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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하 진 지음, 김연수 옮김 / 시공사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사실 중국소설은 태어나서 처음 읽는 것 같다. 역사에 유독 약한 나는 읽기 전 표지에 써있는 <문화혁명기>란 단어를 보고 겁을 먹었다. 분명히 딱딱한 내용일 것이다, 정치적인 이야기, 사회적인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막연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당시 나는 이 책에 대해서 어떤 것도 들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떠한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딱딱하지도, 지루하지도 않았고, 역사에 유독 약한 나에게 너무 어렵지도 않았다.
주인공 군의관인 쿵린은 부모에 의해 류수위란 여자와 사랑없는 결혼을 하게 된다. 사랑이 없어도 결혼 자체로 충분히 로맨틱하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사랑없는 결혼과 쿵린의 류수위에 대한 감정묘사는 그저 아무 냄새 나지 않는 플라스틱과도 같았다. 아무 흥미도 없고, 서로 교류도 없고, 죄송한 말이지만,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몇 층, 몇 호에 살고 있는 인사 조차 하지 않는 아무개씨와 나와의 관계와도 같았다고나 할까.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혹은 엠티를 갔을 때 자주 했던 게임 중에 truth or dare란 개임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그 땐 왜 그렇게 재미있었는지. 처음 그 게임 도중 첫 사랑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그 짧은 시간에 나의 첫 사랑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다. 국민학교 2학년 때 좋아했던 짝궁 박모군, 그런데 과연 그게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중학교 때 학원에서 만난 최모군, 그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고등학교 때의 이모군? 사랑은 무엇이며 첫 사랑의 기준은 무엇인지 순간 혼란스러워 '이것을 첫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으로 시작하여 내 인생에 있었던 한 남자에 대해서 주저리 주저리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리고 난 쿵린이 수위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을 그 비슷한 것으로 생각해봤다. 부모 때문에/덕분에 결혼은 했지만 이것이 사랑인가. 하지만 어쨌든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 부부란 이름으로 엮인 인연임은 확실하다. 그러다 쿵린은 같이 일하는 간호사 우만나와의 감정이 생기게 되어 우만나와 결혼을 하고자 한다. 하지만 난 린의 우만나에 대한 감정 역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아니, 일단 책 속에서 쿵린의 우만나에게 느끼는 짜릿함은 분명히 사랑인 듯 한데, 어쩌면 난생 처음 느껴보는 특별한 감정이었을 뿐, 사랑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다. 그저 결혼을 끝내버릴 탈출구 쯤으로 받아들여야 했을지도 모른다고.
우여곡절 끝에 린은 이혼을 하고 우만나와 결혼을 한다. 가족의 행복을 느끼려던 찰나, 우만나는 병에 걸려 얼마 살지 못 할 것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그리고 린은 다시 수위를 찾아 잘못을 빌고, 곧 돌아오리라는 말을 한다. 이것이 이 소설의 끝이다.
처음 기다림이란 제목을 읽었을 때 별별 생각을 다 했다. 표지에 그려진 검은색 땋은 머리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기다림이란 무엇일까. 이 제목이 의미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일단, 기다림이란 기다리는 대상에 대해 가치를 부여했을 때 성립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죽음을 앞둔 사형수도 그 죽음을 기다릴 수 있다. 시험성적을 기다리거나, 내 생일을 기다릴 수 있다. 하지만 개인에게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을 기다린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책을 읽는 중간까지만해도 기다림이란 린이 그 주체가 된다고 생각했다. 진정한 사랑에 대한 기다림이 될 수도 있고, 우만나와의 결혼을 기다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기다림은 어쩌면 수위와 딸 화의 린에 대한 기다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사실, 제목의 기다림이 정확히 누구의 무엇을 향한 기다림이라고는 확실히 대답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이니까.
처음 읽어본 중국소설(중국인이니까 중국소설이라고 해도 되려나)은 꽤나 만족스러웠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퍼스널리티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매력적인 인물들과 린의 감정묘사는 정말 최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