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책
클라이브 바커 지음, 정탄 옮김 / 끌림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공포'라는 특수한 것을 즐기기에 여름만한 것이 없다. 더운 여름, 온 몸이 땀에 질척거리며 짜증만 날 때,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귀신 이야기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공포영화는 더운것도 잊게 만들만큼 내 자신을 흥분시키기 때문이다. 늘 친구들이 "그렇게 무서워 할 거면서 공포영화는 왜 그렇게 좋아하는거야"라고 타박해도 꿋꿋이 '공포'라는 소재를 찾아 즐기는 것도 바로 그런 짜릿한 이유에서다.

'공포'의 대명사 클라이브 바커가 [피의 책]을 들고 나에게 찾아왔다.
거짓으로 유령들을 이용해 유명해지려 했던 한순간의 치기가 유령들을 분노케 만들었고, 결국 그의 온 몸 구석구석에 유령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새겨넣는다. 피의 책은 곧 그 남자의 몸이였던 것이다. 그 남자의 몸에 새겨진 이야기를 하나하나 따라가며 피의 책은 시작을 알린다.

영화로 먼저 알려져 친숙한 제목의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은 영화의 이미지가 그대로 눈에 보일 정도로 참혹한다. 한밤중의 정적이 흐르는 열차, 그 속에 쇠그물을 두른 도살자가 있다. 몸에 있는 털이란 털은 모두 그을린 뒤 정육점의 고기를 걸 듯 지하철 손잡이에 시체를 걸어놓는 이 흉악한 수법에 뉴욕의 모든 사람들은 겁에 질린다. 대체 누가, 왜 이런짓을 하는가?

'야터링과 잭'에서는 인간을 악으로 끌어들이려는 귀여운 악마와 무덤덤한 인간이 등장한다. 그들의 대결은 공포라기 보다는 웃음이 먼저 나오지만, 그 와중에도 세세한 대결구도에서 클라이브 바커는 공포를 이끌어낸다. '피그 블러드 블루스'에서는 거대한 암퇘지가 등장하는데 공포에 만연된 소년원 아이들과 대조를 이뤄 공포를 자아낸다. 내가 살기 위해 친구를 암퇘지에게 제물로 바치지만, 그들 사이에 우정이 존재했었는지조차 의문을 들게하는 관계들이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드레드'에서는 케이드가 공포에 시달리는 스티브를 가둬놓고 실험을 감행하지만, 그 속에는 어둠의 일면이 아이러니컬한 반전과 뒤섞이며 독특한 공포를 선사한다. 

한 편 한 편의 단편들이 모두 영화 속 이미지를 떠오르게 할 만큼 자극적이고 공포스럽다. 어쩌면 공포라는 것이 그저 무서운 영상, 끔찍한 이야기에 국한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9시 뉴스만 틀어봐도 연일 끔찍한 내용이 보도되고 있는 현실이 더 끔찍하고 등골 서늘한 것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라이브 바커는 길지 않은 단편속에서 진정한 공포를 선물해주었다. 그의 이야기는 하나하나의 장면마다 마음 속 깊은 곳을 자극하는 공포를 그리고 있다. 클라이브 바커가 보여주는 기괴하고 으스스한 이야기들이 마치 이야기라기 보다는 내 옆에서 일어나는 현실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그런 것이리라. 

오랫동안 클라이브 바커의 이야기속에서 빠져나오기 힘들 것 같다.
그가 보여 준 기괴한 세상은 꿈속에서조차 날 놓아주지 않을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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