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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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들의 공통점은 여자다. 평생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을것 같지 않았던 그들은 여자로 인해 한 자리에 모였다. 그 여자의 이름은 '몰리' 그 남자들은 몰리를 사랑했다. 사랑했었다....그리고 추억한다.

클라이브 린리는 성공한 작곡가이다. 몰리에게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법과, 타인에게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버넌 핼리데이는 신문사 편집국장이다. 특파원 시절 몰리를 만나 1년간 동거했다. 버넌은 몰리의 자유로움을 사랑했었다. 외무장관 줄리언 가머니는 몰리와 은밀한 관계를 유지했었다. 그리고 몰리를 끔찍하게 구속했던 남편 조지. 이 네 남자는 몰리의 장례식에서 몰리를 추억하고 있다. 몰리의 죽음은 그들에게 충격이였으나 곧 일상으로 돌아간다. 몰리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슬프지만, 넉놓고 슬퍼하기엔, 그들은 이미 너무나 나이들고 감정마저 단단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몰리의 남편 조지는 버넌에게 특종감이 될 만한 사진을 제공한다. 그것은 몰리의 정부이자, 강경한 정책을 고수하여 버넌이 반감을 가지고 있던 외무장관 줄리언 가머니에 대한 충격적인 사진이다. 버넌은 사진을 즉시 매입하고 친구 클라이브에게 이 소식을 알리며 동의를 구한다. 하지만 클라이브는 사진을 신문에 싣는 걸 반대한다. 그건 몰리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이며, 개인의 사생활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딱 잘라 말한것이다. 동의를 구하려던 버넌은 클라이브에게 실망하고, 클라이브 역시 친구였던 버넌의 행동에 실망하게 된다.

몰리의 죽음과, 버넌의 행동으로 작곡에 집중할 수 없던 클라이브는 악상에 집중하기 위해 등산을 하게 되고, 막 악보에 집중하려던 찰나, 어떤 여자의 비명소리에 방해받고 만다. 어떤 남자와 실랑이를 벌이는 여자...클라이브는 머리속에 떠오른 악상과 도움이 필요한 여자 사이에서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몰래 빠져나오고 만다.

도움이 필요했던 여자를 모른척 했던 클라이브, 외무장관의 은밀한 사진을 손에 넣고 특종을 노리는 버넌, 탄탄대로를 달리던 외무장관의 위기, 그리고 사진을 제공하고 상황을 바라보는 조지....이렇게 네 남자는 또다른 상황에서 마주하게 된다. 이번에는 사랑했던 여자로 인한 대면이 아니라 자신들의 내면을 정면으로 꺼내놓고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몰리'에게서 자신의 은밀한 부분을 맡기며 보호받아왔던 네 남자, 그들은 몰리를 잃었고 결국은 끝을 향해 달려간다. 그 끝에 승리하는 자는 과연 누구일까? 

단시간에 읽어 내려갔던 것과는 달리, 책의 여운은 오래도록 나를 놔주지 않았다. 사회 계층상 고위직에 위치한 이들의 추악한 내면과, 자신의 추악한 내면으로 인해 파멸을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남의 탓으로 돌리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 역시 아무런 생각없이 남을 탓하기만 했는데...내가 타인을 내 마음대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끝없이 머리속을 맴돌았다.

나에 대해, 타인에 대해, 그리고 내면의 은밀한 욕망을 돌아보며 많이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내가, 타인을, 판단할 수 있을까?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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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사무소 김앤장 - 신자유주의를 성공 사업으로 만든 변호사 집단의 이야기 우리시대의 논리 10
임종인.장화식 지음 / 후마니타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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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 사람은 머리 아프고 골치아픈 일은 딱 질색이다. 그래서 텔레비전이나, 뉴스에서 정치 이야기나, 경제 이야기가 나오면 두 눈과, 귀를 막고 나몰라라 했었다. 나와는 관계없는 일인듯 행동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그동안의 내 행동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였는지 깨닫게 되었다.

김앤장-나같은 문외한도 한번은 들어봤음직한, 그래서 누구나 알만한 우리나라 최고의 법률회사이다.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세계화의 환경에 성공적으로 적응해 일명 김앤장 모델이 되고 법대생들의 로망이 되는 동안, 한국의 민주주의는 근본적인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김앤장은 우리 사회 재력을 자랑하는 재벌과 투기자본이 법적인 문제가 생길 때마다 앞 다투어 찾아가는 곳이다. 재경부와 금감위와 공모해 은행 인수 자격이 없는 론스타에게 자격을 만들어 준 것도 김앤장이다. 삼성이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발행을 통해 경영권을 불법으로 승계하는 과정에서 변호를 맡았고 허위사실 조작을 도운 것도 김앤장이다. 한화 김승연 회장 보복 폭행 사건을 둘러싼 재판에서 김승연 회장의 변호를 맡은 것도 김앤장이다. 2006년 구속 수감되었던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변호도 맡았다. 진로그룹 대 골드만삭스 분쟁과 SK그룹 대 소버린의 경영권 분쟁 당시 양 소송 당사자를 모두 변호했다.

"만인은 법 앞에 공정한 대접을 받고 있는가?" 아마 이 물음에 대해 긍정적으로 대답하는 사람은 매우 소수일 것이다. 오히려 '법은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의 편'이라는 생각이 우리들 가슴속에 깊이 박혀있는 실정이다.

우리 사회에서 법률의 역할은 무엇일까? <변호사법>은 사회정의, 국민인권, 공공성의 가치를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지만, 변호사의 법률 서비스에도 역시 사업의 측면이 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공공성의 가치와 수익성의 논리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부여하는 문제는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우리 모두의 고민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김앤장에게 그런 수준 높은 기준을 요구하고 있지 않다. 김앤장이 그간 해 왔던 '법률사업'을 분석하면서 우리가 말하고자 한 것은, 최소한 불법은 행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권력을 가진 국가라고 해서, 부를 가진 거대 기업이라고 해서 국민들의 눈을 가리고 뒤편에서 그들을 위해 온갖 술수로 자신들만의 배를 불려간다면 그건 분명히 '불법' 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평등한 권리 위에 군림하고 있는 법률 전문가의 존재를 무비판적으로 용인할 수만은 없다. 최소한 김앤장의 실제 모습과 사회적 역할을 객관화하는 것에서 시작해,보이지 않는 권력과 잘못된 신화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도록 방치되고 있는 현실을 개선해 가야 할 것이다. 과도할 정도로 특권화되어 있는 법의 영역 역시 민주주의의 가치와 원리에 맞도록 변화시켜 가는 일이 중요하다. 이 일은 법률 전문가에게만 맡길 일이 아니며, 우리 사회 모두 관심을 갖고 참여해야 할 과제가 아닐 수 없다.(259-260p)

책을 읽으며 많이 배우고, 많이 반성했다. 그저 떠들썩한 사회 일면들이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그 전처럼 평온한 날들이 돌아오길 바랬던 나의 안이함을 반성했다. 좋은게 좋은거 아니겠냐며 힘없는 사람들의 눈물을 외면했던 나를 반성했다. 저자 임앤장의 말처럼 김앤장의 문제는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갖고 참여해야 할 문제이다. 더이상 나처럼 외면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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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마니타스 2008-03-11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법률사무소 김앤장』 저자 간담회가 3월 15일(토요일) 오후 2시 서교동에서 있습니다. 관심 있으시면 블로그에 들려서 신청해주세요. 광고성 댓글을 남겨서 죄송합니다.

http://blog.naver.com/humanitas1/30028666122
 
행복한 거짓말
기무라 유이치 지음, 임희선 옮김 / 지상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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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작가 나오키는 그의 처녀작 'Q'로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방송국에서 주최한 시나리오 대회에서 대상의 영예를 안았고, 그의 시나리오는 드라마로 만들어지자마자 '사회현상'이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하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드라마 'Q'의 여주인공 아오야마 마야는 '아오마야'라는 애칭으로 불릴 정도로 크게 성공하고, 자연스레 시나리오 작가 나오키의 명성은 높아져만 간다.

모든 사람들이 기대하는 나오키의 차기작, 나오키 역시 처음에는 사람들의 기대가 기쁘고 감사했다. 하지만 컴퓨터 앞에 앉아도 한두줄 이상 써내려갈 수 없고 점점 자신감을 잃게 된다. '과연 이 작품이 재미있을까?' '이런 이야기가 사랑받을 수 있을까?'

결국 나오키는 약속한 마감시간을 지키지 못했을뿐더러, 멀리 도망치게 된다. 자신으로부터, 그리고 성공으로부터. 그저 멀리멀리 떠나고 싶었던 나오키는 흔해빠진 항구도시로 오게되고, 이름마저 '히사노리'로 바꾼 채 술집 Dogwood의 바텐더로 자신을 없애버린채 살아가게 된다. 철저히 도시(도쿄)사람이였던 나오키는 이곳 사람들이 자신에게 퍼붓는 관심이 못내 부담스럽다. 자신은 사람들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싶은데 이 곳 사람들은 타지 사람인 나오키에게 거리감없이 다가온다.

하지만 술집 단골손님의 이런저런 내면의 이야기와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오키는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그리고 차갑게 얼어붙은 나오키의 마음을 살며시 녹여준건 발랄하고 귀여운 라멘가게의 처녀 '고토미'였다.

쓸데없이 밝다고 퉁명스럽게 고토미를 바라보던 나오키도 고토미의 순수한 매력에 빠지게 되고, 단골손님들의 진실한 이야기와 고토미의 순수한 사랑에 차차 마음의 안정을 찾은 나오키는 비로소 컴퓨터 앞에 앉을 용기를 내게 된다.

나오키가 용기를 내어 쓴 '눈물을 닦아 준 미소'는 술집 단골손님들의 이야기와 더불어 나오키와 고토미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도 함께 그려지고 있다. 나오키의 재기작이 되어준 드라마는 시간이 갈 수록 나오키의 목을 조르게 된다. 고토미에게 철저하게 자신의 과거를 숨겨온 게 결국은 들통날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고토미는 자신들만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드라마로 써서 전국에 방영하게 한 나오키를 이해할 수 있을까? 나오키는 자신의 마음을 순수하게 받아준 고토미에게 모든 과거를 밝히고 진정한 사랑을 가꿔나갈 수 있을까?

"연애 한다, 하면 그저 아름답기만 하고 좋기만 할 것 같지만 사실 그게 따지고 보면 인간의 제일 약한 부분을 드러내놓는 일이기도 하거든. 하기야 그렇게 제일 초라하고 보기 싫은 부분을 서로 보이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결혼이란 걸 할 수 있는 지도 모르지"

단골손님 히라노의 말처럼 연애란 아름답다는 환상속에 가려진 거짓투성이일지도 모른다. 서로에게 잘 보이려한 약간의 거짓말이 서로에게 어떤 상처를 내는지도 모른채 말이다. 그렇기에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제일 약한 부분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이해받는 편이 사랑을 아름답게 지속하는데 필요한 부분이 될지도 모르겠다.

돌고 돌아 먼 길을 온 고토미와 나오키지만, 그들의 결말은...행복했다. 비록 시작은 거짓이였지만 말이다. 책을 덮고 책 제목인 '행복한 거짓말'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제목의 의미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입가의 행복한 미소와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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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둑 1
마커스 주삭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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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신이다. 모든 사람들은 언젠가 나를 만난다. 어쩌면, 조용히 하루하루를 보내다가도 내 목소리를 듣거나, 살금거리는 발자국 소리를 듣거나, 정말 운이 나쁜 사람은 내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심장따위가 있냐고? 무슨 그런 서운한 소리를. 내 심장소리를 여러 번 듣고도 운좋게 살아남은 소녀가 엄연히 존재한다. 당신도 눈치챘다시피, 내가 지금 소개하려는 소녀가 바로 그녀다. 그녀의 이름은 리젤-책도둑이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건, 기차역에서였다. 그녀는 자신의 소중한 남동생을 부지불식간에 잃는다. 기침 한 번에 그녀의 남동생은 내 품에 안겨있었다. 동생을 잃고 실의에 빠진 그 소녀는 힘멜거리의 양부모에게 맡겨진다. 한스 후버만과 로자 후버만이 리젤의 양부모이다. 로자 후버만은 커다란 옷장같은 이미지를 풍기는 여자로, '자우멘슈' '아르슐로흐'등의 욕을 거리낌없이 내뱉는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더 걸쭉하게 욕을 내뱉는다는걸 리젤은 곧 알게된다. 키가 껑충하고 은빛 눈동자를 가진 한스 후버만은 리젤이 평생 사랑할, 그리고 사랑했던 아빠가 된다. 악몽에 시달리는 리젤곁을 떠나지 않고 지켜주고, 책도둑이 갖춰야할 말을 가르쳐준다.

옆집의 루디 슈타이너는 리젤에게 언제나 '뽀뽀 한 번 어때?'라고 말하는 개구장이다. 루디와 리젤은 함께 어울려 축구도 하고 달리기도 하며 그들의 우정과 사랑을 키워간다. 그들의 우정을 색깔로 표현한다면, 아마 따뜻한 오렌지빛일거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인물-막스. 퓌러의 박해속에 빛을 잃고 거의 내 품속에 들어올뻔하다가, 한스의 집으로 용케 숨어든 유대인 권투선수. 그는 지하실의 어둠속에서 늘 나와 만났다. 하지만 나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던건 말과, 그림과, 리젤이였다.

1930-1940년에 내가 가지 않은 곳이 없었다. 늘 곳곳에서 죽음이 만연했다. 퓌러는 그가 심은 말로 열매를 맺어, 독일인들을 자신의 말에 중독시켰다. 자신의 독에 중독된 독일인들과 함께 러시아를 침공했고,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보냈다. 수많은 유대인들이 내 이름을 부르며 절망속에 스러져갔다. 

하지만 모든 독일인이 퓌러의 독에 중독된 것은 아니였다. 한스 후버만은 막스와 약속을 지킬 줄 알았고 자신의 신념을 믿었다. 리젤은 어린 아이다운 순수함으로 막스와 우정을 지켜냈다. 루디는, 비록 천방지축이였지만 유대인들에게 마른 빵을 던져줄줄 알았고 죽어가는 사람에게 곰인형으로 위로를 안겨줄줄 알았다.

말을 몰랐던 리젤에게 말은 금방 찾아왔고, 힘들때마다 책을 훔치며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위로했다. 책 속에서 위안을 받았고, 커다란 목소리로 책을 읽음으로 주변 사람들을 따뜻하게 감싸안았다. 

내가 인간들에게 품는 경이로움과, 경악은 늘 한순간에 찾아왔다. 그래서 책도둑의 마지막 순간에 이렇게 묻고 싶었다. 어떻게 똑같은 일이 그렇게 추한 동시에 그렇게 찬란할 수 있냐고, 말이란 것이 어떻게 그렇게 저주스러우면서도 반짝일 수 있냐고.(349p)

인간들이 사는 세상은 리젤-책도둑의 말대로 '추한' 스튜이다. 온갖 것들이 뒤섞여 돌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신인 내 심장을 뛰게 하는건, 리젤이 만들어낸 , 바로 그 희망에 있다. 리젤에게 희망의 말을 가르쳐준 한스,로자 후버만같은 사람들 때문이다. 

 ◈책도둑-마지막 줄◈

나는 말을 미워했고

나는 말을 사랑했다.

어쨌든 나는 내가 말을 올바르게 만들었기를 바란다.

나는 지금도 책도둑이 쓴 검은색 책을 들여다보고 있다. 리젤-책도둑은 올바른 말을 만들어냈다. 그 말들은 심장이 없을것만 같은 나의 심장을 뛰게 하고, 잿빛 구름속에 한줄기 햇빛을 만들어냈다. 책도둑의 책에서, 나는 가장 아름다운 색깔을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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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언 달러 초콜릿
황경신 지음, 권신아 그림 / 북하우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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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황경신님을 처음 만난 건 잡지 '페이퍼'에서였다. 페이퍼의 필진들 모두 독특한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이라 잡지 자체에 묘한 매력이 풍기기도 했지만, 특히 황경신님의 글은 무엇인가에 푹 빠져들기 두려워하는 겁쟁인 나에게, 빠져들 수 있음의 미학을 가르쳐주었다고 할 수 있겠다.

 

'밀리언 달러 초콜릿'은 황경신님이 12년 동안 PAPER를 통해 발표한 글들과 권신아 작가의 일러스트가 함께 수록된 감성 에세이이다. 때로는 시로, 때로는 동화로, 때로는 에세이의 느낌으로 사랑에 대해, 추억에 대해 조근조근 이야기해주고 있다.

 

사랑에 처음 빠졌을때의 달콤함, 그리고 막 이별하고 돌아설때의 쌉싸름함에 대해 여러가지 형태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럴테면 이런 구절들.

 

달콤한 데이지꽃 향기가 손바닥에 가득 찼다

은밀한 초콜릿 향기가 심장을 찔렀다

나의 마음은 우윳빛 눈보라가 몰아치는 강,

조각배 위에 누워 있었다.

 

모든 것이 너무 순간이었고, 나는 너무 두려웠다

뜨거운 불을 만진 듯 달빛으롭터 황급히 손을 거두었다

툭,툭,메마른 땅 위로, 먼 우주에서 지금 막 도착한 사랑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사랑은 어디서 오는가 中>

 

 

사랑을 해도 외롭고 사랑을 하지 않아도 쓸쓸한 봄날, 하지만 세상은 너무나 아름다워 그것만으로 눈물겹게 행복해지는 봄날, 그런 날들이 막 시작되려 하는 어느 날 아침에 나는 무엇인가를 잃어버렸다. 그건 어제까지만 해도 소중하게 붙잡고 있었던 기억이었을까? 아니면 끝내 떨쳐버리고 싶었던 기억이었을까? 다시 돌아온 이 봄날이 또다시 떠나는 그날, 그는 내게서 무엇을 가지고 갈까? 혹은 무엇을 남겨두고 갈까?

<봄날이 가지고 가는 것 中>

 

사랑이란 것은 영원히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라고 늘 생각해왔다. 손에 잡히지 않으니 애써 모른척해도 된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황경신님의 달콤쌉싸름한 글들을 읽으며 그런 내 생각은 바보같은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는걸 깨달았다. "내가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는 한, 나의 삶과 나의 꿈에서는 언제나 초콜릿 향기가 날 것이다."라고 서문에 밝힌 황경신 작가-그의 말처럼 사랑은 어쩌면 달콤쌉싸름한 초콜릿과 닮아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맛보는 것만으로, 향기를 맡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초콜릿과 사랑은...비슷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황경신님의 맛있는 글과 더불와 권신아 작가의 아름다운 일러스트를 함께 감상할 수 있다는건 이 책의 또다른 매력이라 말할 수 있겠다. 나만의 개인적인 생각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황경신님의 달콤한 글은 권신아 작가의 쌉싸름한 일러스트와 제일 잘 어울리는것 같다.

 

무언가 심심하고 무료한 오후 저녁, 밝은 햇살과 <밀리언 달러 초콜릿> 책 한 권만 있다면 당신은 이 세상 어느곳이라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을 것이다. 달콤 쌉싸름한 그 무엇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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