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과거시제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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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박하다. AI 기술에 관한 논의는 전부 생산 측면에 쏠려 있지만 소비 측면에 활동하는 AI도 개발해야 한다는 작가의 말이. 감당을 어떻게 하면 소비 로봇을 만날 수가 있을까?


첫 단편 ‘수요곡선의 수호자’에서 만날 기회가 주어졌다. 일 잘하는 기계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인간은 그로 인한 잉여 소득을 잘 나누어 행복하고 여유롭게 살까? 애석하게도 다들 답은 잘 알고 있다. 기계는 작곡도 잘하고, 소설도 시도 그림도. 창작은 무의미해져 예술이 설 자리는 축소되고 사람들은 취미마저 잃고 만다. 몰린 생산의 치명적인 단점이 인간의 행복할 권리를 침범하는 일이라면 소비 로봇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배명훈 작가가 앞서 말한 내용의 의미가 단지 소비(지불)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는 점이다.


“과잉생산을 상쇄하는 과잉소비.”


소비 로봇 마로와 인간 유희의 영감으로 물드는 세계가 멀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이거(소비 로봇) 왜 안 만들지? 이게 없어도 인류 문명이 언제까지나 문명으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 - 작가 노트 中



‘미래의 일을 마치 과거에 직접 겪은 것처럼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사람.’


사투리로 취급되는 미래과거어미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지만, 미래의 어느 날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영화 ‘시월애’가 떠오르기도 했다. 시간을 거스르는 자는 두통에 시달릴 것 같다. 과거를 다시 만나면 기억을 덧입히는 일이 발생하는데 데칼코마니처럼 완벽하지 않다. 그렇기에 미래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어설프지만 끈끈한 연인의 이야기로 들려주는 표제작 ‘미래과거시제’이다.


소설들이 독특하다. 미래 전망을 그려보는 시간이었다고 할까? 현재에 머물다가도 미래의 어느 시점을 떠올리기에 오늘따라 더 많은 시간을 산 기분이다.



하루 서점에서 진행한 라이브 방송 때 책 표지와 맞춰 입은 패션 센스에 조금씩 웃느라 힘들었다. 뭘 입어도 멋있는 작가님이지만, 그날은 참 귀여우셨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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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거운 세상 속 부서진 나를 위한 책 - 우울한 나를 돌보는 법 INFJ 데비 텅 카툰 에세이
데비 텅 지음, 최세희 옮김 / 윌북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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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감정을 다루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저자인 데비 텅과 같은 INFJ 성향을 갖은 사람은 더 버거워하는 것 같다. 현재 상황이 그녀와 비슷했다면 엄청나게 동요되었을 만한 카툰 에세이다. 과거의 기억을 소환하여 데비 텅과 같은 부서진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던 날들을 만나며 우울에 동참하려 했으나 현재의 기운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아 그녀를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이는 시간은 어떤 잡음도 구속도 허락지 않고 먹구름이 번개를 만나며 내리는 시원한 비처럼 책의 페이지에 마음을 쏟아내게 그냥 두었다.

그녀는 심적 고통을 정직하게 묘사하는 과정에서 동일한 패턴을 보이며 버거움의 강도를 한꺼번에 내보이는 걸 거부하는 느낌을 받았다. 조금씩 토해내며 자신을 컨트롤하는 모습에서도 여전히 세상과 마주하길 버거워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의 반복으로 마침내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깊고 어두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은 통제할 수 없지만 어떻게 받아들이고 행동할지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고 앞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는 긍정의 멘트를 남기며 지금껏 의지하던 남편에게 기대며 덜어내는 일에 시작을 알린다.

눈에 띄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데비 텅의 남편이다. 매 순간 그녀의 곁에서 지켜보다 포옹하고 격려해 주는 모습을 유지한다. 불안한 스토리 속에서도 안정감이 느껴졌던 건 대사 없이도 그녀를 진심어린 마음으로 걱정하며 바라보는 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림의 힘은 시선을 느낄 수 있어 좋다.

복잡하게 정리가 안 된 마음으로 인해 부서져 버린 존재가 차근차근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며 비로소 받아들이게 된 우울에 가려진 진짜 모습과 마주한다. 더 이상 엉켜져 숨쉬기 곤란한 상태로 돌아가지 않을 거라는 단단한 의지가 보이는 것 같다.

현재 세상살이가 불안하고 힘들다면 그것을 구성하는 버거운 일들을 하나하나 나열해 보자. 어느 순간 정리가 되고 있다는 지점을 만나게 되면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순서에 상관없이 시작이라는 걸 해야겠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며 우울에서 벗어나는 일은 쉬워진다. 버거운 세상 속에 덩그러니 던져지는 일은 쉽지만 헤쳐 나가는 일은 어렵다. 넝쿨을 싹둑싹둑 가위로 자르듯 빠져나오는 방법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 말라버린 넝쿨을 손으로 휘휘 가르며 나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벗어나지 못할 하루는 없다는 사실을.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생각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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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원 을유세계문학전집 125
버나드 맬러머드 지음, 이동신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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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 11월의 거리는 밤이 끝났음에도 어둑했고, 식료품점 주인이 놀랄 만큼 바람이 벌써 날을 세웠다. 길가에 놓인 우유 상자 두 개를 옮기려고 몸을 숙이자, 바람에 앞치마가 날려 그의 얼굴을 가렸다. 』


첫 문장의 온도는 글의 분위기를 말해주기도 한다. 겨울 냄새를 맡으며 서성이던 이른 11월의 가을바람이 그의 얼굴을 앞치마로 가리는 건 ‘고립’의 예고였을까. 초겨울을 거부한 상태로 날을 세운 바람을 이겨내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식료품점 주인 유대인 모리스와 점원인 프랭크에게서 묘하게 겹치는 부분을 발견했다. 해함을 실행에 옮겨 고통받는 프랭크와 타인의 고통을 짐작하는 일에도 죄의식에 빠지는 모리스는 ‘해소‘의 길을 찾는다는 점이다. 격이 다른 고통이지만 향하는 곳은 현재 자리를 지키는 일이었다.


유대인이 믿는 율법에 의해 성실과 선함을 강조하면서 유지가 힘든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모리스는 경제적,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족의 호소에는 적절한 대응 대신 고립에 동참을 권할 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만큼 타인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방법은 없다며 모리스는 식료품점이라는 고립을 택한 걸까? 심심한 캐릭터인 모리스에게 점원 방랑자 프랭크를 두어 강도와 강간의 강수로 흔들어 놓지만, 가족도 외면하던 모리스가 믿는 율법에 반응을 보이며 스토리는 애틋함으로 연결된다.


주변 상점들의 발전과 활기로 소규모로 전락하고 마는 식료품점을 지키는 일과 사건, 사고의 소란은 피하고 물 흐르듯 살고 싶은 마음을 풀어낸 소소한 이야기가 매우 현실적으로 다가왔다는 점에서 맬러머드가 한 말이 떠올랐다.


“모두가 유대인입니다. 비록 그걸 아는 사람은 드물지만”

맬러머드는 프랭크를 통해서도 말한다.

“생각하는 것보다 세상에 유대인들이 더 많다는 사실이 웃기다.”


언급을 피하려고 했으나 유대인 하면 홀로코스트가 떠오른다. 솔직히 ‘점원’ 또한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조용한 항변으로 들렸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착오였음을 인정하는 순간은 책을 덮기 직전이었다. 4월의 어느 날 프랭크의 포경 수술로 이틀 동안 다리 사이의 고통이 분노와 영감을 주었으며 이어서 유대인이 되었다는 말에, 유대인의 조용한 항변이 아니라 고립과 고통으로부터 의미 있는 무엇을 발견하지 못한 사실에 당혹감을 느끼게 하여 인간적인 면을 추가하게 했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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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필요한 시절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황규관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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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라 단정 짓는 일 없이 그냥 시절 기억 속에서 무 뽑듯 쏙쏙 뽑아 문학의 자리를 꿰맞추는 시간이다. ‘나’를 형성한 시간을 현재로 불러내는 일이 ‘고독’의 참여를 재촉하다가도 갑자기 들이닥친 ‘긍지’와 마주할 때면 바빠진다.

“긍지가 없으니 고독에 참여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오늘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셔 ‘긍지’를 찾는 일에 두서가 없다. 저자의 일침에 맞장구 아니면 대꾸하고 싶지만, 알코올보다 더 무서운 카페인의 위력에 머리가 어지러워 조용히 지나간다.


저자는 ‘썩음’을 가지고 비판하기에 앞서 책무와 언어의 공공재를 이야기한다. 썩고, 신생의 시간과 마주하든가 아니면 숙성되어 진지해질 필요가 있다. 이때 문학은 거름일까. 사유하는 행위는 이성에 의한 것이다. 사유를 촉발하는 것은 상상력이기에 제도와 관습에 묶인 상상력과 감성을 해방시키는 일로 ‘시’를 내세운 저자지만(아무래도 시인이라) 문학 전체를 놓고 봐도 무관하다.


소를 키우면서 얻었던 산목숨에 대한 저자의 생생한 감각처럼 물신주의에 깊이 침윤된 언어를 회생 시키는데, 문학의 개입은 필요하다. 현재를 사는 아이들에게 생생한 감각은 어떤 것일까? 감각을 느끼는 게 아니라 각종 미디어의 노출을 통해 일방적으로 감각을 전달받는 시대에 그래도 문학이 사유를 내세워 감각을 깊숙이 흡수시키는 건 사실이다.


『 진정 창의적인 글은 빅데이터 되기를 거부하는 글이다. 빅데이터 되기를 거부하는 글은 언제나 ‘모름’ 속으로 자신을 던지는 글이다. 앎의 극단은 모름이라는 영역을 발견하게 되는 지점이며 여기서 앎과 모름을 가늠하는 정신의 탐침이 부르르 떨린다. 나는 이 정신의 탐침이 떨리는 현상 속에서 글쓰기가 시작된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

현재 챗GPT의 출현으로 인간 정신의 탐침마저 시스템화하고 있다. 아무래도 우린 사는 내내 문학이 필요한 시절을 보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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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걸 배드 걸 스토리콜렉터 106
마이클 로보텀 지음, 최필원 옮김 / 북로드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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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want of a toy
A child was lost’

소설의 시작에 앞서 Tom Waits의 <Misery Is the River of the World> 노랫말이 주는 암시는 묘했다. 장난감이 없어서 아이를 잃어버렸다는 가사와 함께 책 표지 두 여성의 가린 눈이 앞뒤 페이지를 장식한다.

이비 코맥. 뿌루퉁한 입과 예쁘장한 얼굴. 완전한 여자도, 유년기 끝자락에 선 소녀도 아니다. 산전수전 다 겪고도 용케 살아남은 아이는 나이를 먹지 않는 고정불변의 존재처럼 느껴진다. 마스카라로 떡칠한 속눈썹과 그 안에 갇힌 갈색 눈, 그리고 들쑥날쑥하게 잘라놓은 탈색한 단발머리. 아이의 두 손은 길게 늘어뜨린 스웨터 소매 끝을 쥐고 있다. 헐렁하게 늘어난 목둘레선 안으로 턱선을 따라 나 있는 빨간 얼룩이 보인다. 키스 마크일 수도 있고, 손가락 자국일 수도 있다. 끔찍한 살인 현장에서 발견된 이비는 폭력과 성적 학대 속에서 살아남았으나 이름도, 나이도 모른 채 소년원에서 살게 된다.

이비의 멍한 눈을 살피는 법의학 심리학자 사이러스는 자신과 같은 어두운 과거를 지닌 측은함과 진실 혹은 거짓을 판별하는 진실 마법사라는 특별한 능력 때문에 이비의 보호자를 자처한다. 그리고 그들의 동거는 시작된다.

이비의 머리 굴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다음에 던져질 뻔한 가장 불쾌한 질문을 앞두고 마음을 다잡는다. 그리고 물음을 쏟아낸다. 왜 기회가 있을 때 도망치지 않았는가? 공모자일 수도 있을까? 납치범과의 구속, 동정적인 관계에 깊숙이 빠져들어 지각 상실, 협박, 폭력 그리고 친절이라는 전형적인 방식에 세뇌당했으리라.

그들이 사는 집 주변에서 15세 피겨스케이팅 유망주 조디 시핸의 죽음으로 서스펜스는 열린다. 극심한 트라우마를 가진 이비와 사이러스의 눈을 교차하기 때문에 스릴은 겹겹이 쌓이기 시작한다.

진실을 들려주는 게 현명한 일일까? 이비는 예기치 못한 순간에 손에 박혀버린 가시처럼 거슬리게 만든다. 마음을 사로잡고, 불안하게 만들며, 사이러스가 왜 심리학자가 되었는지를 새삼 깨닫게 하는데.

“세상을 치유하고 싶어요?”
“어쩌면 나 자신을 구제하고 싶은 건지도 몰라.”
너무나도 깔끔하고 완벽한 답변이다.

살인사건은 뒤로하고 이비와 사이러스의 관계 진전에 초점을 들이대느라 범죄라는 주제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컸던 소설이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생각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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