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박하다. AI 기술에 관한 논의는 전부 생산 측면에 쏠려 있지만 소비 측면에 활동하는 AI도 개발해야 한다는 작가의 말이. 감당을 어떻게 하면 소비 로봇을 만날 수가 있을까?첫 단편 ‘수요곡선의 수호자’에서 만날 기회가 주어졌다. 일 잘하는 기계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인간은 그로 인한 잉여 소득을 잘 나누어 행복하고 여유롭게 살까? 애석하게도 다들 답은 잘 알고 있다. 기계는 작곡도 잘하고, 소설도 시도 그림도. 창작은 무의미해져 예술이 설 자리는 축소되고 사람들은 취미마저 잃고 만다. 몰린 생산의 치명적인 단점이 인간의 행복할 권리를 침범하는 일이라면 소비 로봇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배명훈 작가가 앞서 말한 내용의 의미가 단지 소비(지불)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는 점이다.“과잉생산을 상쇄하는 과잉소비.”소비 로봇 마로와 인간 유희의 영감으로 물드는 세계가 멀게만 느껴지지 않았다.“이거(소비 로봇) 왜 안 만들지? 이게 없어도 인류 문명이 언제까지나 문명으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 - 작가 노트 中‘미래의 일을 마치 과거에 직접 겪은 것처럼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사람.’사투리로 취급되는 미래과거어미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지만, 미래의 어느 날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영화 ‘시월애’가 떠오르기도 했다. 시간을 거스르는 자는 두통에 시달릴 것 같다. 과거를 다시 만나면 기억을 덧입히는 일이 발생하는데 데칼코마니처럼 완벽하지 않다. 그렇기에 미래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어설프지만 끈끈한 연인의 이야기로 들려주는 표제작 ‘미래과거시제’이다.소설들이 독특하다. 미래 전망을 그려보는 시간이었다고 할까? 현재에 머물다가도 미래의 어느 시점을 떠올리기에 오늘따라 더 많은 시간을 산 기분이다.하루 서점에서 진행한 라이브 방송 때 책 표지와 맞춰 입은 패션 센스에 조금씩 웃느라 힘들었다. 뭘 입어도 멋있는 작가님이지만, 그날은 참 귀여우셨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