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랑
이언 매큐언 지음, 황정아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시작점을 짚어 내는 건 쉽다.
주인공 '조'는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복잡하고 미묘하게 얽혀있는 이야기일 수록 시작점을 짚어 내는 건 쉽다. 왜냐하면, 그때로 되돌아간다면 그 일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쓸데없는 후회로 매번 그 사건을 곱씹고 곱씹기 때문이다. 주인공 조 역시 그렇지 않았을까?

저명한 저널리스트로 모든 것을 가진 조. 그는 사랑하는 클라리사와 피크닉을 즐기다가 위험한 사고를 목격한다. 거대한 기구가 이리저리 흔들리며 갈피를 잡지 못하고 기구 안엔 조그마한 소년이 웅크리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엔 선한 마음으로 소년을 도우려했지만 손발이 맞지 않는 다른 사람들과 마찰이 일어나며 결국 구조작전은 실패로 돌아간다. 그리고, 뜻하지 않는 사고 역시 일어난다.

맹목적인 사랑
그 맹목적인 사랑은, 눈 앞에서 누군가가 추락사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뜻하지 않은 누군가의 죽음과 더불어 나는 죽음을 피했다는 안도감이 교차하며, 조는 제드 패리에게 어떤 눈길을 보낸다. 패리는 그것을 그가 보내는 신호로 인식하고, 그가 보내는 사랑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다.

물론, 조는 그런 눈길이 아니였다. 같은 상황을 겪어 낸 이에게 던지는 단순한 눈길이였을테지만, 이미 정신적으로 깊은 병을 앓고 있는 패리는 조를 깊이 사랑하게 된다. 사랑하는 조를 보기 위해 문 앞에 몇 시간이고 서있거나, 길고 긴 편지를 보내거나, 목소리 없는 전화를 남기며 사랑을 표현하지만 조는 그에게 혐오감을 넘어 공포감을 느낄 뿐이다.

맹목적인 사랑은 '드 클레랑보 신드롬'이란 명칭이 붙은 정신병으로 판가름난다. 그리고 그에게 피어난 맹목적인 사랑은 비극적인 결말로 끝이 나게 된다. 그럼에도, 패리는 조를 사랑한다. 조에게 도착하지 않은 편지 안에서도 그는 맹목적인 사랑을 버리지 않고 있다.[이미 알고 있겠지만 다시 한 번 말하고 싶어요. 내가 당신을 연모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당신을 위해 살고 있습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를 사랑해 줘서 고맙고, 나를 받아 줘서 고맙고, 우리의 사랑을 위해 내가 한 일을 인정해 줘서 고마워요...]

나만 사랑하는 이기적인 사랑
사건의 발단은 풍선 기구였다.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풍선의 줄을 잡아 당겼어도 누군가가 그렇게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죽음을 목전에 두고 누가 그렇게 이타적이겠는가. 조와 마찬가지로 모두들 손을 놓는다.

모든 것을 분석적 사고로 바라보는 조는 이런 일련의 사태 역시 분석하려 애쓴다. 그러나 패리의 맹목적인 사랑이 시작되면서 조의 치밀하고 분석적 사고는 무너지게 된다. 평생의 연인이라 생각했던 클라리사와의 틈, 그리고 논리로 이해되지 않는 패리의 행동은 그를 구석으로 몰아넣는다.

이언 매큐언은 이 책을 통해 사랑, 그리고 도덕에 대해 여러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일련의 사건들에서 인간의 도덕이란 것이 얼마나 무너지기 쉬운 것인지, 또한 사랑이란 모습으로 행해지는 폭력이 얼마나 많은지에 대해 구석구석 파고들어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회는 갈 수록 홀로된다. 어떤 일을 하든지 '우리'보다는 '내'가 중심이 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사랑이란 이름으로 누군가를 괴롭히기도 하고, 도덕을 내세워야 할 때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기도 한다. 그렇기에 '이런 사랑'안에 등장하는 모든 사건들이 꼭 사회면에 등장하는 이야기처럼 느껴져 한 챕터가 끝날 때마다 오래도록 생각하고 생각해야만 했다. 이미 책장은 덮었지만, 오래도록 이언 매큐언이 내게 던져준 물음들에 대해 생각해야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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