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당신은 절대 잊히지 않을 것이다
메리 사우스 지음, 변용란 옮김 / 책봇에디스코 / 2022년 7월
평점 :
* 스포 지양 *
취향 저격이다. 디스토피아 속에서 내 감정과 마주할 때의 짜릿함이 너무 인상적인 소설집이다. 표제작도 아주 탁월한 선택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절대 잊히지 않을 것이다』
메리 사우스 저 / 변용란 역 | 책봇에디스코
디자인 허희향 eyyy.design | 2022년 07월
잊히고 싶은 갈망이 표지에 아주 잘 나타나 있다. 빨간색으로 지워보려는 강렬한 터치가 흰 바탕을 더 하얗게 만든다.
『 You Will Never Be Forgotten 』
Never의 ever와 지은이 그리고 옮긴이의 이름을 빨간색으로 그어 놓았다. 결국 잊힐 거라는 상실감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소설이라는 사실은 잊히고, 이제 곧 현실화될 거라는 무서운 의미까지 내포하고 있다. 원서 표지 디자인보다 더 의미심장하다.
괴물 신인의 그야말로 괴기한 소설이다. 상실감에서 오는 인간의 본질을 첨단 기술을 비롯한 다양한 주제로 다루고 있다. 걸러내지 않은 직역 때문인지 소재의 의미가 더 깊게 박히는 소설집이다. 참고로 돌발적인데 친근감이 묻어 있는 김애란의 소설집 ‘달려라 아비’와 비슷한 결이 있지만, 『당신은 절대 잊히지 않을 것이다』는 돌발에다 도발까지 추가하고 친근감은 제로이다.
10편의 단편 소설 중 3편에 대해 기록해 보았다.
「키이스 프라임」
- 고마워, 넌 최고였어.
「육체적인 각성에 이어 그는 자신이 동떨어진 존재임을 각성했고, 마침내 그의 각성은 자신이 되지 못하는 존재에 대한 인정으로 이어진다」 슬프다.
키이스는 무의식 상태에서 오직 장기를 보존하는 용도로만 쓰이는 복제 인간이다. 키이스의 장기를 수확하는 일을 하던 주인공이 키이스를 임시로 케어하면서 느끼는 불편한 감정은 머지않아 마주할 우리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안 좋았다.
「사랑의 시대」
- 사랑은 나이 많은 요양 환자에게도 진행 중이다.
오직 청각을 통해서만 들려오는 타인의 은밀한 사생활이 더 확실한 시각화를 불러일으킨다. 그들은 사회에서 격리된 요양 환자들이다. 어디서 삶을 마감할지 상상하는 사람들이 아닌, 실제로 아는 사람들이다. 확실한 생의 마감을 알고 있는 이상, 삶은 상상할 수밖에 없다. 컴퓨터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성인 전화방에 전화를 걸어 그들의 삶을 더 선명하게 확인하는 것이다.
「나는 왜 질을 위해서 독창적인 시나리오를 상상해낼 수 없었는지, 왜 우리의 폰섹스 판타지가 로저스 씨의 판타지를 그대로 따라 했는지 알 수 없었다」
남자 주인공이 여자친구 질의 폰섹스 제안에 응하고, 요양 환자인 로저스 씨의 판타지를 그대로 따라 한다. 실시간 알고리즘이 내가 원하기도 전에 답을 제시하는 것과 달리, 요양 환자들의 전화방 대화에는 헛된 바램과 상상 속에, 슬프게도 언젠가의 현실이 담겨있다는 사실이 씁쓸하면서도 여운을 남겼다.
「당신은 절대 잊히지 않을 것이다」
- 출구가 없는 자기만의 방에 갇힌 한 여자의 이야기지만, 다양한 범죄에 노출되어 살아가는 우리들의 일상을 격한 방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인터넷 브라우저 창에 혐오 발언, 유혈 장면, 고문, 성인 및 아동을 상대로 한 포르노, 끔찍한 교통사고 장면, 테러리스트들이 자행한 처형 장면 등을 검열하는 직업을 가진 여자다. 그리고 자신을 강간한 강간범의 일상을 SNS를 통해 염탐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여자는 여자가 하는 일에 몰두하는 사람인지, 자신의 일상도 그쪽으로 몰고 가는 느낌이다. 온라인 사생활 노출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심으로 가득한 여자의 두서없는 행동도 잊히지 않지만, 광대한 온라인상을 누비는 여자만의 상상 또한 절대 잊히지 않을 것이다.
「여자는 강간범이 왜 자신을 성폭행했는지, 그리고 짐작건대 강간범의 여자 친구는 왜 성폭행을 당하지 않았는지 이유를 깨닫는다. 강간범의 여자 친구는 쿨해서 성폭행 이전에 성관계를 하지만 여자는 평범하고 쿨하지 못하다」
10편의 소설 중 〈사랑의 시대〉, 〈세츠코가 아닌〉 2편은 영상화로 결정되었다고 하는데 기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