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이 질병이 되는 순간
전형진 지음 / 프리즘(스노우폭스북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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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은 언제든 멈출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시작과 반복의 연속이다. 하지만 쾌락은 다르다. 쾌락은 말 그대로 끊임없이 즐기거나 머물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이 책은 이러한 쾌락이 질병이 되는 순간을 이야기하는데 그 끝은 중독을 가리킨다.


쾌락이 질병이 되는 순간
전형진 저 | 스노우폭스북스 | 2023년


즐거움이 일정하고 높낮이가 없으면 표정이 없어진다. 무덤덤 혹은 무감각이라고 해야 하나. 좋은 것도 한두 번은 통한다. 멈출 줄 알아야 현재를 즐기는 최대치를 맘껏 끌어당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존재는 쾌락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동물적 감각을 내세워 누리고자 한다. 좋아하고, 즐기며, 기뻐하는 모든 것들이 하늘에서 눈처럼 펑펑 내리길 바란다. 너무 행복하면 불안하다는 말도 있는데, 당장 죽어도 좋다는 초긍정의 힘을 내뿜다가도 계속되길 바라는 이 역설적인 설정은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건지. 멈출 줄 안다는 건 순간의 기쁨을 극대화하는 아주 귀한 일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중독에서 벗어나는 일이 빨라질 텐데.


이 책은 스마트폰, 쇼핑, 다이어트, 게임, 빚 때문에 멈출 수 없어 고민인 사례들로 시작한다. 심하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가장 눈에 띄는게 있다. 바로 스마트폰이다. <CHANGE 9>에서 최재붕 교수는 현대인에게 스마트폰은 명백한 ‘인공장기’에 가깝다고 말했다. 종일 우리의 몸과 붙어 있으면서 생각, 습관, 행동 양식을 바꾸는 역할을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제3의 장기와 같은 스마트폰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느냐는 물음과 함께 저자는 세 가지 방법을 추천한다. 사용 시간을 정해놓기, 중독성 강한 앱 삭제하기, 다른 취미 찾기이다. 익히 잘 알고 있는 방법이라 설득력 있게 다가오진 않았지만 일단 행동으로 옮겨야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은 명확해졌다.


몸과 정신을 파괴하는 쾌락의 덫으로 알코올, 성형, 도박, 니코틴, 마약중독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일상을 파괴하는 평범한 유혹들로 일, 욕, 육류, 라면, 수면제, 모성애 중독도 다루고 있다. 마냥 좋기만 할 것 같은 사랑, 운동, 카페인, 공부, 기부 중독에 관한 내용도 있는데 그중 사랑에 빠지는 3단계가 눈에 들어왔다. 사랑의 감정을 갖기 전 성욕을 느끼며, 사랑의 진입 단계에서 매력을 느낀다. 그리고 안정적이고 편안한 기분을 느끼는 애착에 이른다. 물론 과하면 이 또한 맹목적인 헌신이나 집착으로 중독이 되어버리는 무서운 결과를 낳는다.


거의 모든 중독에 관한 정신건강 전문의의 진단과 처방이 이 책에 담겨있다. 할 수 없다는 감정에 호소하지 말고 행동하면 반드시 변화는 일어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내 삶의 주도권은 보이지 않는 감정이 아니라 눈에 보이고 느껴지는 행동력에 있으니깐.


‘감정이 행동을 이끄는 게 아니라 행동이 감정을 이끈다.’



*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생각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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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 역학이란 무엇인가 - 원자부터 우주까지 밝히는 완전한 이론, 개정판
마이클 워커 지음, 조진혁 옮김, 이강영 감수 / 처음북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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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만들어낸 수많은 표현과 언어가 있지만 양자역학을 정확히 설명할 만한 수단은 없다. 그냥 무조건 받아들이고 암기해야 하는 학문이 양자역학인 것 같다. 세상의 만물은 원자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은 많이 들어 익히 알고 있다. 양자역학은 원자의 운동을 기술하는 학문이다. 허구보다 낯선 이 학문을 알아가는데 블랙홀처럼 빠져들다가도 순간 미용실 싸인볼을 끊임없이 보고 있는 이 느낌은 뭔지.

양자역학이란 무엇인가 [개정판]
마이클 워커 저 / 조진혁 역 / 이강영 감수
처음북스(CheomBooks) | 2023년

과학에는 사람들 대부분이 놓치고 있는 흥분할 만한 것이 있다고 한다. 수학이 과학의 언어이고 그와 연관된 수학은 너무나 복잡해 높은 수준으로 수학교육을 받은 사람이라야 과학을 감상할 수 있기에 문제라며, 중계자인 ‘번역자’가 나타나 과학의 의미와 아름다움 그리고 흥미로움을 일반 대중에게 전해준다는데, 그 역할을 하는 번역자가 마이크 워커 이 책의 저자다.

워커는 물리적인 세계를 가장 이상하고, 매력적이며, 아름답게 묘사한 양자역학에 생명을 불어넣어 양자역학의 일부인 원자를 묘사하는 측면에 공을 들이고 있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화학과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을 설명함으로 어려운 수학적 표현 없이 대부분 시각적으로 표현하려 했다.

“우리는 아름답고, 흥미로운 양자 세계에 살고 있다. 우리 자신도 양자로 이루어진 존재다. 모든 생명과 물질은 양자이며, 우리의 기술은 양자론을 이해하면서 점점 진보하고 있다.”

이 책은 물질의 최소 단위라 받아들이는 원자의 발견과 그에 따른 응용을 시작으로 이론의 요약과 적용, 전망 등을 설명하고 있다. 빅뱅 이후 최소 입자부터 별과 은하계의 형성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치는 양자를 일부 알아보고, 우리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양자론에 의거한 것들을 연결해 본다.

흥미롭게도 양자역학은 알면 알수록 이상함으로 둘러싸여 있고, 이에 대한 해결책은 더욱 이상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리처드 파인만이 남긴 말이 가슴에 와닿는 게 정상이다.

“양자역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생각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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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부하시대 - 당신은 게으른 게 아니라 진심으로 지쳤을 뿐이다
로라 판 더누트 립스키 지음, 문희경 옮김 / 더퀘스트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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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발달 전 시대에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개중에 잘 살면 잘 사는 거고, 큰 욕심은 남의 일로만 생각하며 하루하루 충실히 사는 보통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월급날마다 시켜 먹는 치킨 한 마리에 좋아하는 가족들 모습을 보며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는 생각에 하루의 피곤을 잊어버리는 때도 있었다. 현재는 유튜브를 비롯해 각종 SNS에서 한 시대를 잘 사는 법의 테두리 안에 자기 계발적인 요소를 쏟아내는 채널이 아주 많다. 잘 살고 부자 되는 길을 다양한 방법을 통해 알려주는 탓에 현재 서 있는 위치는 늘 위태롭게 여겨진다. 모든 게 빠르게 갱신하는 이 시대에 하나라도 놓칠세라 쌓기만 하는 청춘들을 보고 있노라면 짠하다가도 그 길 외에 딱히 방법이 없다는 결론과 마주할 때면 그들만의 우물을 만들어 주고 싶을 때가 있다.


미니멀라이프나 더 나아가 자연인이라는 내려놓는 삶을 통해 과잉으로부터의 도피를 시도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다른 제안을 한다. 시대에 붙잡히는 일 대신 잘 어울리는 방법으로 ‘선택의 여지’가 있음을 일깨워준다.


이 책의 저자 로라 판 더누트 립스키는 정신적 외상치유 분야의 선구자이자 전 세계적 권위자이다. 환경 과학과 트라우마, 개인과 조직에 가해지는 영향 사이의 연관성을 연구하고 사회 및 환경 정의 운동에 참여하며 제도적 억압과 해방 이론을 둘러싼 주제로도 강연을 펼치고 있다.


책 표지가 상당히 현실적이다. 상갓집에 갔다 온 사람들 마냥 누군지 구분할 수 없는 검은 정장에 표정 없는 얼굴은 옛 어르신들이 말하는 귀신에 씌어 혼이 나간 사람처럼 보인다.


“불행히도 지금 사회는 끝내 피로감과 무기력이라는 상처를 준다.”


과부하 시대는 현 상태를 체크하는 일을 시작으로 과잉 성실을 문제 삼아 과부하의 지름길로 인한 우리가 소진된 이유를 설명한다. 해결책에는 작게 시작하라며 과잉으로부터 1퍼센트씩 벗어나는 일과 과부하 탈출 방법을 비중 있게 다룬다.


산만해질 때는 선택에 집중하며, 고립됐을 때는 현재에 머물도록 노력한다. 집착하거나 강박적인 느낌이 들 때는 외부로 호기심을 돌리고, 무기력할 때는 활력이 회복되는 연습을 하도록 권하고 있다. 통제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려고 노력하면 과부하가 줄어드는 동시에 균형감과 안정으로 인해 다가올 일을 탐색할 여유가 생겨 나중에는 노력을 적게 해도 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한계 이익의 총합 원리에 따르면, 몇 가지 영역에서 1퍼센트씩 개선되면 그 효과가 쌓여 큰 이익으로 변한다.’


이 책의 매력 포인트 중 하나는 삽화 된 그림과 그에 따른 간략한 설명이 큰 깨달음을 선사한다. 그림만 봐도 과부하로부터의 여유를 맛볼 수 있다.


과부하시대와 찰떡인 카뮈의 말을 리뷰의 마지막 부분으로 장식할까 했는데 사진으로 첨부하며 삽화 속 다른 말로 대신한다.


“아픈 허리는 치료 가능하지만 그러면 환자분의 대화 소재가 떨어질 위험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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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을유사상고전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지음, 홍성광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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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친근하다. 염세주의라는 오인이 만들어낸 성과다.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저 / 홍성광 역 | 을유문화사 | 2023년
8개 챕터가 추가된 ‘인생론’과 대폭 보강된 해설로 읽는 개정 증보판 l 원서 『소품과 부록』에 수록된 ‘색채론’ 국내 초역 l 새로운 편집과 30여 점의 도판 수록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와 저성장 속에서 낙관주의는 지칠 때가 되지 않았나? 표면적으로 염세주의나 비관주의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쇼펜하우어가 이 시대에 일침을 날릴 수 있는 철학자라 생각한다. 쇼펜하우어는 세상을 흔들림 없이 직관하게 한다. 또한 자신이 내뱉은 말에서 파생되는 철학적 깊이 보다, 명료함과 간결함으로 빠른 현실 파악에 도달하게 한다. 편재성에 비추어 호소력이 없으면 논리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이 점이 마음에 든다. 논리적 사고의 탈을 쓴 철학적 의미를 찾아내는 일을 한다는 게. 의미의 투명함에 분개하며 명백하지 않은 난해한 텍스트로 사유의 장을 여는 일을 즐기는 사람들이야 생각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 우리는 평생에 걸쳐 현재만을 소유할 뿐 결코 그 이상은 아니다. 같은 현재인데 차이가 나는 점은 처음에는 우리 눈앞에 긴 미래가 펼쳐져 있지만, 마지막이 되면 긴 과거가 우리의 뒤에 보인다는 사실과, 우리의 성격은 변하지 않지만, 기질은 여러 번 친숙한 변화를 겪어 매번 현재의 색조가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


기대, 욕구, 갈망은 눈 앞에, 흔적과 후회는 뒤에, 이 지점에서 멈춰선다. 과거와 미래의 역설적 위치가 아주 정확한 논리에 이르게 하는 쇼펜하우어다.


『 사회란 모두 필연적으로 서로 간의 순응과 타협을 요구한다. 그 때문에 사회란 범위가 넓을수록 무미건조해진다. 인간은 혼자 있을 때만 온전히 그자신일 수 있다. 그러므로 고독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자유도 사랑하지 않는자라고 할 수 있다. 』


이 시대에 강력하게 먹히는 명언이다. 자유를 위해 고독과 결혼하고 혼밥, 혼술을 사랑 일이 적지 않다. 깊게 들어가 코로나19가 어쩌면 자유를 선사하지 않았을까. 급속도로 변하는 사회 속에서 고독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우리에게 고립의 강요와 억지 자유를 맛보게 한 건 아닌지.


『 나는 사람들이 혼자 있을 때 지루해한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인간은 혼자서는 웃지 못한다. 심지어 그러는 것을 바보 같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웃음은 가령 단어처럼 단지 타인에 대한 신호이고, 단순한 표시에 불과할까? 그들이 혼자 있을 때 웃지 못하는 것은 상상력의 부족 탓이고, 무릇 정신이 활기차지 못하기 때문이다. 동물은 홀로 있으나 무리를 이루고 있으나 웃지 않는다. 』


윽. 리뷰 써 내려오는 이 흐름 왜 이렇게 좋지. 인간이기에 웃어야 하며 그래서 상상해야 한다.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은 삶의 의지에 상상을 불어넣는 풍선 같은 거? 통속적인 표현을 쓰자면 인생의 삑사리에도 행복을 논하고 인생을 논하게 하는 헬륨가스가 들어간 재미난 풍선이다.


몇 편의 시를 만났을 때는 사적으로 가까워진 느낌이 들어 아주 좋았다. 그의 위트는 몸을 간지럽히는데 뭐가 있다.


『 내게 관심을 보이는 독자에게 제물을 바치는 심정으로 대체로 젊은 시절에 쓴 나의 습작 시 몇 편을 여기에 내놓는다. 나는 독자가 고마워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와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 시들을 어쩌다 여기에 공표하는 우리끼리의 사적인 일로 봐주기를 부탁드린다. 문학에 시를 인쇄하는 것은, 사교 모임에서 개개인의 노래가 그렇듯이, 개인적 헌신의 행위다. 』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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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리크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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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를 보고 실망을 감출 수가 없었다. 프랑스가 주는 고혹적인 이미지를 떠올렸다가 정신없는 일러스트를 마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을 완독한 후 들떠있다. 너무나 완벽한 설정의 일러스트에 박수를 보낸다. 노란 머리의 여인이 움켜쥐려 하는 모습과 마법의 가루를 뿌려 조종하려는 모습의 교차가 이 소설을 아주 완벽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깨알 같은 소품들 또한 사소한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스토리의 요소를 품고 있다.


책을 펼치는 순간 아주 애정하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를 만났다. 이 책을 완독하기까지 하이스미스의 흔적이 나를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우리 안에 있는 영원히 충족되지 못할 불만, 지금과 다른 사람, 꼭 더 낫지 않아도 그저 다른 사람이었으면 하는 불만에 흥미를 갖는다.”


안젤리크
기욤 뮈소 저 / 양영란 역 | 밝은세상 | 2022년


한 인간의 진실은, 무엇보다도, 그가 감추는 것이다. - 앙드레 말로


욕망은 채울수록 커지고 꽉 찬 만족감은 쉬이 인정하기 힘든 걸까. 소설 속 캐릭터들은 늘 부족한 상태의 노출로 욕망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어 위태롭거나 혹은 자기 안에서만큼은 매우 충실하다.


낙오와 잊힘으로 괴로워하는 전직 애투알 무용수 스텔라의 죽음으로 그녀의 남겨진 딸 루이즈와 충실이라는 오지랖의 피해자인 전직 형사 마티아스가 만나게 된다. 그리고 욕망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스텔라의 집을 자주 드나들던 담당 간호사 안젤리크가 있다. 이 트리오의 찌그러진 변주가 각자 품고 있는 비밀과 욕망을 드러내면서 이야기는 빠르게 진행된다.


『욕실로 갔다. 사소한 단서라도 찾아볼 생각이었다. 구급상자를 열어보니 여러 개의 콘돔, 벤조디아제핀, 설트랄린이 눈에 띄었다. 당연하지만 무대 뒤편은 언제나 공연장보다 덜 근사하기 마련이었다. 난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지』


『선명한 두 개의 줄이 나를 비웃었다. 이런 결과가 나오리라 짐작했다. 생리가 지연되고, 가슴께가 단단해지고, 가끔 구역질이 났기 때문이다. 나는 임신 테스터를 세면대에 던져버리고 샤워 꼭지 아래에 섰다. 뜨거운 물줄기를 맞으며 아이 아빠가 누군지 알아보기 위해 지난 시간들을 더듬어보았다』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을 때 쾌락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최선을 다해도 선택의 한계를 마주하다 보면 기회조차 모습을 감춘다. 그러다 기적의 순간, 모든 걸 변화시킬 수 있는 결정적인 한순간에 과감한 행동을 시도하기도 한다. 회광반조에 입성이라는 오류를 범하면서도 치밀함을 내세워 생을 붙잡는 실체에 숨죽여 목도할 수밖에 없다.


『나는 물뿌리개를 아래로 던지고, 테라스에서 난간을 타고 지붕으로 향한다. 막상 저지르고 나니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다』


범인의 실체를 갖추는 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고 욕망의 시나리오는 활기를 띤다.


『기적의 순간이다. 모든 걸 변화시킬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 일생에 단 한 번뿐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면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과감하게 행동에 나서야 한다. 행동하라. 창문이 다시 닫히기 전에』


우리 각자는 자기 안에, 이기든 지든, 자신의 개인적인 정의감에 따라 혼자 떠맡아야 하는 자기만의 전쟁을 품고 있다. - 저지 코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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