 아버지 사이에서 성적 노리개 신세가 되었다가 억울하게 쫓겨난 파독(297p), 두 남자 사이의 싸움에서 결국 억울하게 혼자 죽임을 당한 근비(93p)등 피해자이면서도 가해자들과 함께 고문당하다 억울하게 죽임당한 여자들이 수도없이 등장한다.

앞서 말한것처럼, 성리학적 윤리와 강상 윤리를 적용하여 종이나 노비였던 그녀들의 죄를 크게 물은 이중적 잣대의 시선도 있겠지만, 권력의 힘에 의해 왕이나 고위 대신들에게 비호를 받은 남자들은, 상대적으로 비천한 여인들보다 법의 굴레에서 자유로웠다. 하층민 여성들은 노비가 되어 멀리 변방으로 쫓겨나거나, 심하면 참형이나 교형등의 사형에 처해졌다. 하지만 남자들은 잠시 파직되었다가 다시 복직되어 승승가도를 달린 경우가 많았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조선시대의 남성위주의 법과 관습은 뿌리깊게 전해져내려와 아직도 여성에게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조선시대에 버림 받았던 그녀들의 삶이 먼 시대의 실록 속 이야기가 아니라, 마치 어제 일어난 이웃집 사건처럼 생생하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불합리한 상황속에서도 그녀들은 살아남고자 애썼다. 자신의 억울함을 피력하기도 했고, 자식에게 상처가 되면 강상윤리를 어기고서라도 관아게 고발했으며, 온갖 질투속에서도 자신의 살길을 찾았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안타까움에 몸서리치면서도 끝까지 책을 놓지 못했던것 같다.

자칫 야사로 그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작가의 상상력과, 깊이 읽기라는 챕터를 통해 잘 구성한 <조선이 버린 여인들>. 대한민국의 여성이라면 꼭 한 번 읽고 과거, 현재, 미래를 통찰할 수 있는 시선을 가지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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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싱로즈
세르다르 오즈칸 지음, 유정화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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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에 세상 모든걸 잃어버린듯 실의에 잠기는 다이애나. 그런 그녀를 괴롭히는 또 하나의 사실은, 어렸을때 헤어진 쌍둥이 동생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녀의 이름은 메리. 죽은줄만 알았던 아버지가 쌍둥이 동생 메리를 데리고 멀리에서 살고 있었다는 것. 어머니는 유언처럼 메리를 찾으라는 말을 남긴다. 하지만 다이애나는 모든 것이 혼란스럽다. 항상 힘이 되어주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든데...난데없는 쌍둥이 동생이라니!

메리는 네 통의 편지를 어머니에게 보냈다. 찾아오겠다고 말하던 그녀는 끝내 어머니를 찾아오지 않았다. 그 대신 수수께끼같은 메리의 편지만 남았다. 다이애나는 편지를 바탕으로 자신의 동생을 찾아야한다. 

다이애나가 생각하기에 자신의 동생은 미친것이 틀림없다. 제이넵 하님의 정원에서 장미 목소리를 듣는 연습을 하고, 어느날 자신의 방에서 장미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어머니에게 편지에서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다이애나는 동생의 흔적을 찾기 위해 이스탄불로 날아가 제이넵 하님을 찾는다. 

그녀는 가르침의 대가로 다이애나에게 '자신을 죽일 것'을 요구한다. 다이애나안에 장미의 말을 듣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아를 죽이고 새로운 마음으로 수업에 참여하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녀는 제이넵 하님의 수업에 참여하면서, 그리고 장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점차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조화가 점차 유행하자, 조화장미의 모습에 자신을 맞추려고 향기를 잃어버려 끝내는 아무 특징없이 죽어가던 장미-그 장미의 이야기에서 다이애나는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어렸을때는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오로지 자신만의 향기를 내뿜었는데 점점 커가며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었다. 주변 사람들은 다이애나를 숭배하는듯 보이지만, 자신들의 시선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난 다이애나를 참지 못한다.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에 휩쓸리는 다이애나...그것이 바로 자신의 모습이다.

에페수스에서 온 장미는 어떠한가. 두 송이가 한데 엮여 있어서 두 송이는 한송이처럼 공생하며 살아야하지만 한 장미는 자신이 아리테미스 여신의 장미라며 으쓱대는 한편, 다른 장미는 자신을 평범한 미리암이라고 지칭하며 아리테미스 장미에게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라고 충고한다. 다이애나의 이름에서 파생된 또 하나의 애칭 여신. 친구들은 다이애나를 여신으로 받들며 다이애나의 진정한 자아를 돌아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장미 미리엄은 아리테미스 장미에게...그리고 다이애나에게 진정한 자신을 돌아보도록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이다.

다이애나는 마침내 깨닫는다. 여동생 메리의 편지와, 어머니의 눈빛을 닮은 제이넵 하님의 수업에서 내면의 목소리를, 장미의 목소리를 듣는 법을 깨우친 것이다. 결국 다이애나는 쌍둥이 여동생 메리를 찾는다. 메리는, 다이애나의 내면의 목소리이자 내면의 거울이였던 것이다.

다이애나는 유망해 보이던 변호사 자리를 포기하고 내면에서 원하던 작가의 길을 걸어간다. 그리고 자신을 떠받들던 친구들 대신,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가던 화가 남자친구를 만나 에페수스로 떠나게 된다.

우리는 점점 커가면서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법을 잊어버리게 된다. '나'라는 사람보다는 주위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에 더 귀를 기울이게 마련이다. 그런 나의 모습은 향기잃은 장미처럼 알맹이 없는 껍데기만 남기 마련이다. 이 책에서는 장미의 목소리를 듣는 법-즉 나의 내면에 귀기울이는 법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책을 잃으며 나 역시 아르테미스 장미처럼 다른 사람의 눈을 더 의식하고 있는 건 아닌가 많이 생각해보았다. 지금이라도 장미의 목소리를 듣는 법을 연습해서 진정한 향기를 내뿜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잃어버린 장미를 찾아가는 여정-그것은 장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시작되고, 또 완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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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투쟁 - 조선의 왕, 그 고독한 정치투쟁의 권력자
함규진 지음 / 페이퍼로드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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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생각하면 모든 것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절대권력자가 떠오른다. 내가 마음먹은대로 나라를 이끌어가는 절대군주. 하지만 이 책에서 그리는 왕은 그렇지 않다. 제목에서 보여지듯 정치투쟁의 한가운데 서있는 외로운 존재인 왕. 그들의 투쟁의 역사가 조선의 대표적인 네 명의 왕에 의해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세종>
훈민정음 창제라는 커다란 과업으로 후대에까지 칭송을 받는 성군. 세종으로 인해 조선의 한 기틀이 잡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세종은 모범적인 왕이였다.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해 정치에 적절한 균형을 잡아왔고, 자신은 신하들도 딴지를 걸지 못한 획기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음악, 과학, 그리고 문학에 기틀을 잡아갔다. 하지만 안으로 잡힌 기틀을 바탕으로 세력확장을 노렸다면 지금 우리나라의 지도가 바뀌지 않았을까? 

<연산군>
폭군으로 이름을 알린 왕. 공포정치로 신하들과 백성들을 고통의 늪으로 밀어넣었다고 후대에까지 폄하받는 왕. 그도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였다. 태평한 세월, 신하들이 사소한것까지 트집잡으며 왕을 견제할 것이 아니라, 조화롭게 정치를 이어나갔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럼 무인 기질이 다분했던 왕은 태평한 세월을 기반으로 삼아 우리나라의 세력확장에 더 힘쓰지 않았을까?

<광해군>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의 절대절명의 순간에서 사지를 떠돌며 백성들을 살피고 의병을 일으키던 젊은 세자. 하지만 그는 세자가 되기까지, 또한 왕이 되기까지 너무나 많은 정쟁과 의심속에 살아야했다. 그래서 매순간 자신의 '안전'을 염두에 두어야했고 그런 나머지 계모이지만 자신의 어머니까지 유폐하는 일을 저지른다. 후대엔 그의 중립정책이 다시 재평가되고 있지만 그가 자신의 안전에 힘쓰는 대신, 자신을 믿을만한 사람으로 변화시켰다면 우리나라의 모습은 지금과 다르지 않았을까?

<정조>
최근 여러 케이블 tv와 연속극에서 정조에 대한 사극이 방영중이다. 개혁군주로 당당히 시작한 정조. 처음엔 영조의 탕평책을 적절히 변화시켜 당파 싸움을 최소로하고 여러가지 정책을 개혁하며 개혁군주의 모습을 보여주던 정조는 결국 전제군주의 모습으로 바뀌어간다. 왕권을 강화시키기 위해 자주 행정을 교체하던 그는 결국 불안한 시국속에 스러져간다. 정조의 개혁정치가 끝까지 빛을 밝혔다면 어땠을까?

네 명의 왕은 각각의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다. 사극에서 그려지는 온화한 모습만이 아닌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또는 개혁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고뇌하고, 신권과 부딪치는 왕의 투쟁이 존재해왔던 것이다. 다만 그 방식에 따라 후대에 폭군이냐, 성군이냐 분류가 되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왕은 자신보다는 백성과 나라를 생각하며 모든 것이 제약된 삶을 살아왔다. 옆나라 중국이나, 이슬람 국가만 보아도 자신의 취미를 위해 만백성을 쥐어짜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경연을 열어 신하들과 교류를 하고 지방 유생들에게 상소를 받아 만백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했던 왕들. 그들의 모습에서 인간적인 면모를 보았다면 나만의 착각일까? 다만 성리학에 기초해 다른 문물을 배척하고 안으로만 숨어들어 '조선'이란 시대를 암흑기로 만들었다는건 매우 안타깝다. 그래서 저자 역시 왕들의 투쟁을 그리며 아쉬운 점을 함께 나열하고 있는 것이리라.

네 명의 왕을 함께 비교분석하며 그들의 투쟁을 엿보는 동안, 왕들의 여러면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단편적으로 왕을 미화한다던지, 폄하하기보다 왕이 보여준 여러가지 모습과 함께 조선시대를 이해할 수 있어 유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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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 때문에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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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딸 라일라를 잃어버리고 자신을 한없는 고통으로 빠트리며 잘나가는 의사에서 노숙자로 전락한 <마크>, 세상 사람들에게 한없는 부러움의 대상이며 언론의 끊임없는 시선을 받지만 자신안에 고통을 온갖 기행으로 풀어내는 <앨리슨>, 어린 나이에 엄마의 죽음으로 복수를 꿈꾸며 추운 뉴욕 거리를 헤매는 <에비>, 어두운 도시 그린우드에서의 처참한 기억으로 인해 내면의 무언인가 뻥 뚫려버린 정신과 의사 <커너>

'사랑하기 때문에'에 나오는 네 사람은 각자 자신만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 모두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상처를 제대로 감당하지 못해, 타락의 길을 걷거나 자신을 한없는 고통의 수렁속으로 밀어넣는다. 정신과 의사였던 마크는 결국 자신의 정신적 상처를 이겨내지 못했고, 세상 모든것을 가진 앨리슨은 그것으로 인해 괴롭다. 에비는 어린 나이에 세상의 비정한 면만 보고 자라 희망이란 말조차 입에 꺼내지 못할만큼 피폐해져있다. 커너는 어떠한가? 잘나가는 정신과의사지만, 자신의 내면에 뚫린 공허한 구덩이로 인해 제대로 잠조차 자지 못한다.

그런 상처입은 사람들이 어떤 계기로 인해 같은 비행기를 타고 뉴욕으로 날아오게 된다. 좁은 비행기안에서 자주 부딪치며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 자신을 괴롭혀오던 자신의 상처를 제대로 대면할 수 있을까?

네 사람의 과거와 현재가 쉴 새 없이 교차되며, 진행되는 소설의 흐름은 나를 정신없이 몰아갔다. 그들이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장면에서는 가슴이 먹먹해지는 감동에 정신없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네 사람은 자신만의 고통이 너무 커서 끊임없이 <자기 파괴 충동>에 시달린다. 그리고 실제로 자신을 끝없는 고통의 수렁속으로 밀어넣는다.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한 사람들은 미쳤다며 손가락질 하지만, 그들은 자신만의 고통에 힘겨워하며 세상사람들의 소리조차 듣지 못한다. 만신창이가 된 그들은 '이젠 누군가가 나를 구해줬으면 좋겠다'는 자그마한 소망을 갖게 되고 그 소망은 상처받은 네 사람을 이끌어 자신들의 상처를 똑바로 쳐다볼 수 있게 한다.

자신의 혈육을 죽인 살인마, 나를 불태워 죽이려 했던 마약상들...그 속에는 복수가 자리잡고 있다. 내가 그 상황이였다면, 나 역시 복수를 선택했을 가슴아픈 상황속에서 네 사람은 결국 용서했다. 그들이 용서할 수 있었던건...사랑했기 때문이 아닐까.

사랑하기 때문에 용서할 수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 서로의 상처를 보듬을 수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그렇기 때문에 세상은 아직도 살만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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