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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ㅣ 을유사상고전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지음, 홍성광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1월
평점 :
역시 친근하다. 염세주의라는 오인이 만들어낸 성과다.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저 / 홍성광 역 | 을유문화사 | 2023년
8개 챕터가 추가된 ‘인생론’과 대폭 보강된 해설로 읽는 개정 증보판 l 원서 『소품과 부록』에 수록된 ‘색채론’ 국내 초역 l 새로운 편집과 30여 점의 도판 수록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와 저성장 속에서 낙관주의는 지칠 때가 되지 않았나? 표면적으로 염세주의나 비관주의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쇼펜하우어가 이 시대에 일침을 날릴 수 있는 철학자라 생각한다. 쇼펜하우어는 세상을 흔들림 없이 직관하게 한다. 또한 자신이 내뱉은 말에서 파생되는 철학적 깊이 보다, 명료함과 간결함으로 빠른 현실 파악에 도달하게 한다. 편재성에 비추어 호소력이 없으면 논리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이 점이 마음에 든다. 논리적 사고의 탈을 쓴 철학적 의미를 찾아내는 일을 한다는 게. 의미의 투명함에 분개하며 명백하지 않은 난해한 텍스트로 사유의 장을 여는 일을 즐기는 사람들이야 생각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 우리는 평생에 걸쳐 현재만을 소유할 뿐 결코 그 이상은 아니다. 같은 현재인데 차이가 나는 점은 처음에는 우리 눈앞에 긴 미래가 펼쳐져 있지만, 마지막이 되면 긴 과거가 우리의 뒤에 보인다는 사실과, 우리의 성격은 변하지 않지만, 기질은 여러 번 친숙한 변화를 겪어 매번 현재의 색조가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
기대, 욕구, 갈망은 눈 앞에, 흔적과 후회는 뒤에, 이 지점에서 멈춰선다. 과거와 미래의 역설적 위치가 아주 정확한 논리에 이르게 하는 쇼펜하우어다.
『 사회란 모두 필연적으로 서로 간의 순응과 타협을 요구한다. 그 때문에 사회란 범위가 넓을수록 무미건조해진다. 인간은 혼자 있을 때만 온전히 그자신일 수 있다. 그러므로 고독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자유도 사랑하지 않는자라고 할 수 있다. 』
이 시대에 강력하게 먹히는 명언이다. 자유를 위해 고독과 결혼하고 혼밥, 혼술을 사랑 일이 적지 않다. 깊게 들어가 코로나19가 어쩌면 자유를 선사하지 않았을까. 급속도로 변하는 사회 속에서 고독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우리에게 고립의 강요와 억지 자유를 맛보게 한 건 아닌지.
『 나는 사람들이 혼자 있을 때 지루해한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인간은 혼자서는 웃지 못한다. 심지어 그러는 것을 바보 같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웃음은 가령 단어처럼 단지 타인에 대한 신호이고, 단순한 표시에 불과할까? 그들이 혼자 있을 때 웃지 못하는 것은 상상력의 부족 탓이고, 무릇 정신이 활기차지 못하기 때문이다. 동물은 홀로 있으나 무리를 이루고 있으나 웃지 않는다. 』
윽. 리뷰 써 내려오는 이 흐름 왜 이렇게 좋지. 인간이기에 웃어야 하며 그래서 상상해야 한다.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은 삶의 의지에 상상을 불어넣는 풍선 같은 거? 통속적인 표현을 쓰자면 인생의 삑사리에도 행복을 논하고 인생을 논하게 하는 헬륨가스가 들어간 재미난 풍선이다.
몇 편의 시를 만났을 때는 사적으로 가까워진 느낌이 들어 아주 좋았다. 그의 위트는 몸을 간지럽히는데 뭐가 있다.
『 내게 관심을 보이는 독자에게 제물을 바치는 심정으로 대체로 젊은 시절에 쓴 나의 습작 시 몇 편을 여기에 내놓는다. 나는 독자가 고마워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와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 시들을 어쩌다 여기에 공표하는 우리끼리의 사적인 일로 봐주기를 부탁드린다. 문학에 시를 인쇄하는 것은, 사교 모임에서 개개인의 노래가 그렇듯이, 개인적 헌신의 행위다. 』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