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 월드 ㅣ 세미콜론 그래픽노블
대니얼 클로즈 글.그림, 박중서 옮김 / 세미콜론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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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판타스틱 소녀백서>의 원작 만화라니! 말로만 듣던 그 원작 만화라니! 대니얼 클로즈의 작품이라니! 책을 보자마자 얼른 사다가 근처 까페에 앉아 쓰디 쓴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가끔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국민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동안 착하고 순종적이게 살아왔다. 교과서에서는 늘 내가 그런 사회인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늘 순조롭게 잘 돌아가는 사회와, 서로 돕고, 웃으며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묘사되어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막상 사회는 내가 교과서를 통해 배웠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방황하고 좌절하게 된다고. 그렇다고 생각을 했다.

몇 해 전에 임순례 감독의 <세 친구>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사실 정확한 내용은 자세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등장인물 3명이 사회에서 고립된(?), 인정받을 수 없는 점이 있다는 것 때문에 느끼는 소외감이 엄청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그 세 친구들의 이름이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한 번도 거론되지 않았다는 점, 이름이 없이도 스토리는 줄줄 잘 흘러갔다는 점이 신기하기도 했고, 어딘가 모르게 소름끼지치도 했다. 하지만 그 때는 잘 몰랐다. 영화를 본지 몇 해가 지난 지금은 조금씩 그것이 뭔지 알 것 같다. 그 사회에 대한 불안과 환멸, 그리고 느끼는 감정들을 조금씩 알 것 같다.

취업을 앞두고 어디가서 내 이야기를 할 때 최대한 나를 사회에 적합한 인물로 꾸며야만 했다. 이력서에는 나의 약점 중에 가장 보편적인 약점을 조금 언급하고, 내가 왜 이 사회에 필요한 인간인가, 얼마나 대단한 인간인가,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다만을 길게 언급하고 있다. 쉽게 싫증을 내고, 짜증을 내고, 버스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싸우려고 드는 나 자신을 그 정반대로 꾸며야만 사회에서 인정 받을 수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딘가 모순이었다. 분명히 사회는 그렇게 돌아가지 않을텐데 내 눈에 비춰진 그 사회 속에 정상적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발버둥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 사회가 얼마나 무서운지, 사람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다시금 느꼈다.

아메리카노, 내 입맛에 맞지도 않은 이 음료를 마시면서 읽은 <고스트월드>는 끊임없이 나의 웃음을 유발했다. 어딘가 동경했던 타국의 문화에 대한 소개(등장인물들의 대화 속에 이해하기 어려운 그들만의 문화적인 요소가 나왔을 때 친절하게도 하단에 설명을 해준다)와 아기자기하지 않은 평범한, 그리고 내 기준으로 엄청나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그림들과, 알록달록과는 정반대인 색상(검정, 초록, 흰색이 책의 전부다) 모두 나를 자극했다.

착한 나는 절대 사람들 앞에서 입 밖에 낼 수 없을 거친말들도 거침없이 내뱉는 레베카와 이니드를 보면서 제대로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다. 명동 한복판에 자기 멋대로 옷을 입은 사람이 서있다고 생각하자. 가령, 진한 핑크색 머리에 노란색 티셔츠, 빨간 미니스커트에 초록색과 검정색의 줄무늬 타이츠, 그리고 투박한 부츠, 거기에 엄청난 크기의 트롤리 가방을 끌고 있다고 치자. 옆에는 주인을 잘 따르는 달마티안 한 마리를 두고서. 분명히 군중들은 그 사람에게 주목을 할 것이다. 단지, 그 사람이 자기 멋대로 옷을 입었기 때문에? 우리와는 다른 모습에 신기해서 쳐다보는 이유도 있겠지만, 어쩌면 나는 저렇게 입을 수 없는데, 저 사람은 어떤 용기에 저렇게 입고 명동 한 복판에 서 있을까? 하는 생각에, 어쩌면 조금은 부러움에, 어쩌면 내가 저 사람이라면? 사람들 시선 신경 안 쓰는 저런 용기있는 사람이라면? 하는 상상 때문에 바라볼 수도 있다.

아주 작은 예로, 나는 남자친구에 대한 불만을 남자친구에게 쉽게 말을 하지 않는다. 한 100번 쯤 불만이 쌓이면 폭발한다. 덕분에 내가 생각해도 나는 성격이 좋지 않다는 것을 실감할 때가 종종있다. 만화책에서처럼 쉽게 '나한테 왜 그래? 왜 늘 내가 미워 죽겠다는 듯 그딴 식으로 말을 하는데?' 하고 물을 수 있는 용기가 내게 있다면 좋겠다. 내 자신이 싫다고 아기처럼 침대에서 엉엉 울어봤으면 좋겠다. 회사나 학교 선배라는 사람의 비열한 삶을 어딘가에게다 폭로하고 싶었으면 좋겠다. 비디오 가게에 들어가서 아무렇지도 않게 야한 비디오를 빌려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나열하고 있으니 나는 내 마음대로 행동하기에는 솔직하지 못 한 사람인 것 같다. 내가 싫어하는 '가식적인 인간'이 바로 나인 것이다.

대니얼 클로즈가 이 만화를 통해서 어떤 메세지를 전달하려고 하는지 다는 이해할 수 없다. 아마 나는 100중에 10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 했을 것 같다. 그저 내 감정에 치우쳐서, 내 기준대로 해석했으니. 책 표지에 <판타스틱 소녀백서>의 원작만화라는 말과 함께 이런 말이 써있다. 따분하고 찌질한 세상, 엉뚱 소녀들의 뻔뻔한 놀이. 정말 살고 있는 세상이 따분하고 찌질하다면 이 엉뚱 소녀들의 뻔뻔한 놀이에 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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