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에세이&
백수린 지음 / 창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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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다른 이들의 일상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행복과 슬픔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지?
‘덥썩’하고 백수린 작가님의 에세이를 펼쳐본다.

여름이 되면 그녀의 소설 <여름의 빌라>와 <눈부신 안부>를 읽어 보려고 맘 먹고 있다가 다른 직업군을 가진 이들의 일상은 어떨까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으로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을 먼저 만나게 되었다. 제목부터가 손길이 갔던 것도 사실이다.

누구에게도 그다지 싹싹하지 못했다는 저자는 조금 특별한 방식으로 사는 매우 영적이었던 엄마 친구 M이모를 잘 따랐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가 사는 동네로 이사를 결심한다.
성곽길 근처 외진 골목을 오르고 올라 비탈길 언덕 위 단독주택으로 말이다.

매끈한 도시를 벗어나 그 곳에서 마음의 풍요로움과 고요를 느끼며, 옥상에서 맥주를 마시고 노을을 바라보는 감성 저편에, 이 비좁은 골목과 낮은집들을 떠날 수 없는 저마다의 사정이 있을 것만 같은 오래된 주름진 얼굴들이 자꾸만 떠올려져서 솔직히 처음엔 가붓한 마음으로 읽지 못하고 괜히 나 혼자 거리감을 ‘살짝’ 두고 읽어 내려갔다.

(P. 31) 우리는 모서리와 모서리가 만나는 자리마다 놓인 뜻밖의 행운과 불행, 만남과 이별 사이를 그저 묵묵히 걸어나간다. 서로 안의 고독과 연약함을 가만히 응시하고 보듬으면서.


‘독립’이라는 내적 소망을 심고 지내는 나는 본인의 의지대로 꽃도 심고, 딸기도 심고, 수확을 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보통의 소소한 일상들에 살짝 두었던 거리를 자연스레 좁혀갔다. 서서히.

일과시간 동안 눈앞에 쏟아지는 돋움체들로 다소 피로감을 못 벗은 나에게 다정하면서도 간지럽히는 듯한 문장들이 마음의 정화를 일으키는 이 기분좋은 느낌. 아, 점점 스며드는구나.

(P. 56) 햇살을 충분히 받은 시칠리아의 레몬꽃과 비가 자주 오는 브르타뉴의 야생꽃에서 채집한 꿀은 점도나 무늬부터가 다를테지. 마음에 들뜬 날엔 브르타뉴의 꿀을, 우울해 한없이 가라앉는 날엔 시칠리아에서 온 꿀을 한 숟가락 먹고싶다. 마음엔 햇살도 비도 필요한 법이니까.


저자의 할머니가 즐겨 해주셨다던 간장국수도 먹어보고 싶고, 여름의 뜨거운 태양을 받고 자란 싱싱한 갖가지 채소들과 김 폴폴 나는 솥에서 갓 쪄낸 옥수수도 떠올려진다. 아 배고파.

계절의 냄새와 풍경을 담고 있는 문장들을 읽다가 문득, ‘나는 언제 눈이 오길 기다렸던가’ 라는 생각에 잠시 과거의 기억들에도 빠져본다. 세월에 떠밀려 잊고 있었던 마음 한 구석에 아슴하게 남아있던 기억속의 나를 발견하는 동안 혼자 ‘피식’웃기도 해본다.

(P. 60) 사랑이 뭔지도 모르면서, 첫눈 내릴 때까지 봉숭아물이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말에 손톱을 깎지 않던 어린 시절이나, 눈송이가 창밖으로 떨어지면 그 핑계김에 연애 이야기를 해달라고 선생님에게 졸라대던 학창시절에 첫눈은 기다림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제 생각해보니 나는 첫눈 소식을 예전만큼은 기다리지 않는 것 같다. 어쩌다 내가 이렇게 변해버렸을까?


수년동안 좋은 추억이 쌓인 집에서 반려견 봉봉과 함께 행복했던 기억들이 참 애틋하다. 봉봉을 잃고 상실감에 빠졌던 그녀가 다시 운동화 끈을 꿰어 밖으로 나갔을 때는 응원의 마음으로 읽었다.

(P. 126) 사랑하는 나의 첫 강아지 봉봉을 지난 가을 무지개다리 건너로 떠나보낸 이후, 슬픔은 일상이 되었다. 부재는 도처에 있었다.


삶에 큰 의미였던 존재를 잃고 난 후에 내가 미처 몰랐던, 아니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아주 사소한 모든 것들에게도 하나 하나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운 마음을 어루만져 주면서 잘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봐야 할까. 아님 부재를 채우기 위한 안감힘 인걸까. 나도 잘 모르겠다.

사랑하는 존재를 잃은 사람들이 제각기 자신만의 방법으로 슬픔을 덜어내보려 노력하는 모습을 목격할 때, 보이지 않는 닿지 못 할 손일지언정 가까이 다가가 토닥여 주고 싶다.

주변사람들을 생각해서 내 안에 가득한 슬픔을 제어하고 조절한다는 것이 사람 마음을 참 힘들게도 하고 숨 막히게도 하지만 때론, 그런 외부의 영향이 나를 다시금 일으켜 세워볼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자극이 되어주기도 하는 것 같다.

‘이러니까 사람이 사는거구나.’ 라는 그 흔하지만 낯설기도 한 말을 진심으로 공감해본다. 다행이기도 하면서 착잡하기도 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모든 것들이 결국 존재와 부재 사이의 틈을 겨우겨우 애써서 메우는 자신의 분투라는 것을 알기에 사실 서글픈 노력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다시 일어선다.

저절로 생겨나는 서글픔을 내 맘대로 치워버릴 수 없듯이 이 모든 아픔의 현실을 인정하고, 상실된 마음을 치유해 나가는 과정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 노력하면, 분명 그 안에서 다시 일어서게 만드는 힘이 새싹처럼 자라난다는 것을.

그러니 힘내고 힘내자.

(P. 137) 얼마 전부터 나는 다시 길을 잃어보기로 했다. 사랑하는 존재를 느닷없이 하늘나라도 떠나보내고 깊은 슬픔에 잠겨 있던 내가 일상을 다시 살아낼 힘을 얻기 위해 스스로 내린 처방이었다.


각별한 추억은 없지만 외갓집에 가면 늘 유쾌하게 분위기를 만들어 주던 저자의 19살 많은 외삼촌의 기억을 담은 <5월> 편은 참 많이 뭉클했다.

저자는 할머니의 기일 하루 전에 외삼촌의 부고 소식을 듣게 된다. 마지막으로 병원에서 만났던 날을 떠올려 보니 그 날 외삼촌은 휠체어를 탄 야윈 모습에도 환하게 웃음 짓고 있었다.

장례식을 마치고 사람들과 함께 탄 전세버스 안에서 내다 본 바깥 풍경엔, 외삼촌이 좋아했던 붉은 작약송이들이 푸른 들판 위에 펼쳐져 있었고 그제서야 작별을 실감했다는 저자의 머릿속에 떠올려진 외삼촌의 환한웃음을 나도 함께 떠올려 본다.
가까워진 죽음 앞에 누구보다 두려웠을 본인을 병문안 온 조카의 걱정스러운 눈빛에 환한웃음으로 안심시키고 싶었을 그 마음이 헤아려지기에 나 역시도 이 먹먹함을 오롯이 느낄 수 밖에 없었다.

(P. 160) 그는 어둠 속에서도 싱싱하게 자라나는 기쁨을 기어코 발견해내고 삶을 마지막 순간까지 찬란히 누리는 사람이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로 자꾸만 겁을 주는 환경에서 오랜시간 자유롭지 못하여 독립을 향한 문턱에서 스스로 내려오게 된 나는, 위험을 감수하는 탐험가의 길을 택한 저자의 용기가 내심 부럽기도 했고, 일상의 작은 기쁨을 발견하는 섬세함과 소설을 쓰기 위한 저자의 간절함과 고독함도 느낄 수 있었다.


만남과 이별, 그 안에서 분투하며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 타인을 배려하고, 다가가고, 3월이 되어 그 해의 첫 프리지아를 만나면 반드시 꽃을 사서 누군가에게 선물을 하는 그녀의 모습은 사랑의 몸짓이 무엇인지 ‘충분히’ 가늠케 하였다.

(P. 59) 촘촘한 결로 세분되는 행복의 감각들을 기억하며 살고 싶다. 결국은 그런 것들이 우리를 살게 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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