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둑 1
마커스 주삭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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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신이다. 모든 사람들은 언젠가 나를 만난다. 어쩌면, 조용히 하루하루를 보내다가도 내 목소리를 듣거나, 살금거리는 발자국 소리를 듣거나, 정말 운이 나쁜 사람은 내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심장따위가 있냐고? 무슨 그런 서운한 소리를. 내 심장소리를 여러 번 듣고도 운좋게 살아남은 소녀가 엄연히 존재한다. 당신도 눈치챘다시피, 내가 지금 소개하려는 소녀가 바로 그녀다. 그녀의 이름은 리젤-책도둑이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건, 기차역에서였다. 그녀는 자신의 소중한 남동생을 부지불식간에 잃는다. 기침 한 번에 그녀의 남동생은 내 품에 안겨있었다. 동생을 잃고 실의에 빠진 그 소녀는 힘멜거리의 양부모에게 맡겨진다. 한스 후버만과 로자 후버만이 리젤의 양부모이다. 로자 후버만은 커다란 옷장같은 이미지를 풍기는 여자로, '자우멘슈' '아르슐로흐'등의 욕을 거리낌없이 내뱉는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더 걸쭉하게 욕을 내뱉는다는걸 리젤은 곧 알게된다. 키가 껑충하고 은빛 눈동자를 가진 한스 후버만은 리젤이 평생 사랑할, 그리고 사랑했던 아빠가 된다. 악몽에 시달리는 리젤곁을 떠나지 않고 지켜주고, 책도둑이 갖춰야할 말을 가르쳐준다.

옆집의 루디 슈타이너는 리젤에게 언제나 '뽀뽀 한 번 어때?'라고 말하는 개구장이다. 루디와 리젤은 함께 어울려 축구도 하고 달리기도 하며 그들의 우정과 사랑을 키워간다. 그들의 우정을 색깔로 표현한다면, 아마 따뜻한 오렌지빛일거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인물-막스. 퓌러의 박해속에 빛을 잃고 거의 내 품속에 들어올뻔하다가, 한스의 집으로 용케 숨어든 유대인 권투선수. 그는 지하실의 어둠속에서 늘 나와 만났다. 하지만 나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던건 말과, 그림과, 리젤이였다.

1930-1940년에 내가 가지 않은 곳이 없었다. 늘 곳곳에서 죽음이 만연했다. 퓌러는 그가 심은 말로 열매를 맺어, 독일인들을 자신의 말에 중독시켰다. 자신의 독에 중독된 독일인들과 함께 러시아를 침공했고,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보냈다. 수많은 유대인들이 내 이름을 부르며 절망속에 스러져갔다. 

하지만 모든 독일인이 퓌러의 독에 중독된 것은 아니였다. 한스 후버만은 막스와 약속을 지킬 줄 알았고 자신의 신념을 믿었다. 리젤은 어린 아이다운 순수함으로 막스와 우정을 지켜냈다. 루디는, 비록 천방지축이였지만 유대인들에게 마른 빵을 던져줄줄 알았고 죽어가는 사람에게 곰인형으로 위로를 안겨줄줄 알았다.

말을 몰랐던 리젤에게 말은 금방 찾아왔고, 힘들때마다 책을 훔치며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위로했다. 책 속에서 위안을 받았고, 커다란 목소리로 책을 읽음으로 주변 사람들을 따뜻하게 감싸안았다. 

내가 인간들에게 품는 경이로움과, 경악은 늘 한순간에 찾아왔다. 그래서 책도둑의 마지막 순간에 이렇게 묻고 싶었다. 어떻게 똑같은 일이 그렇게 추한 동시에 그렇게 찬란할 수 있냐고, 말이란 것이 어떻게 그렇게 저주스러우면서도 반짝일 수 있냐고.(349p)

인간들이 사는 세상은 리젤-책도둑의 말대로 '추한' 스튜이다. 온갖 것들이 뒤섞여 돌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신인 내 심장을 뛰게 하는건, 리젤이 만들어낸 , 바로 그 희망에 있다. 리젤에게 희망의 말을 가르쳐준 한스,로자 후버만같은 사람들 때문이다. 

 ◈책도둑-마지막 줄◈

나는 말을 미워했고

나는 말을 사랑했다.

어쨌든 나는 내가 말을 올바르게 만들었기를 바란다.

나는 지금도 책도둑이 쓴 검은색 책을 들여다보고 있다. 리젤-책도둑은 올바른 말을 만들어냈다. 그 말들은 심장이 없을것만 같은 나의 심장을 뛰게 하고, 잿빛 구름속에 한줄기 햇빛을 만들어냈다. 책도둑의 책에서, 나는 가장 아름다운 색깔을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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