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석의 여자 - 뮤리얼 스파크 중단편선
뮤리얼 스파크 지음, 이연지 옮김 / 문예출판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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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석에 앉은 여자는 당차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맘대로 갈 거야. ’ 선언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책에 등장하는 리제 라는 여자는 뭔가 이상하다. 신경질적이고 앞뒤가 맞지 않는데.. 작가는 리제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운전석의 여자>는 영국의 작가 뮤리얼 스파크의 중단편집이다. 표제작을 비롯해 11편의 중단편이 실렸다. <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소개글 읽고 이 책이 끌렸다. 미스터리한 이야기라 궁금했다. 

한 작가의 단편집은 단편들이 비슷한 얘기가 많아 헷갈리기도 하고 지루할 수 있는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 하나 다 특색있고 재밌었다. 


표제작을 얘기하자면,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 독자의 예상을 빗나가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처음에 리제가 옷 사는 장면을 보면 리제의 성격이 드러난다. 그리고 다 읽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주인공이 왜 그랬는지, 짐작이 가며 무릎을 딱 치게 한다. 신경질적이고 거짓말도 하고 무엇을 하는지 종잡을 수 없는 사람. 여행지에 가서도 그는 대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점점 미궁에 빠져간다. 심지어 초반에 이 여성이 죽는다는 걸 알려주기에 우리는 리제에게 접근하는 모든 남성들을 의심하며 볼 수 밖에 없다. 결국 우리의 모든 예상은 맞지 않고. 리제를 오해했다는 걸 알게 된다. 


주도권은 리제가 쥐고 있었다는 사실을 마지막에야 깨달으며 우리는 이 소설을 처음부터 되짚어본다. 서늘하면서 예리한 묘사. 대사도 곱씹어보며 의미를 추측해보는 재미가 있다. 우리는 여자의 마지막 말에 놀라지만 살면서 누군가를 다 알 수 있을까. 서로 잘 모르는 게 사실이지 않은가. 요즘 읽은 소설 중에 가장 인상깊은 캐릭터라. 이 작가를 알게 돼서 기쁘고, 다른 작품들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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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 습지 - 어느 유곽의 110년
이수영 지음 / 학고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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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페이지가 안되는 작은 책. 2023년은 이 책을 읽은 해로 기억할 거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고 그만큼 중요한 책이다. 


<분홍 습지>는 대구 성매매집결지의 110년 역사를 담았다. 미술 작가인 이수영은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대구를 기록한 두 권 의 책 <대구이야기> 와 <조선 대구일반>을 다시 쓴다.  작가 본인의 작품들과 대구 자갈마당 (성매매집결지)의 사진들도 같이 보여준다. 1부에서 2부로 넘어갈 때 1909년 부터 2019년까지 연도를 쭉 열거한다. 그 시대를 대표하는 사진들 (군사정권, 민주화 운동, 2002월드컵, 세월호 사고) 과 같이 나오는데 가슴이 콱 막힌듯 답답했다. 


자그만치 110년 동안 꺼지지 않았다. 2019년 철거할 때 까지 분홍 불빛은 꺼지지 않았다. 


그리고 2부에서는 그곳에서 9년 동안 일했던 연두의 목소리를 듣는다. 어렴풋이 알았던 용어들을 마주하고 남자들이 얼마나 많이 오고 상대했는지 그런 얘기도 맘이 무겁지만 탈성매매를 하고 한 때 자신의 터전이었던 곳에서 외면받았다는 얘기도 마음 아팠다. 배신자로 생각한다는 것. 


2019년 대구에서 머물렀던 6개월의 활동을 바탕으로 이 책을 쓰기 시작한 작가는 여성인권센터 활동가 들과 다니며 그곳에 가면 주는 복숭아 넥타 음료수를 얘기한다. 이젠 ‘복숭아 넥타에도 고통을 느낄 줄 알게 되었다’고. 


우리는 그 분홍 불빛이 110년동안 꺼지지 않았다는 걸 외면하고 살았다. 그 불빛은 대구 뿐만 아니라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수많은 곳에서 빛났다.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나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책의 마지막 문장 ‘공감은 힘이 세다’ 는 걸 느꼈다. 


습지에는 아파트가 세워졌지만 묻히지 않도록 다시 쓰고 알려줘서 작가와 출판사 목소리를 들려준 분들에게 감사하다. 불이 꺼지지 않았던 건 누구 때문이었는지. 다들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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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말고 모모
로진느 마이올로 지음, 변유선 옮김 / 사계절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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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고 키우며 다른 사람들이 궁금했다. 아직은 아이를 돌보는게 먼저라 현실에서 사람들을 많이 못 만나니, 대신 책으로 사람들을 만난다. 내가 공부하면 아이에게 좀 더 넓은 시야를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 책도 궁금했다. 부모가 아닌, 엄마 둘의 이야기. 


<부모 말고 모모>는 프랑스 법률 전문 기자인 로진느가 나탈리를 만나기까지 과정과 2014년에 딸 쥘리에트를 낳고 둘째를 임신하기 노력과 모든 여성에게 보조생식술을 법으로 시행하자는 주장을 담고 있다. 


저자의 사적이고 내밀한 이야기가 나와서 처음엔 놀랐는데, 저자의 개인적인 이야기로 시작해 후반부에 프랑스 보조생식술 법 개정안 이야기로 넓혀가는 구성이 좋았다. 


프랑스는 자유의 나라라고 단순히 생각해서 당연히 모든 여성이 보호받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딸을 키우는 일상과 둘째를 만나기 위해 스페인으로 건너가 시술을 받는 장면이 교차되어 나온다. 법으로 보호받지 못하고 어렵게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 동성 부부들 모임에서 들은 병원이 아닌 집에서 시술을 시도하는 이야기에 놀라고 안타까웠다. 


이렇게 과정을 기록하는 책이 나오는 건 의미가 있다. 이 책이 출간되고 난 뒤, 프랑스에서는 개정안이 발의되어 모든 여성이 보조생식술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를 생각하면 한숨이 나오지만, 이 책을 통해 프랑스에서 이뤄진 과정들을 보니, 결국 모두가 동의하는 때라는 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인권은 바로 지금부터 당장 해야 할 일이다. 


책에 나온 딸 쥘리에트는 옆집 아이가 “왜 넌 엄마가 둘이야?” 라는 말에 이렇게 대답한다. 너는 왜 아빠도 있고, 새아빠도 있냐고. 그건 이상한게 아니라고. 사람들은 저마다 다르고 빛나니까 그래서 더 아름다운 걸. 우리 모두 알아야 한다. 


책을 읽으며 같은 출판사 사계절에서 나온 비 온 뒤 맑음을 떠올렸다. 타이완에서 이뤄진 동성결혼 법제화 이야기를 다룬 책을 읽으며 감동받았다. 우리나라도 다른 이들에게 그런 희망을 줄 수 있길. 시간이 오래 걸려도 결국 올 일은 올 거라는 걸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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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잃어버린 사람들 - 시간 빈곤 시대, 빼앗긴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법
테레사 뷔커 지음, 김현정 옮김 / 원더박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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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들기 전, 하루를 돌아보면 오늘 끝내지 못한 일, 하지 못한 일, 미룬 일들이 파도처럼 밀려와 모래처럼 쌓인다. ‘홀가분해’ 라는 마음으로 잠들어 본 게 언제일까? 아이를 낳기 전엔 어쩌다 하루, 맘이 가벼운 날이 있었는데 이젠 그런 날이 없다. 항상 일은 쌓이고 그걸 겨우 겨우 쳐내고 사는 기분이다. 옛날 보다 기술, 과학도 발전하고 살기 좋아졌다는데, 현대인은 더 바쁘고, 시간이 없는 건 왜일까? 무엇이 문제일까? 


<시간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독일의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우리가 왜 시간이 부족한지 그 원인과 우리가 시간을 자유롭게 누리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근거를 들어 주장하는 책이다. 노동, 돌봄, 자유 시간, 어린이, 정치 등으로 나눠 살펴보고 독일의 현실을 보여주는 관련 자료와 학자들의 주장도 나와서 찬찬히 읽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그만큼 공부하고 느낀 점도 많았다. 


우리는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게 좋은 거라고 생각한다. 바쁘니, 청소도 돈을 써서 하고 밥도 빨리 먹고 미라클 모닝을 하며 잠을 줄인다. 개인이 노-력하면 잠도 줄이고 자기계발하고 일도 열심히 하면 성공할 거라고. 하지만 저자는 그건 잘못되었다고 아니라고 말한다. 우린 그와 반대로 일하는 시간은 줄이고 서로를 돌보며 자유 시간과 정치에 참여하는 시간도 필요하다고. 


아마 대부분은 이게 가능한 일이냐고 반문할 거다. 하지만 저자의 글에 따르며 독일에서 제대로 일자리를 분배한다면 일자리는 늘리며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핵개인의 시대라는 말도 나오지만 사실, 혼자서 산다는 건 불가능하다. 혼자서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봐라. 나에게 필요한 물건을 배달해주고 인터넷이 돌아가고, 공간을 제공해주는 곳도. 나 혼자 할 수 있는게 아니다. 우리는 청소나 기본적인 일들을 대우하지 않지만 그런 일들이 며칠만 멈춰도 우리나라도 멈추는 게 당연하다. 


아이를 낳지 않아도 우리가 어린이의 미래를 위한 책임에서 벗어나는 건 아니다. 과거 현재 미래를 이어져 있으며 같이 사는 사회이므로. 보험보장제도를 인구가 줄어들 수록 유지하는 게 힘들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작가는 말한다. 전세계 일어나는 기후 위기, 취업 문제, 저출생 등 모든 문제가 결국 시간의 문제라고. 학자 프리가 하우크는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16시간을 4시간씩 직업, 돌봄업무, 자유시간, 사회정치적 참여 로 나누는 모델을 제안한다. 이게 무리하게 느낄 수 있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우리가 자유롭고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드려면 이런 시도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누구보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모두가 읽어야 할 책이기도 하다. 마지막 챕터에서 모든 건 정치적이라고 한 문장에 동의한다. 앞서 행동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항상 마음의 짐이 있다. 하지만 그래도 이런 책을 읽고 나누고 모임을 만들고 얘기하고 옳다는 걸 하는 게 정치적인 참여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며 생각났던, 또 책에서 언급했던 책들을 나눈다. 왜 이리 시간이 없지? 내가 문제인가? 생각하는 분들에게 이 책을 꼭 읽어보시라 추천한다. 


(챕터별로 책을 덧붙입니다. )

1.시간은 왜 늘 부족한가? 

 24/7 잠의 종말 (절판) - 챕터 시작할 때 나온 문장이 실린 책 

2.노동시간 

노동의 배신 

불쉽잡

3.돌봄시간

돌봄과 작업 1,2

돌봄이 돌보는 세계

4.자유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 (3, 챕터에 문장이 실림)

5.어린이의 시간, 미래의 시간

어린이라는 세계 

6.정치를 위한 시간

돌봄과 연대의 경제학7.유토피아로 나가가기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이 챕터에서 문장이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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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요 강귀찬 - 20년 차 만화가의 밥벌이 생존기
김한조 지음 / 파란의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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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서 잘 보고 이렇게 책으로도 만날 수 있어 반갑고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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