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나는? 스물다섯 해를 살도록 삶에 대해 방관하고 냉소하기를 일삼던 나는 무엇인가. 스물다섯 해를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무엇에 빠져 행복을 느껴본 경험이 없는 나, 삶이란 것을 놓고 진지하게 대차대조표를 작성해본 적도 없이 무작정 손가락 사이로 인생을 흘려보내고 있는 나, 궁핍한 생활의 아주 작은 개선만을 위해 거리에서 분주히 푼돈을 버는 것으로 빛나는 젊음을 다보내고 있는 나. - P17
마침내 마음자리에 홍수가 나버려서 이 아침 절박한 부르짖음을 토해내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 P18
열 살이 넘으면서부터 내 손으로 곧잘 밥을 지어먹곤 했다. 착한 마음이 불 일듯 일어나는 날에는 된장찌개도 끓이고 나물도 무쳐서 밥상을 차려놓고 시장에서 돌아오는 어머니를 기다렸다. 그러나 열다섯 살이 넘은 후로는 그렇게 착한 마음이 생기는 날이 참 드물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철이 들면 더욱 착하게 굴어야 할 텐데, 나는 그렇지가 못했다. - P60
"형이랑 같이 살 때, 난 밤마다 기다렸다가 형이 벗어둔 양말을 깨끗이 빨아서 널어놓은 뒤에야 잠을 잤지. 냄새나는 형의 양말, 나 때문에 더욱 냄새가 날 수밖에 없는 그 양말을 주물러 빨고 있으면 그렇게 마음이 편했어. 지금도 형 집에 가면 형수 몰래 가끔 형 양말을 빨아주고 돌아와."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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