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젤리크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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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를 보고 실망을 감출 수가 없었다. 프랑스가 주는 고혹적인 이미지를 떠올렸다가 정신없는 일러스트를 마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을 완독한 후 들떠있다. 너무나 완벽한 설정의 일러스트에 박수를 보낸다. 노란 머리의 여인이 움켜쥐려 하는 모습과 마법의 가루를 뿌려 조종하려는 모습의 교차가 이 소설을 아주 완벽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깨알 같은 소품들 또한 사소한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스토리의 요소를 품고 있다.


책을 펼치는 순간 아주 애정하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를 만났다. 이 책을 완독하기까지 하이스미스의 흔적이 나를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우리 안에 있는 영원히 충족되지 못할 불만, 지금과 다른 사람, 꼭 더 낫지 않아도 그저 다른 사람이었으면 하는 불만에 흥미를 갖는다.”


안젤리크
기욤 뮈소 저 / 양영란 역 | 밝은세상 | 2022년


한 인간의 진실은, 무엇보다도, 그가 감추는 것이다. - 앙드레 말로


욕망은 채울수록 커지고 꽉 찬 만족감은 쉬이 인정하기 힘든 걸까. 소설 속 캐릭터들은 늘 부족한 상태의 노출로 욕망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어 위태롭거나 혹은 자기 안에서만큼은 매우 충실하다.


낙오와 잊힘으로 괴로워하는 전직 애투알 무용수 스텔라의 죽음으로 그녀의 남겨진 딸 루이즈와 충실이라는 오지랖의 피해자인 전직 형사 마티아스가 만나게 된다. 그리고 욕망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스텔라의 집을 자주 드나들던 담당 간호사 안젤리크가 있다. 이 트리오의 찌그러진 변주가 각자 품고 있는 비밀과 욕망을 드러내면서 이야기는 빠르게 진행된다.


『욕실로 갔다. 사소한 단서라도 찾아볼 생각이었다. 구급상자를 열어보니 여러 개의 콘돔, 벤조디아제핀, 설트랄린이 눈에 띄었다. 당연하지만 무대 뒤편은 언제나 공연장보다 덜 근사하기 마련이었다. 난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지』


『선명한 두 개의 줄이 나를 비웃었다. 이런 결과가 나오리라 짐작했다. 생리가 지연되고, 가슴께가 단단해지고, 가끔 구역질이 났기 때문이다. 나는 임신 테스터를 세면대에 던져버리고 샤워 꼭지 아래에 섰다. 뜨거운 물줄기를 맞으며 아이 아빠가 누군지 알아보기 위해 지난 시간들을 더듬어보았다』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을 때 쾌락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최선을 다해도 선택의 한계를 마주하다 보면 기회조차 모습을 감춘다. 그러다 기적의 순간, 모든 걸 변화시킬 수 있는 결정적인 한순간에 과감한 행동을 시도하기도 한다. 회광반조에 입성이라는 오류를 범하면서도 치밀함을 내세워 생을 붙잡는 실체에 숨죽여 목도할 수밖에 없다.


『나는 물뿌리개를 아래로 던지고, 테라스에서 난간을 타고 지붕으로 향한다. 막상 저지르고 나니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다』


범인의 실체를 갖추는 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고 욕망의 시나리오는 활기를 띤다.


『기적의 순간이다. 모든 걸 변화시킬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 일생에 단 한 번뿐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면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과감하게 행동에 나서야 한다. 행동하라. 창문이 다시 닫히기 전에』


우리 각자는 자기 안에, 이기든 지든, 자신의 개인적인 정의감에 따라 혼자 떠맡아야 하는 자기만의 전쟁을 품고 있다. - 저지 코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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