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당겨야 할 때 밀지 마라 - 인생을 폼나게 살아가는 방법
가이 브라우닝 지음, 최정임 옮김 / 부표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당겨야 할 때 밀지 마라, 이렇게만 읽고는 어떤 내용의 책인지 예측하기 쉽지 않다. 이 책의 원제목은 Never Push when it says Pull이다. 얼마나 내가 말하고 싶던 말인가. 나는 가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조금 이상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다. 공공장소에서 문을 열고 닫을 때 'pull'이라고 써 있는데 문을 밀어버리는 사람들이 못마땅했다. 나는 안 쪽에서 당기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문의 반대쪽에서 당겨버리면 굉장히 당황스럽다. 그렇다고 그 사람에게 뭐라고 화를 낼 수도 없는 일이다. 문을 열고 닫을 때, 그 때 당겨야 할 때 밀지 마라. 부제는 인생을 폼나게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달아놓았지만, 내가 볼 때는 우리가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궁금했던 것들, 누구에게 물어보기가 어려웠던 것들을 아주 친절하게 풀이해놓은 책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 모든 호기심이 해결 되었을 때 아마 인생을 폼나게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단 지은이는 가이 브라우닝이란 사람이다. 책을 살펴보니 이 사람은 영국의 가디언의 계열사인 위크엔드 잡지에 How to라는 제목의 칼럼 기사를 쓰고 있다고 했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럴 때 뭐 하는 '방법'이라는 소제목이 달린 여러 개의 방법들로 책이 구성되어있다.) 그리고 작가 겸 코미디언이라고 했다. 그래서 글이 그렇게 재미있었나보다. 다른 것은 잘 모르겠고, 일단 가이 브라우닝이란 사람은 외국인이라서 그런지 개인적인 성향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얼마 전에 개인 홈페이지에 그런 내용을 쓴 적이 있었다. 지하철에서 내릴 때 먼저 내리겠다고 나의 몸에 은근슬쩍 손을 대서 '내가 먼저 좀 나갈게'하는 의사표현을 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나는 그렇게 나의 몸에 남의 몸이 닿는 것이 너무 너무 싫었다. 내가 이런 내용의 글을 남기자, 나의 홈페이지를 찾은 사람들이 (미리 말하자면 이들은 나의 일촌이나, 블로그의 이웃도 아닌, 그저 전혀 모르는 남이었다.) '님은 참 개인적인 성향이 짙네요' 라고 써있었다. 마치 그 리플이 악플이라도 되는 듯, 나는 화가 나서 그 글을 지워버렸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리플은 전혀 악플이 아닐지도 모른다. 개인적인 성향이 짙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어떤 점에서 가이 브라우닝이란 외국인의 개인적인 성향을 느낄 수 있었느냐면, 예를 들어, 줄을 서는 방법을 말하면서 앞 사람과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 사람들이 한 쪽을 바라보고 줄을 서 있으면 나 역시 그 방향으로 서 있어야 한다고 했다. 만약, 내가 다른 방향으로 서 있으면, 예를 들어, 내 뒤에 줄을 서 있는 사람과 마주보게 되는 상황이 생긴다면 나는 그 사람의 개인적인 영역으로 넘어가게 되어, 그 사람으로 하여금 불쾌감을 준다고 했다. 그래! 그렇게 받는 불쾌감이 싫어서 나는 지하철에서 남의 몸이 나의 몸에 닿는 것을 싫어했다. 그런 식으로 지은이는 나만의 공간과 타인의 공간을 구분했다. 공간이라는 개념으로는 설명하기 힘들지 몰라도, 가끔 그런 지나친 개입이 짜증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 않은가.
책에는 아주 일상적인 것 부터, 여행과 관광, 거짓말, 이성과 감정에 이르기 까지 수 많은 '방법'들을 소개하고 있다. 참 신기한 책이다. 예를 들어, 가끔 나는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나이를 이렇게 먹었는데, 밖에 나가면 어른인데, 정말 울고 싶을 때는 어떻게 울면 좋을까 라던지, 얄미운 그 사람을 어떻게 욕을 해야 속이 시원할까 라던지... 아니면 새로 생긴 레스토랑의 쿠폰이 생겨서 친구와 가기로 했는데, 이 쿠폰은 어떻게 사용하는건지, 그 곳에서 어떻게 주문을 해야 좋을지, 해외여행을 처음 갈 때는 공항에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기타 등등 아주 사소한 궁금증이 너무 많아 정답만을 알고 있는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쉽게 물어보기 힘든 질문이다. 요즘에야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면 친절한 네티즌들이 대답을 해주기도 하지만, 내가 필요한, 아주 이상적인 정답을 듣기는 사실 어렵다.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은 9장 거짓말과 욕지거리란 섹션이다. 거짓말하는 방법, 편집증에 걸리는 방법, 짜증스러움에 시달리는 방법, 지루한 사람이 되는 방법, 자신을 화나게 하는 방법, 비판적이고 뒤틀린 사고의 방법, 타인을 서운하게 만드는 방법, 잘난 체하는 방법, 욕설을 해대는 방법, 파괴자가 되는 방법에 대해서 나와있다. 아마 스트레스로 범벅이 된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섹션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내가 배운 것은 그 정 반대의 방법들이었다. 어쩌면 작가는 사람이 짜증스러움에 시달리기 전에, 해결책을 미리 제시해서 그 사람이 짜증스러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나 스스로 비판적이고 뒤틀린 사고를 할 수 있게 그 방법을 읽다보면 비-비판적이고 뒤틀리지-않은-사고의 방법을 배우게 되는 것 같다. 또, 타인을 서운하게 만드는 방법을 읽으면서는 내가 남을 서운하게 만들기 보다는 내가 누구에게 서운한 감정이 있었다면 그 감정이 사라져버리게 되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이런 질문은 나이가 꽤 많다고 스스로 느끼는 나로서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질문들이다. 학교 선배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인생 선배라고 믿고 싶은 사람도 별로 없고, 또 믿음직한 인생 선배에게 가서 이런 질문을 하기에 참 부끄럽기도 하다. 아마 그 선배는 내가 이런 질문을 하면 '하하하하하하' 하고 웃어버릴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런 선배의 모습에 민망해하는 내 모습을 사진 찍어 미니홈피에 올려 '아까 얘가 나한테 이런이런 질문을 하더라'고 모든 사람들에게 일러버릴지도 모른다. 아, 잘 모르겠다. 이렇게 써놓고 나니까 나는 타인에 대한 신뢰가 별로 없는 사람인 것 같기도 하다. 참 슬픈 현실이다. 흑. 지금 막 책 맨 뒷쪽을 보니 <이 책은 당신의 인생에서 사소한 사회적 창피함을 제거해 줄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 상호작용을 보다 부드럽게 만들어 주고 밤에 진땀을 흘리는 사태를 사전에 방지해 줄 것이다.>라고 써있다.
마음 먹기에 따라 세상은 달라진다고 했다. 나의 인생의 사소한 사회적 창피함들은 제거되었고, 이제 나의 사회적 상호작용은 보다 부드러워졌다고 마음 먹고 세상을 달리 봐야할 때가 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