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하루> 중에서...

시골 우리 마을의 집은 서로 멀찍멀찍 떨어져 있었고 한눈에 누구네 집이라는 걸 알아볼 수 있는 표정을 가지고 있었다. 영희네 집은 영희네 집같이 생겼고 수돌이네 집은 수돌이네 집같이 생겼다. 우리 집에 오는 편지는 할아버지의 성함만으로도 우리 집을 잘만 찾아왔다. 아무리 가르쳐도 주소를 제대로 못 외는 딸은 엄마를 실망시켰고 아둔하다는 탄식을 자아냈다. 소명하다는 칭찬을 듣던 아이가 환경이 바뀌자 하루아침에 아둔한 아이로 변했다. - P21

내가 꿈속에서 찾는 건 친구네 집도 아니고 우리 집도 아니고 다만 사람 사는 동네다. 저 등성이만 넘으면 동네가 보이겠지, 혹은 인가로 통하는 찻길이나 교통편이라도. 그러나 길은 점점 더 험해지고 뛰어넘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협곡이나 직각으로 선 단애를 만나게 된다. 차라리 단애에서 추락을 하자. 그래야 꿈을 깰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 고비만 넘으면 사람 사는 세상으로 통하는 길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미련을 못 버리고 계속 허우적대다가 깬다. - P22

내가 누려온 안일이 한없이 누추하게 여겨졌다. 사람이란 고통받을 때만 의지할 힘이나 위안이 필요한 게 아니라 안일에도 위안이 필요했던 것이다. 증언의 욕구가 이십 년 동안이나 뜸을 들였다가 결실을 맺게 된 것은 아마도 최초의 욕구가 증오와 복수심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증오와 복수심만으로는 글이 써지지 않는다. 우리 가족만 당한 것 같은 인명피해, 나만 만난 것 같은 인간 같지 않은 인간, 나만 겪은 것 같은 극빈의 고통이 실은 동족상잔의 보편적인 현상이었던 것이다. - P32

내 붙이의 죽음을 몇백만 명의 희생자 중의 하나, 곧 몇백만 분의 일로 만들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의 생명은 아무하고도 바꿔치기할 수 없는 그만의 고유한 우주였다는 게 보이고, 하나의 우주의 무의미한 소멸이 억울하고 통절했다. 그게 보인 게 사랑이 아니었을까. 내 집 창밖을 지나는 무수한 발소리 중에서도 내 식구가 귀가하는 발소리는 알아들을 수있는 것처럼. 몇백, 몇천 명이 똑같은 제복을 입고 운동장에 모여 있어도 그 안에서 내 자식을 가려낼 수 있는 것처럼. 내자식이 딴 애들보다 덜 똘방똘방하고 어리숙해 보일수록 사무치게 사랑스러운 것처럼. - P33

나는 오슬오슬 춥다가 오싹오싹 떨린다고 말하고 싶다. 내 몸은 지금 불화로를 얼음조각으로 포장해놓은 것 같다고 말하고 싶다. 삭신이 쑤신다고 말하고 싶다. 입맛이 소태 같다고 말하고 싶다. 죽어도 이 나라에선 죽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아무도 통역할 수 없을 것 같은말만 생각났다. 그걸 참고 따라다니자니 하루가 여삼추였다. - P39

나의 시골집 마당은 아직도 흙바닥이지만 양회 바닥처럼 단단하다. 내 친구의 어머니 시신까지 하룻밤 사이에 동해바다로 토해낸 폭우도 우리 마당의 견고함을 범하진 못했다. 나의 입과 우리 마당은 동일하다. 다 폭력을 삼켰다. 폭력을 삼킨 몸은 목석같이 단단한 것 같지만 자주 아프다.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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