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중력 증후군 - 제1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윤고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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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존재하지만, 느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우리를 숨쉬게 해주는 공기라던지, 항상 따뜻하게 우리를 응원하는 부모님의 마음이라던지, 늘 아래로 잡아당기는 중력이라던지.

중력...그래, 중력이 있었지. 늘 지구 중심부로 잡아당기는 이 힘으로 인해 둥근 지구의 둥그스름한 부분을 끝내 밟지 못했지. 저 멀리 둥글게 떨어지는 지평선을 향해 나아가도 결국 똑같은 사각 땅위에 서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중력은 늘 상기시켜주었다.

지리멸렬하게 똑같은 힘으로 작용하는 중력은, 지리멸렬한 일상과 닮아 있다. 그건 나에게도, 책의 주인공인 노시보에게도 같을 것이다. 그저 그런 전문대를 졸업하고 어딘가에 소속하기 위해 여기저기 취직하는 노시보. 어딘가에 소속하기 원하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회사를 다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또는 월급이 나오지 않아 일년이상 버티지 못하고 이곳저곳 떠돌게 된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눈을 감는 순간까지 중력의 영향을 받듯 노시보 역시 그저 그런 하루의 흐름대로 흘러갈 뿐이다. 

꽉 졸라맨 넥타이와 똑같은 표정을 가진 사람들이 가득한 만원 전철에 시달리며 외로움을 달래던 그에게 새로운 이슈가 생긴다. 그것은 바로 달의 증식이다! 원래 달 옆에 새로운 달이 생기면서 세상은 발칵 뒤집힌다. 또 하나의 달은 우주 쓰레기다, 아니면 소행성이다라는 온갖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사람들은 혼란에 휩싸인다. 도대체 어째서 달이 두개인거냐고!!

달의 증식은, 노시보에게 무겁게만 느껴지던 중력에서의 해방과 같은 기분을 안겨주었다. 매일 똑같이 돌아가는 일상과 무의미한 하루 속에서 달과 또하나의 달은 마치 무중력 상태를 느끼게 해주었던 것이다. 늘상 똑같은 사람들의 얼굴에 당황함을 안겨주었고, 잠잠하던 휴대폰 뉴스 알림을 바쁘게 만들었다. 땅을 팔라며 채근대던 회사의 사장 역시, 늘어나는 달을 보며 무중력 상태에 빠지게 된다.

하나, 둘 늘어가는 달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쯤은 갖고 있는 소화불량, 외로움, 숙취, 엉덩이 처짐, 눈 밑 주름 강박증, 신경질적 무릎 관절염 등을 지속적으로 호소하게 되고 결국 일련의 증상들은‘무중력증후군’이라는 판명을 받게된다. 무중력증후군의 첫 창시자이자 주인공은 당연히 노시보이다.

늘 똑같은 일상, 하루하루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하루, 낡고 낡은 생각들만 쌓여가는 일상은 목을 졸라매는 넥타이처럼, 혹은 무겁게 아래로 잡아당기는 중력처럼 우리를 숨막히게 하는지도 모른다. 노시보에게 달의 증식은 어떤 계기가 되었다. 1년에 8군데나 회사를 옮길 정도로 한 곳에 적응 못하고, 애인에게 버림받고, 집에서조차 소외당하는 외로움을 갖고 있는 노시보에게 낡은 일상과 중력은 버리고 싶은 것이였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처져있는 그의 모습은 결코 어떤 찌질이의 모습이 아닌 우리의 그것과 닮아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러개의 달과 무중력은 어쩌면 우리에게 탁 트인 해방을 안겨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무언가 새로 시작할 힘과 계기를 제공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난, 오늘도 하늘에 떠있는 달을 바라본다. 달이 증식하는 그 날, 나를 지배하던 중력이 나를 놓아줄지도 모른다는 행복한 상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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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여 꿈을 노래하라 1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2
밀드레드 테일러 지음, 위문숙 옮김 / 내인생의책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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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색인종에 대한 차별, 그리고 그쯤의 차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의 폭력은 신문과, 라디오, 텔레비전 뉴스에서 늘 보아오던 이야기다. 늘 접하던 이야기라서 그럴까? 갈 수록 높아지는 수위에 마음이 아파지기는 커녕, 점점 무뎌지는 것은.

'대지여 꿈을 노래하라'의 시대는 1880년대 남북전쟁이 끝난 상황을 그린다.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유색인에 대한 차별이 뼛속까지 스며들어 있던 시기다. 폴 에드워드는 백인 아버지와 인디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유색인이다. 겉보기엔 백인처럼 보이지만, 피가 섞였다는 이유로 백인 사회에서 내쳐졌을 뿐 아니라 유색인들 사이에서도 따돌림 당한다. 폴은, 태어났을때부터 외톨이였다.

자식을 사랑하고 열린 사고를 가진 아버지 때문에 폴은 버려지지 않고 교육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지만, 곧 쓰린 현실을 접하게 된다. 아무리 같은 형제라도 형제사이 이전에 유색인과 백인이라는 거대하고 높은 벽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같은 나이의 로버트는 백인전용 학교에 진학해 편하게 공부한 반면, 폴은 야학을 병행하며 기술을 익혀야했으니 말이다. 어쩌면 다른 백인 형제들보다 폴이 아버지에게 더 좋은 파트너가 되었을지 모른다. 말도 잘 다루고 땅을 사랑하는 마음이 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폴은 유색인이였다. 깜둥이였다. 자고나란 아버지의 땅을 고향이라 여겼던 곳에서 더이상을 살 수 없게 되버린다.

온갖 힘든일을 하며 떠도는 동안에, 폴은 모든것을 '땅'에 집중한다. 아버지가 가졌던 땅처럼 모든것이 풍족하고 아름다운 땅을 가지는 것, 그곳에 나만의 집을 짓고 나의 가족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것, 그것만이 폴의 모든것을 지배하게 된다.

유색인에 대해 차별이 만연하던 그 시절, 폴이 땅을 갖기에는 너무나 많은 장벽과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폴은 주저앉지 않았다.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을 떠나보내도, 형제같던 미첼이 처참하게 죽었어도, 몇 년을 고생해 개간지로 만든 땅을 몽땅 빼앗겼을때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온 세상에 뿌리깊게 자리잡았던 온갖 차별은, 폴에게서 '희망'이라는 단어만은 빼앗지 못했다.

유색인에 대한 차별만이 비단 1800년대의 일만이라 할 수 있을까? 현재에도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나와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로, 심지어는 돈이 없다는 이유로 이 세상엔 차별과 폭력이 난무한 것을. 폴은 이야기한다. 온갖 역경이 있다는 이유로 주저앉는다면 결코 내일은 없다는 것을. 

세상의 온갖 억압과 폭력을 몸 하나로 버텨내며 폴은 결국 승리했다. 그가 자신 소유의 땅에 발을 내딛는 순간, 희망의 햇살이 내게 비춘것처럼 말이다. 버스안에서 눈가를 몇 번이고 훔쳐내며 책을 읽어 내려갔지만, 다 읽은 뒤 내게 폴은 진정한 희망을 선물했다. 옛날에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억압과 폭력은 전염병처럼 돌고 있지만, 폴이 내게 이야기해준 희망은, 용기는, 사랑은 언제까지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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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리나 졸리, 세 가지 열정 - 인생을 바꾸고 싶어하는 여자들에게 보내는 열정의 메시지
로나 머서 지음, 전은지 옮김 / 글담출판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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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 '나쁜 여자'로 불리우던 여자가 바로 <안젤리나 졸리>였다. 온갖 기행과 우울증, 자살충동으로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던 여자가 바로 안젤리나 졸리였다. 그런 그녀가 어느새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여배우, 박애를 온세계에 실천하는 아름다운 여자가 되어 있었다. 

-자신의 선택에 당당하라!
그녀는 자신이 선택한 길에 대해 당당히 걸어가려고 애썼다. 대배우인 아버지의 성을 떼버리고 온갖 오디션에 응모하기도 했고, 한 번 하겠다고 마음먹은 작품에 대해서는 군말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것을 던져 몰입하기도 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에 대해 당당하게 말하고 때론 성생활까지 거리낌없이 말한 그녀-결국 그녀는 자신을 포장하기 보다는 사람들과 진실로 소통하기 원했고 당당한 그녀의 모습을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기 시작했다. 당당한 그녀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이상향이 되었다.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시켜라!
영화 '지아'를 통해 오스카상을 수상했지만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떠올리는 건 더이상 싫었다. 뜻밖의 선택일 수 있는 '툼레이더'를 선택함으로서 섹시한 여전사 이미지를 구축했고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그녀는 더 넓은 작품을 선택할 수 있었다. 거기다 툼레이더를 촬영하며 캄보디아의 현실에 대해 접하며 세계 곳곳의 비참한 현실에 처해있는 아이들을 알게되며 봉사활동을 펼치게 된다. 예쁘기만 한 여배우로 남기보다는 세계와 정치적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그녀. 그녀는 자신의 결심을 그저 마음안에 남겨두기 보다는 직접 실천함으로서 자신을 변화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라!
지금이야 가장 섹시하고 아름다운 여배우로 찬사를 받지만 그녀 역시 자신만의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자살충동에 시달리며 자해한 상처와 펑크족으로 지내던 시절 문신이 여기저기 남아있는 그녀지만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을 지닌 여배우가 되었다. 아이들을 돌볼 때는 꾸미지 않고 아이들이 흘린 음식물로 더럽혀진 티를 입고도 행복하다는 그녀. 아이들과 밝게 웃는 그녀의 모습이야 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이 아닐까.

<나는 항상 오늘을 산다. 내일 저녁엔 모든 것이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말을 다시 한번 곱씹는다. 우리는 미래에 너무나 많은 것을 저당잡혀 사는것은 아닐까. 안젤리나 졸리는 화려한 여배우 이면에 너무나 많은 상처를 갖고 있었다. 부모님의 이혼, 어려운 집안 살림, 두 번의 이혼 경력등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상황이였다. 하지만 그녀는 그때마다 '열정'으로 자신을 불태웠고 '열정'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다.

언제든 죽을 수 있기 때문에 오늘이 아름답고 소중하다고 말하는 그녀. 나는 그동안 변화를 두려워하며 너무나 평안한 삶만 추구했던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열정없는 삶은 곧 죽음과 같다는걸 그녀의 열정을 통해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내가 제일 사랑하는 여배우이자, 자신의 영향력으로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 아름다운 열정을 가진 안젤리나 졸리. 그녀의 열정은 나의 삶을, 그리고 당신의 삶을 바꿀 계기를 만들어줄 것이다. 열정을 가지면, 삶이 더 충만하고 아름다워진다. 그것을 바로 안젤리나 졸리가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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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real florist 2010-02-01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멋진 여자의 재밋는 책이군여
 
피의 책
클라이브 바커 지음, 정탄 옮김 / 끌림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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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라는 특수한 것을 즐기기에 여름만한 것이 없다. 더운 여름, 온 몸이 땀에 질척거리며 짜증만 날 때,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귀신 이야기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공포영화는 더운것도 잊게 만들만큼 내 자신을 흥분시키기 때문이다. 늘 친구들이 "그렇게 무서워 할 거면서 공포영화는 왜 그렇게 좋아하는거야"라고 타박해도 꿋꿋이 '공포'라는 소재를 찾아 즐기는 것도 바로 그런 짜릿한 이유에서다.

'공포'의 대명사 클라이브 바커가 [피의 책]을 들고 나에게 찾아왔다.
거짓으로 유령들을 이용해 유명해지려 했던 한순간의 치기가 유령들을 분노케 만들었고, 결국 그의 온 몸 구석구석에 유령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새겨넣는다. 피의 책은 곧 그 남자의 몸이였던 것이다. 그 남자의 몸에 새겨진 이야기를 하나하나 따라가며 피의 책은 시작을 알린다.

영화로 먼저 알려져 친숙한 제목의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은 영화의 이미지가 그대로 눈에 보일 정도로 참혹한다. 한밤중의 정적이 흐르는 열차, 그 속에 쇠그물을 두른 도살자가 있다. 몸에 있는 털이란 털은 모두 그을린 뒤 정육점의 고기를 걸 듯 지하철 손잡이에 시체를 걸어놓는 이 흉악한 수법에 뉴욕의 모든 사람들은 겁에 질린다. 대체 누가, 왜 이런짓을 하는가?

'야터링과 잭'에서는 인간을 악으로 끌어들이려는 귀여운 악마와 무덤덤한 인간이 등장한다. 그들의 대결은 공포라기 보다는 웃음이 먼저 나오지만, 그 와중에도 세세한 대결구도에서 클라이브 바커는 공포를 이끌어낸다. '피그 블러드 블루스'에서는 거대한 암퇘지가 등장하는데 공포에 만연된 소년원 아이들과 대조를 이뤄 공포를 자아낸다. 내가 살기 위해 친구를 암퇘지에게 제물로 바치지만, 그들 사이에 우정이 존재했었는지조차 의문을 들게하는 관계들이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드레드'에서는 케이드가 공포에 시달리는 스티브를 가둬놓고 실험을 감행하지만, 그 속에는 어둠의 일면이 아이러니컬한 반전과 뒤섞이며 독특한 공포를 선사한다. 

한 편 한 편의 단편들이 모두 영화 속 이미지를 떠오르게 할 만큼 자극적이고 공포스럽다. 어쩌면 공포라는 것이 그저 무서운 영상, 끔찍한 이야기에 국한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9시 뉴스만 틀어봐도 연일 끔찍한 내용이 보도되고 있는 현실이 더 끔찍하고 등골 서늘한 것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라이브 바커는 길지 않은 단편속에서 진정한 공포를 선물해주었다. 그의 이야기는 하나하나의 장면마다 마음 속 깊은 곳을 자극하는 공포를 그리고 있다. 클라이브 바커가 보여주는 기괴하고 으스스한 이야기들이 마치 이야기라기 보다는 내 옆에서 일어나는 현실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그런 것이리라. 

오랫동안 클라이브 바커의 이야기속에서 빠져나오기 힘들 것 같다.
그가 보여 준 기괴한 세상은 꿈속에서조차 날 놓아주지 않을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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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랑
이언 매큐언 지음, 황정아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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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점을 짚어 내는 건 쉽다.
주인공 '조'는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복잡하고 미묘하게 얽혀있는 이야기일 수록 시작점을 짚어 내는 건 쉽다. 왜냐하면, 그때로 되돌아간다면 그 일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쓸데없는 후회로 매번 그 사건을 곱씹고 곱씹기 때문이다. 주인공 조 역시 그렇지 않았을까?

저명한 저널리스트로 모든 것을 가진 조. 그는 사랑하는 클라리사와 피크닉을 즐기다가 위험한 사고를 목격한다. 거대한 기구가 이리저리 흔들리며 갈피를 잡지 못하고 기구 안엔 조그마한 소년이 웅크리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엔 선한 마음으로 소년을 도우려했지만 손발이 맞지 않는 다른 사람들과 마찰이 일어나며 결국 구조작전은 실패로 돌아간다. 그리고, 뜻하지 않는 사고 역시 일어난다.

맹목적인 사랑
그 맹목적인 사랑은, 눈 앞에서 누군가가 추락사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뜻하지 않은 누군가의 죽음과 더불어 나는 죽음을 피했다는 안도감이 교차하며, 조는 제드 패리에게 어떤 눈길을 보낸다. 패리는 그것을 그가 보내는 신호로 인식하고, 그가 보내는 사랑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다.

물론, 조는 그런 눈길이 아니였다. 같은 상황을 겪어 낸 이에게 던지는 단순한 눈길이였을테지만, 이미 정신적으로 깊은 병을 앓고 있는 패리는 조를 깊이 사랑하게 된다. 사랑하는 조를 보기 위해 문 앞에 몇 시간이고 서있거나, 길고 긴 편지를 보내거나, 목소리 없는 전화를 남기며 사랑을 표현하지만 조는 그에게 혐오감을 넘어 공포감을 느낄 뿐이다.

맹목적인 사랑은 '드 클레랑보 신드롬'이란 명칭이 붙은 정신병으로 판가름난다. 그리고 그에게 피어난 맹목적인 사랑은 비극적인 결말로 끝이 나게 된다. 그럼에도, 패리는 조를 사랑한다. 조에게 도착하지 않은 편지 안에서도 그는 맹목적인 사랑을 버리지 않고 있다.[이미 알고 있겠지만 다시 한 번 말하고 싶어요. 내가 당신을 연모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당신을 위해 살고 있습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를 사랑해 줘서 고맙고, 나를 받아 줘서 고맙고, 우리의 사랑을 위해 내가 한 일을 인정해 줘서 고마워요...]

나만 사랑하는 이기적인 사랑
사건의 발단은 풍선 기구였다.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풍선의 줄을 잡아 당겼어도 누군가가 그렇게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죽음을 목전에 두고 누가 그렇게 이타적이겠는가. 조와 마찬가지로 모두들 손을 놓는다.

모든 것을 분석적 사고로 바라보는 조는 이런 일련의 사태 역시 분석하려 애쓴다. 그러나 패리의 맹목적인 사랑이 시작되면서 조의 치밀하고 분석적 사고는 무너지게 된다. 평생의 연인이라 생각했던 클라리사와의 틈, 그리고 논리로 이해되지 않는 패리의 행동은 그를 구석으로 몰아넣는다.

이언 매큐언은 이 책을 통해 사랑, 그리고 도덕에 대해 여러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일련의 사건들에서 인간의 도덕이란 것이 얼마나 무너지기 쉬운 것인지, 또한 사랑이란 모습으로 행해지는 폭력이 얼마나 많은지에 대해 구석구석 파고들어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회는 갈 수록 홀로된다. 어떤 일을 하든지 '우리'보다는 '내'가 중심이 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사랑이란 이름으로 누군가를 괴롭히기도 하고, 도덕을 내세워야 할 때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기도 한다. 그렇기에 '이런 사랑'안에 등장하는 모든 사건들이 꼭 사회면에 등장하는 이야기처럼 느껴져 한 챕터가 끝날 때마다 오래도록 생각하고 생각해야만 했다. 이미 책장은 덮었지만, 오래도록 이언 매큐언이 내게 던져준 물음들에 대해 생각해야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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