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라 노란 글자를 보자마자 책을 사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예전에 청소년 캠프의 지도자로 자원봉사를 했던 적이 있었다. 꽤 오랜시간 자원봉사를 하다보니 캠프를 통해 만난 아이들과 많이 친해졌었는데, 그 중에는 과거 중학생, 혹은 고등학생이었던 나와는 전혀 다른 아이들이 많았다. 나는 겨우 수능만을 바라본 그냥 그런 평범한 학생이었던 반면에 청소년 캠프를 통해 만난 아이들은 벌써 멋진 꿈을 가지고 있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그 중 한 녀석은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했다. 노라 노 선생님에 대해서 나에게 말해주며, 노라 노 디자인아카데미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노라 노가 누구인지, 디자인아카데미는 무엇인지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어린 그 녀석은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작년 어느 날, 나는 노라 노에 관한 신문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아 그 때 그 노라노!'하는 생각에 열심히 기사를 읽었고, 그제야 비로소 그 학생의 꿈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주문한 책은 표지마저 감각적이었다. 언젠가 입 생 로랑의 발칙한 루루란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검은색과 흰색, 그리고 빨간색의 발칙한 루루 책의 표지에 감탄을 했었는데 노라 노, 열정을 디자인하다 표지에도 또 감탄을 했다. 그리고 책을 받자마자 포장을 뜯었을 때, 예쁜 손수건 한 장이 발등으로 똑 떨어졌다. 알록달록 고운 이 손수건에는 노라 노란 글자가 박혀있었다. 예쁜 손수건에 감탄하며, 이 손수건을 어떻게 예쁘게 사용할 것인지 잠시 상상을 하면서 책을 읽어내려갔다.
패션. 나는 패션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아는 것이 없지만 이제 우리 생활과 꽤 밀접하게 관련되어있다고는 믿고 있다. 그리고 패션이란 단어를 좋아한다. 가끔 패션잡지책을 사보고, 내 기준에 맞춰 예쁜 옷도 골라낼 줄 안다. 그리고 나에게 어울리는 옷도 골라낼 줄 안다. 하지만 유명 디자인을 골라내지는 못한다. 어디 옷가게에서 예쁜 옷을 봤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 옷은 유명한 디자이너의 작품이고, 그 가게에서는 카피를 팔고 있었다는 것을 수도 없이 경험해봤다. 분명히 앞서 나가는 디자이너는 어디엔가 있을 것이고, 그의 추종자는 수백만명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이것도 이유가 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난 명품이 비싼 것도 이해한다. 앞서 나가는 디자이너의 작품은 가치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가 명품으로 치장할 정도로 여유로운 사람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불과 50년 전만 해도 선진국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겨우 20대인 나 조차 상상도 할 수 없다. 할아버지 말씀을 들으면, 아니, 아버지 말씀을 들을 때 마저 정말 다른 나라 이야기인 것 같다. 책의 초반부에는 노라 노가 아닌, 노명자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 상상하기 힘든 우리나라의 역사도 함께 등장한다. 하지만 그렇게 어려웠을 환경이었지만, 노명자는 헐리우드 영화도 보고, 문학작품도 읽고, 자신을 예쁘게 꾸밀 줄도 아는 예쁜 여학생이었던 것 같다. 어려웠다는 과거와는 상반된 반짝이는, 파스텔톤의 청소년기였다. 하지만 전쟁과 결혼, 그리고 그 결혼의 실패로 잠깐의 혼란기를 겪었다. 하지만 또 다시 반짝이는 파스텔톤의 시기가 뒤따랐다. 늘 노명자에게는 구원자가 있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스스로 '나는 최고의 행운아였다'라고 말을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 모든 것을 척척 해결해나갔다. 아! 진정한 알파걸이다! 그녀는 최고의 행운아가 아닌, 최고의 알파걸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앞서나간다. 그래서 생각보다 많이 힘들 것 같다. 세상은 저 멀리서 나를 욕 하고 있고 나 혼자 앞서 나간다는 것은 분명 무섭고, 조금은 도박과도 같은 일이다. 그리고 성공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 한 것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가졌다. 나 보다 더 어린 나이에 온갖 슬픔을 다 겪고 어쩜 그렇게 다부지게 다른 세계에 도전을 할 수 있었는지 참 멋있었다. 요즘에야 너도 나도 다 토익, 토플에 목숨을 걸고 있는 시대라지만, 그 때 그 어느 누가 스스로 영어공부를 해서 미국에서 주눅들지 않을 수 있었을까. 노란머리 신사의 말 한 마디에 그렇게 사랑스러운 대답을 할 수 있었을까. 그 옛날 그렇게 파격적인 디자인을 생각해낼 수 있었을까. 그리고 어쩜 그런 파격적인 디자인을 대중 앞에 소개할 수 있었을까. 대단하다. 노라 노는 참 멋진 여성이다. 난 그녀의 열정과 용기에 감탄, 또 감탄을 했다.
1995년 우리나라 1인당 GNP는 1만 달러에 이르렀다. 이제는 어려운 상황의 타인/타국에게 도움을 줄 줄 아는 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여자로써 이 사회를 산다는 것이 조금은 불공평하다고 생각을 한다. 아직도 행실이 조금이라도 올바르지 못 한 여자에게 '아이고, 여자가 그게 뭐니!'라 큰 소리치고(행실이 올바르지 못 하다는 것이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 말에서 여자란 단어는 빠져야 옳다), 교통사고 피해자나 가해자나 그 어느 쪽이 여자라면 늘 '여자는 집에서 살림이나 하지?' 하는 소리를 듣는다. 아직도 여자가 대낮에 담배를 피우면 다들 쳐다보는 세상이다. 그래서 난 노라 노 선생님이 더욱 멋지게 느껴졌다. 지금같은 시대도 아니고 그 옛날부터 세상의 쓰디 쓴 시선을 다 감수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야자와 아이의 내 남자친구 이야기란 만화책에서 힘든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 하는 미카코가 늘 태연하게 행동하는 이유에 대해서 미카코네 반 반장네 과외선생님이 했던 말이기도 하다. 하하하.
책의 3부는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다. 미스 유니버스 대회, 교황의 방한, 아시아태평양 영화제, 그리고 하와의 패션쇼 등 이런저런 행사들 가운데 노라 노가 있었다. 노라 노의 열정 가득한 디자인 덕분에 더 화려하게 빛났다.
나는 최고의 패셔니스타 노라 노 선생님으로 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