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하 진 지음, 김연수 옮김 / 시공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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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중국소설은 태어나서 처음 읽는 것 같다. 역사에 유독 약한 나는 읽기 전 표지에 써있는 <문화혁명기>란 단어를 보고 겁을 먹었다. 분명히 딱딱한 내용일 것이다, 정치적인 이야기, 사회적인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막연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당시 나는 이 책에 대해서 어떤 것도 들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떠한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딱딱하지도, 지루하지도 않았고, 역사에 유독 약한 나에게 너무 어렵지도 않았다.

주인공 군의관인 쿵린은 부모에 의해 류수위란 여자와 사랑없는 결혼을 하게 된다. 사랑이 없어도 결혼 자체로 충분히 로맨틱하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사랑없는 결혼과 쿵린의 류수위에 대한 감정묘사는 그저 아무 냄새 나지 않는 플라스틱과도 같았다. 아무 흥미도 없고, 서로 교류도 없고, 죄송한 말이지만,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몇 층, 몇 호에 살고 있는 인사 조차 하지 않는 아무개씨와 나와의 관계와도 같았다고나 할까.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혹은 엠티를 갔을 때 자주 했던 게임 중에 truth or dare란 개임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그 땐 왜 그렇게 재미있었는지. 처음 그 게임 도중 첫 사랑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그 짧은 시간에 나의 첫 사랑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다. 국민학교 2학년 때 좋아했던 짝궁 박모군, 그런데 과연 그게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중학교 때 학원에서 만난 최모군, 그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고등학교 때의 이모군? 사랑은 무엇이며 첫 사랑의 기준은 무엇인지 순간 혼란스러워 '이것을 첫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으로 시작하여 내 인생에 있었던 한 남자에 대해서 주저리 주저리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리고 난 쿵린이 수위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을 그 비슷한 것으로 생각해봤다. 부모 때문에/덕분에 결혼은 했지만 이것이 사랑인가. 하지만 어쨌든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 부부란 이름으로 엮인 인연임은 확실하다. 그러다 쿵린은 같이 일하는 간호사 우만나와의 감정이 생기게 되어 우만나와 결혼을 하고자 한다. 하지만 난 린의 우만나에 대한 감정 역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아니, 일단 책 속에서 쿵린의 우만나에게 느끼는 짜릿함은 분명히 사랑인 듯 한데, 어쩌면 난생 처음 느껴보는 특별한 감정이었을 뿐, 사랑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다. 그저 결혼을 끝내버릴 탈출구 쯤으로 받아들여야 했을지도 모른다고.

우여곡절 끝에 린은 이혼을 하고 우만나와 결혼을 한다. 가족의 행복을 느끼려던 찰나, 우만나는 병에 걸려 얼마 살지 못 할 것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그리고 린은 다시 수위를 찾아 잘못을 빌고, 곧 돌아오리라는 말을 한다. 이것이 이 소설의 끝이다.

처음 기다림이란 제목을 읽었을 때 별별 생각을 다 했다. 표지에 그려진 검은색 땋은 머리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기다림이란 무엇일까. 이 제목이 의미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일단, 기다림이란 기다리는 대상에 대해 가치를 부여했을 때 성립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죽음을 앞둔 사형수도 그 죽음을 기다릴 수 있다. 시험성적을 기다리거나, 내 생일을 기다릴 수 있다. 하지만 개인에게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을 기다린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책을 읽는 중간까지만해도 기다림이란 린이 그 주체가 된다고 생각했다. 진정한 사랑에 대한 기다림이 될 수도 있고, 우만나와의 결혼을 기다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기다림은 어쩌면 수위와 딸 화의 린에 대한 기다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사실, 제목의 기다림이 정확히 누구의 무엇을 향한 기다림이라고는 확실히 대답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이니까.

처음 읽어본 중국소설(중국인이니까 중국소설이라고 해도 되려나)은 꽤나 만족스러웠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퍼스널리티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매력적인 인물들과 린의 감정묘사는 정말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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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논 - 목마른 영혼의 외침
코린네 울리히 지음, 박규호 옮김 / 지식경영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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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분명히 비틀즈 세대는 아니다. 하지만 비틀즈 노래는 몇 개 알고 있다. 중학생 때, 혹은 고등학생 때 시험이 끝나면 영어선생님들은 수업시간에 팝송을 들려주곤 했는데, 주로 비틀즈 노래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비틀즈는 정말 신화와도 같은 존재였다, 지금 너희들이 아이돌 가수에 열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당시 사람들은 비틀즈에 열광했다고 했다. 이런 망언도 기억이 난다. 존 레논이 '비틀즈는 예수만큼 유명하다'라고 했었나? 그 비슷한 말을 하여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았다는 것이 기억났다. 사실, 유명하다고 했지, 비틀즈가 신을 넘어섰다는 말은 아니니 비난까지 받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아니, 어느 정도 유명했었는데? 그건 내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우리들이 현재 아이돌 가수에 열광하는 것 처럼 그 당시 사람들은 비틀즈에 열광했었댄다. 내가 어렸을 때는 어느 순간인가, 마치 사회적인 메세지를 담은 노래를, 아주 어려운 듯 노력하는 노래를 들어야만 진정한 청소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그런 사랑 이야기보다는 사회를 향한 강한 메세지가 담긴 댄스곡을 들어야만 멋있는 청소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아이돌 가수라면 누구나 한 번쯤 어려운 사회적인 메세지를 노래했던 것 같다. 그렇게 강렬한 소리여야만, 댄스와 롹, 해비매탈 기타 등등 모든 장르를 짬뽕해놓아야만, 진정 아이돌 가수스럽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비틀즈의 노래를 들어보면 전혀 강렬하지 않았다. 영어를 못 알아들으니 단순히 멜로디만 듣고서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후에 알았지만 사회적인 메세지가 들어있지만 그 표현 방식이 내가 아는 아이돌 가수들의 댄스음악과 많은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요즘에도 비틀즈와 너바나를 비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으로써 음악의 스타일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비교를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음악이 겨우 분석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말이다.

존 레논. 존 레논하면 떠오르는 것은 많지 않다. 히피같은 머리와 자유로운 복장, 롤링스톤지 표지를 장식했던 파격적인 사진과 오노 요코... 그 정도 떠오른다. 몇 해 전인가 오노 요코전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 한 아주머니께서 하신 말씀을 들었다. 옛날에는 오노 요코 때문에 비틀즈가 해체되었다고 오노 요코를 비틀즈 팬들이 정말 미워했었다고. 그리고 오노 요코전에서 그녀의 작품들 세계에 빠진지 몇 해 되지 않아 나는 이 책을 처음 알게 되었다. 학교 내 서점에서 30% 세일해서 팔고 있어서 급하게 사서 수업시간에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일단 나는 존 레논이라 하면 그 정도 알고 있었고, 비틀즈 멤버들은 우리 시대의 아이돌 가수들과도 같은 사랑을 받았으니 늘 행복했을 것만 같았다. 또, 그들이 입는 예쁜 정장들, 알록달록한 정장들과 단정한 헤어스타일은 그들의 예쁘고 잔잔한 음악과 너무나 잘 어울린다고 늘 생각했었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것은, 아마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비틀즈는 늘 화려하지는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존 레논이란 사람도 항상 행복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늘 행복한 사람은 작은 행복은 못 느낄지도 모른다. 그토록 사랑과 평화를 외치던 존 레논에게 아픈 과거가 있었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매치가 전혀 안 되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아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그의 사상의 표현방식이 음악이 되었다는 것이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비틀즈의 음악은 물론이고, 특히 존 레논의 솔로활동 당시의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세상이 달라보일 때가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존 레논은 어렸을 때 부모가 이혼을 하고, 이모들 손에 길러지면서 어른들이 말하는 '같이 놀면 안 되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어둡고, 우울하고, 아웃사이더같은 그런 이미지의 생활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존 레논은 어려서 그림도 잘 그렸고, 글도 잘 썼댄다. 아웃사이더 존 레논과 잘 어울리는 취미생활이 아닐 수 없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앨비스의 음악을 듣고 음악에 푹 빠져 친구들을 모아 밴드 결성을 했다. 그리고 비틀즈가 결성되고,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으며, 오노 요코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곧 비틀즈는 해체되며, 존 레논은 솔로 활동을 했다. 그리고 마크 채프먼이란 사람에게 총을 맞아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다. (겨우 얼마 전에 다시 이 마크 채프먼이란 사람이 국내 포털싸이트 검색순위권에 올라왔다는 것은 비틀즈의 인기가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아주 단적인 예는 아닐까.)

일단 비틀즈가 얼마나 인기가 많았었는지는 책을 읽으면 알 수 있다. 영국에서는 물론, 유럽과 미국에서까지 인기가 있었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었다. 대영제국훈장까지 받았으니 그들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은 할 수 있다. 그리고 물론, 아시아권에도 당시 비틀즈를 좋아하는 팬들이 엄청 많았을 것이다. 간혹 비틀즈의 노래 가사에 정치적인 이야기나 사상이 담겨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런 노래 가사가 당시에 얼마나 큰 파문을 일으켰는지...

비틀즈는 참 대단하다. 그들의 음악을 들으면, 가사까지 제대로 알고 들을 때는 가슴 설레기도 하고, 때론 따뜻함도 느껴지고, 마음도 차분해지고 그러는 것 같다. 앞서 말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가끔은 마음이 편안해지고 세상마저 달라보이기도 하는 것이 비틀즈, 그리고 존 레논의 음악이다. 존 레논이 사망하기 전까지야 비틀즈가 재결합한다면? 식의 픽션이 나돌았지만, 존 레논의 죽고나서는 그런 픽션을 입 밖으로 꺼내는 사람들이 많이 줄어든 것 같다. 몇 해 전에 엠티비에서 팝 가수들이 모여 폴 매카트니와 함께 비틀즈의 노래를 다 같이 부르던 장면이 생각났다. 비틀즈는 세상에 없지만, 아직까지 가슴을 적시는 그들의 음악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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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겨야 할 때 밀지 마라 - 인생을 폼나게 살아가는 방법
가이 브라우닝 지음, 최정임 옮김 / 부표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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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겨야 할 때 밀지 마라, 이렇게만 읽고는 어떤 내용의 책인지 예측하기 쉽지 않다. 이 책의 원제목은 Never Push when it says Pull이다. 얼마나 내가 말하고 싶던 말인가. 나는 가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조금 이상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다. 공공장소에서 문을 열고 닫을 때 'pull'이라고 써 있는데 문을 밀어버리는 사람들이 못마땅했다. 나는 안 쪽에서 당기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문의 반대쪽에서 당겨버리면 굉장히 당황스럽다. 그렇다고 그 사람에게 뭐라고 화를 낼 수도 없는 일이다. 문을 열고 닫을 때, 그 때 당겨야 할 때 밀지 마라. 부제는 인생을 폼나게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달아놓았지만, 내가 볼 때는 우리가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궁금했던 것들, 누구에게 물어보기가 어려웠던 것들을 아주 친절하게 풀이해놓은 책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 모든 호기심이 해결 되었을 때 아마 인생을 폼나게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단 지은이는 가이 브라우닝이란 사람이다. 책을 살펴보니 이 사람은 영국의 가디언의 계열사인 위크엔드 잡지에 How to라는 제목의 칼럼 기사를 쓰고 있다고 했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럴 때 뭐 하는 '방법'이라는 소제목이 달린 여러 개의 방법들로 책이 구성되어있다.) 그리고 작가 겸 코미디언이라고 했다. 그래서 글이 그렇게 재미있었나보다. 다른 것은 잘 모르겠고, 일단 가이 브라우닝이란 사람은 외국인이라서 그런지 개인적인 성향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얼마 전에 개인 홈페이지에 그런 내용을 쓴 적이 있었다. 지하철에서 내릴 때 먼저 내리겠다고 나의 몸에 은근슬쩍 손을 대서 '내가 먼저 좀 나갈게'하는 의사표현을 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나는 그렇게 나의 몸에 남의 몸이 닿는 것이 너무 너무 싫었다. 내가 이런 내용의 글을 남기자, 나의 홈페이지를 찾은 사람들이 (미리 말하자면 이들은 나의 일촌이나, 블로그의 이웃도 아닌, 그저 전혀 모르는 남이었다.) '님은 참 개인적인 성향이 짙네요' 라고 써있었다. 마치 그 리플이 악플이라도 되는 듯, 나는 화가 나서 그 글을 지워버렸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리플은 전혀 악플이 아닐지도 모른다. 개인적인 성향이 짙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어떤 점에서 가이 브라우닝이란 외국인의 개인적인 성향을 느낄 수 있었느냐면, 예를 들어, 줄을 서는 방법을 말하면서 앞 사람과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 사람들이 한 쪽을 바라보고 줄을 서 있으면 나 역시 그 방향으로 서 있어야 한다고 했다. 만약, 내가 다른 방향으로 서 있으면, 예를 들어, 내 뒤에 줄을 서 있는 사람과 마주보게 되는 상황이 생긴다면 나는 그 사람의 개인적인 영역으로 넘어가게 되어, 그 사람으로 하여금 불쾌감을 준다고 했다. 그래! 그렇게 받는 불쾌감이 싫어서 나는 지하철에서 남의 몸이 나의 몸에 닿는 것을 싫어했다. 그런 식으로 지은이는 나만의 공간과 타인의 공간을 구분했다. 공간이라는 개념으로는 설명하기 힘들지 몰라도, 가끔 그런 지나친 개입이 짜증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 않은가. 

책에는 아주 일상적인 것 부터, 여행과 관광, 거짓말, 이성과 감정에 이르기 까지 수 많은 '방법'들을 소개하고 있다. 참 신기한 책이다. 예를 들어, 가끔 나는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나이를 이렇게 먹었는데, 밖에 나가면 어른인데, 정말 울고 싶을 때는 어떻게 울면 좋을까 라던지, 얄미운 그 사람을 어떻게 욕을 해야 속이 시원할까 라던지... 아니면 새로 생긴 레스토랑의 쿠폰이 생겨서 친구와 가기로 했는데, 이 쿠폰은 어떻게 사용하는건지, 그 곳에서 어떻게 주문을 해야 좋을지, 해외여행을 처음 갈 때는 공항에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기타 등등 아주 사소한 궁금증이 너무 많아 정답만을 알고 있는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쉽게 물어보기 힘든 질문이다. 요즘에야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면 친절한 네티즌들이 대답을 해주기도 하지만, 내가 필요한, 아주 이상적인 정답을 듣기는 사실 어렵다.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은 9장 거짓말과 욕지거리란 섹션이다. 거짓말하는 방법, 편집증에 걸리는 방법, 짜증스러움에 시달리는 방법, 지루한 사람이 되는 방법, 자신을 화나게 하는 방법, 비판적이고 뒤틀린 사고의 방법, 타인을 서운하게 만드는 방법, 잘난 체하는 방법, 욕설을 해대는 방법, 파괴자가 되는 방법에 대해서 나와있다. 아마 스트레스로 범벅이 된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섹션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내가 배운 것은 그 정 반대의 방법들이었다. 어쩌면 작가는 사람이 짜증스러움에 시달리기 전에, 해결책을 미리 제시해서 그 사람이 짜증스러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나 스스로 비판적이고 뒤틀린 사고를 할 수 있게 그 방법을 읽다보면 비-비판적이고 뒤틀리지-않은-사고의 방법을 배우게 되는 것 같다. 또, 타인을 서운하게 만드는 방법을 읽으면서는 내가 남을 서운하게 만들기 보다는 내가 누구에게 서운한 감정이 있었다면 그 감정이 사라져버리게 되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이런 질문은 나이가 꽤 많다고 스스로 느끼는 나로서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질문들이다. 학교 선배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인생 선배라고 믿고 싶은 사람도 별로 없고, 또 믿음직한 인생 선배에게 가서 이런 질문을 하기에 참 부끄럽기도 하다. 아마 그 선배는 내가 이런 질문을 하면 '하하하하하하' 하고 웃어버릴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런 선배의 모습에 민망해하는 내 모습을 사진 찍어 미니홈피에 올려 '아까 얘가 나한테 이런이런 질문을 하더라'고 모든 사람들에게 일러버릴지도 모른다. 아, 잘 모르겠다. 이렇게 써놓고 나니까 나는 타인에 대한 신뢰가 별로 없는 사람인 것 같기도 하다. 참 슬픈 현실이다. 흑. 지금 막 책 맨 뒷쪽을 보니 <이 책은 당신의 인생에서 사소한 사회적 창피함을 제거해 줄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 상호작용을 보다 부드럽게 만들어 주고 밤에 진땀을 흘리는 사태를 사전에 방지해 줄 것이다.>라고 써있다.

마음 먹기에 따라 세상은 달라진다고 했다. 나의 인생의 사소한 사회적 창피함들은 제거되었고, 이제 나의 사회적 상호작용은 보다 부드러워졌다고 마음 먹고 세상을 달리 봐야할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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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 노, 열정을 디자인하다 - 최초의 알파걸, 최고의 패션 패셔니스타
노라 노 지음 / 황금나침반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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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 노란 글자를 보자마자 책을 사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예전에 청소년 캠프의 지도자로 자원봉사를 했던 적이 있었다. 꽤 오랜시간 자원봉사를 하다보니 캠프를 통해 만난 아이들과 많이 친해졌었는데, 그 중에는 과거 중학생, 혹은 고등학생이었던 나와는 전혀 다른 아이들이 많았다. 나는 겨우 수능만을 바라본 그냥 그런 평범한 학생이었던 반면에 청소년 캠프를 통해 만난 아이들은 벌써 멋진 꿈을 가지고 있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그 중 한 녀석은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했다. 노라 노 선생님에 대해서 나에게 말해주며, 노라 노 디자인아카데미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노라 노가 누구인지, 디자인아카데미는 무엇인지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어린 그 녀석은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작년 어느 날, 나는 노라 노에 관한 신문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아 그 때 그 노라노!'하는 생각에 열심히 기사를 읽었고, 그제야 비로소 그 학생의 꿈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주문한 책은 표지마저 감각적이었다. 언젠가 입 생 로랑의 발칙한 루루란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검은색과 흰색, 그리고 빨간색의 발칙한 루루 책의 표지에 감탄을 했었는데 노라 노, 열정을 디자인하다 표지에도 또 감탄을 했다. 그리고 책을 받자마자 포장을 뜯었을 때, 예쁜 손수건 한 장이 발등으로 똑 떨어졌다. 알록달록 고운 이 손수건에는 노라 노란 글자가 박혀있었다. 예쁜 손수건에 감탄하며, 이 손수건을 어떻게 예쁘게 사용할 것인지 잠시 상상을 하면서 책을 읽어내려갔다.

패션. 나는 패션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아는 것이 없지만 이제 우리 생활과 꽤 밀접하게 관련되어있다고는 믿고 있다. 그리고 패션이란 단어를 좋아한다. 가끔 패션잡지책을 사보고, 내 기준에 맞춰 예쁜 옷도 골라낼 줄 안다. 그리고 나에게 어울리는 옷도 골라낼 줄 안다. 하지만 유명 디자인을 골라내지는 못한다. 어디 옷가게에서 예쁜 옷을 봤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 옷은 유명한 디자이너의 작품이고, 그 가게에서는 카피를 팔고 있었다는 것을 수도 없이 경험해봤다. 분명히 앞서 나가는 디자이너는 어디엔가 있을 것이고, 그의 추종자는 수백만명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이것도 이유가 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난 명품이 비싼 것도 이해한다. 앞서 나가는 디자이너의 작품은 가치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가 명품으로 치장할 정도로 여유로운 사람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불과 50년 전만 해도 선진국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겨우 20대인 나 조차 상상도 할 수 없다. 할아버지 말씀을 들으면, 아니, 아버지 말씀을 들을 때 마저 정말 다른 나라 이야기인 것 같다. 책의 초반부에는 노라 노가 아닌, 노명자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 상상하기 힘든 우리나라의 역사도 함께 등장한다. 하지만 그렇게 어려웠을 환경이었지만, 노명자는 헐리우드 영화도 보고, 문학작품도 읽고, 자신을 예쁘게 꾸밀 줄도 아는 예쁜 여학생이었던 것 같다. 어려웠다는 과거와는 상반된 반짝이는, 파스텔톤의 청소년기였다. 하지만 전쟁과 결혼, 그리고 그 결혼의 실패로 잠깐의 혼란기를 겪었다. 하지만 또 다시 반짝이는 파스텔톤의 시기가 뒤따랐다. 늘 노명자에게는 구원자가 있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스스로 '나는 최고의 행운아였다'라고 말을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 모든 것을 척척 해결해나갔다. 아! 진정한 알파걸이다! 그녀는 최고의 행운아가 아닌, 최고의 알파걸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앞서나간다. 그래서 생각보다 많이 힘들 것 같다. 세상은 저 멀리서 나를 욕 하고 있고 나 혼자 앞서 나간다는 것은 분명 무섭고, 조금은 도박과도 같은 일이다. 그리고 성공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 한 것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가졌다. 나 보다 더 어린 나이에 온갖 슬픔을 다 겪고 어쩜 그렇게 다부지게 다른 세계에 도전을 할 수 있었는지 참 멋있었다. 요즘에야 너도 나도 다 토익, 토플에 목숨을 걸고 있는 시대라지만, 그 때 그 어느 누가 스스로 영어공부를 해서 미국에서 주눅들지 않을 수 있었을까. 노란머리 신사의 말 한 마디에 그렇게 사랑스러운 대답을 할 수 있었을까. 그 옛날 그렇게 파격적인 디자인을 생각해낼 수 있었을까. 그리고 어쩜 그런 파격적인 디자인을 대중 앞에 소개할 수 있었을까. 대단하다. 노라 노는 참 멋진 여성이다. 난 그녀의 열정과 용기에 감탄, 또 감탄을 했다.

1995년 우리나라 1인당 GNP는 1만 달러에 이르렀다. 이제는 어려운 상황의 타인/타국에게 도움을 줄 줄 아는 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여자로써 이 사회를 산다는 것이 조금은 불공평하다고 생각을 한다. 아직도 행실이 조금이라도 올바르지 못 한 여자에게 '아이고, 여자가 그게 뭐니!'라 큰 소리치고(행실이 올바르지 못 하다는 것이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 말에서 여자란 단어는 빠져야 옳다), 교통사고 피해자나 가해자나 그 어느 쪽이 여자라면 늘 '여자는 집에서 살림이나 하지?' 하는 소리를 듣는다. 아직도 여자가 대낮에 담배를 피우면 다들 쳐다보는 세상이다. 그래서 난 노라 노 선생님이 더욱 멋지게 느껴졌다. 지금같은 시대도 아니고 그 옛날부터 세상의 쓰디 쓴 시선을 다 감수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야자와 아이의 내 남자친구 이야기란 만화책에서 힘든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 하는 미카코가 늘 태연하게 행동하는 이유에 대해서 미카코네 반 반장네 과외선생님이 했던 말이기도 하다. 하하하.

책의 3부는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다. 미스 유니버스 대회, 교황의 방한, 아시아태평양 영화제, 그리고 하와의 패션쇼 등 이런저런 행사들 가운데 노라 노가 있었다. 노라 노의 열정 가득한 디자인 덕분에 더 화려하게 빛났다.

나는 최고의 패셔니스타 노라 노 선생님으로 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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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월드 세미콜론 그래픽노블
대니얼 클로즈 글.그림, 박중서 옮김 / 세미콜론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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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판타스틱 소녀백서>의 원작 만화라니! 말로만 듣던 그 원작 만화라니! 대니얼 클로즈의 작품이라니! 책을 보자마자 얼른 사다가 근처 까페에 앉아 쓰디 쓴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가끔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국민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동안 착하고 순종적이게 살아왔다. 교과서에서는 늘 내가 그런 사회인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늘 순조롭게 잘 돌아가는 사회와, 서로 돕고, 웃으며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묘사되어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막상 사회는 내가 교과서를 통해 배웠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방황하고 좌절하게 된다고. 그렇다고 생각을 했다.

몇 해 전에 임순례 감독의 <세 친구>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사실 정확한 내용은 자세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등장인물 3명이 사회에서 고립된(?), 인정받을 수 없는 점이 있다는 것 때문에 느끼는 소외감이 엄청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그 세 친구들의 이름이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한 번도 거론되지 않았다는 점, 이름이 없이도 스토리는 줄줄 잘 흘러갔다는 점이 신기하기도 했고, 어딘가 모르게 소름끼지치도 했다. 하지만 그 때는 잘 몰랐다. 영화를 본지 몇 해가 지난 지금은 조금씩 그것이 뭔지 알 것 같다. 그 사회에 대한 불안과 환멸, 그리고 느끼는 감정들을 조금씩 알 것 같다.

취업을 앞두고 어디가서 내 이야기를 할 때 최대한 나를 사회에 적합한 인물로 꾸며야만 했다. 이력서에는 나의 약점 중에 가장 보편적인 약점을 조금 언급하고, 내가 왜 이 사회에 필요한 인간인가, 얼마나 대단한 인간인가,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다만을 길게 언급하고 있다. 쉽게 싫증을 내고, 짜증을 내고, 버스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싸우려고 드는 나 자신을 그 정반대로 꾸며야만 사회에서 인정 받을 수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딘가 모순이었다. 분명히 사회는 그렇게 돌아가지 않을텐데 내 눈에 비춰진 그 사회 속에 정상적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발버둥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 사회가 얼마나 무서운지, 사람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다시금 느꼈다.

아메리카노, 내 입맛에 맞지도 않은 이 음료를 마시면서 읽은 <고스트월드>는 끊임없이 나의 웃음을 유발했다. 어딘가 동경했던 타국의 문화에 대한 소개(등장인물들의 대화 속에 이해하기 어려운 그들만의 문화적인 요소가 나왔을 때 친절하게도 하단에 설명을 해준다)와 아기자기하지 않은 평범한, 그리고 내 기준으로 엄청나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그림들과, 알록달록과는 정반대인 색상(검정, 초록, 흰색이 책의 전부다) 모두 나를 자극했다.

착한 나는 절대 사람들 앞에서 입 밖에 낼 수 없을 거친말들도 거침없이 내뱉는 레베카와 이니드를 보면서 제대로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다. 명동 한복판에 자기 멋대로 옷을 입은 사람이 서있다고 생각하자. 가령, 진한 핑크색 머리에 노란색 티셔츠, 빨간 미니스커트에 초록색과 검정색의 줄무늬 타이츠, 그리고 투박한 부츠, 거기에 엄청난 크기의 트롤리 가방을 끌고 있다고 치자. 옆에는 주인을 잘 따르는 달마티안 한 마리를 두고서. 분명히 군중들은 그 사람에게 주목을 할 것이다. 단지, 그 사람이 자기 멋대로 옷을 입었기 때문에? 우리와는 다른 모습에 신기해서 쳐다보는 이유도 있겠지만, 어쩌면 나는 저렇게 입을 수 없는데, 저 사람은 어떤 용기에 저렇게 입고 명동 한 복판에 서 있을까? 하는 생각에, 어쩌면 조금은 부러움에, 어쩌면 내가 저 사람이라면? 사람들 시선 신경 안 쓰는 저런 용기있는 사람이라면? 하는 상상 때문에 바라볼 수도 있다.

아주 작은 예로, 나는 남자친구에 대한 불만을 남자친구에게 쉽게 말을 하지 않는다. 한 100번 쯤 불만이 쌓이면 폭발한다. 덕분에 내가 생각해도 나는 성격이 좋지 않다는 것을 실감할 때가 종종있다. 만화책에서처럼 쉽게 '나한테 왜 그래? 왜 늘 내가 미워 죽겠다는 듯 그딴 식으로 말을 하는데?' 하고 물을 수 있는 용기가 내게 있다면 좋겠다. 내 자신이 싫다고 아기처럼 침대에서 엉엉 울어봤으면 좋겠다. 회사나 학교 선배라는 사람의 비열한 삶을 어딘가에게다 폭로하고 싶었으면 좋겠다. 비디오 가게에 들어가서 아무렇지도 않게 야한 비디오를 빌려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나열하고 있으니 나는 내 마음대로 행동하기에는 솔직하지 못 한 사람인 것 같다. 내가 싫어하는 '가식적인 인간'이 바로 나인 것이다.

대니얼 클로즈가 이 만화를 통해서 어떤 메세지를 전달하려고 하는지 다는 이해할 수 없다. 아마 나는 100중에 10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 했을 것 같다. 그저 내 감정에 치우쳐서, 내 기준대로 해석했으니. 책 표지에 <판타스틱 소녀백서>의 원작만화라는 말과 함께 이런 말이 써있다. 따분하고 찌질한 세상, 엉뚱 소녀들의 뻔뻔한 놀이. 정말 살고 있는 세상이 따분하고 찌질하다면 이 엉뚱 소녀들의 뻔뻔한 놀이에 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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