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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 습지 - 어느 유곽의 110년
이수영 지음 / 학고재 / 2023년 10월
평점 :
200페이지가 안되는 작은 책. 2023년은 이 책을 읽은 해로 기억할 거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고 그만큼 중요한 책이다.
<분홍 습지>는 대구 성매매집결지의 110년 역사를 담았다. 미술 작가인 이수영은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대구를 기록한 두 권 의 책 <대구이야기> 와 <조선 대구일반>을 다시 쓴다. 작가 본인의 작품들과 대구 자갈마당 (성매매집결지)의 사진들도 같이 보여준다. 1부에서 2부로 넘어갈 때 1909년 부터 2019년까지 연도를 쭉 열거한다. 그 시대를 대표하는 사진들 (군사정권, 민주화 운동, 2002월드컵, 세월호 사고) 과 같이 나오는데 가슴이 콱 막힌듯 답답했다.
자그만치 110년 동안 꺼지지 않았다. 2019년 철거할 때 까지 분홍 불빛은 꺼지지 않았다.
그리고 2부에서는 그곳에서 9년 동안 일했던 연두의 목소리를 듣는다. 어렴풋이 알았던 용어들을 마주하고 남자들이 얼마나 많이 오고 상대했는지 그런 얘기도 맘이 무겁지만 탈성매매를 하고 한 때 자신의 터전이었던 곳에서 외면받았다는 얘기도 마음 아팠다. 배신자로 생각한다는 것.
2019년 대구에서 머물렀던 6개월의 활동을 바탕으로 이 책을 쓰기 시작한 작가는 여성인권센터 활동가 들과 다니며 그곳에 가면 주는 복숭아 넥타 음료수를 얘기한다. 이젠 ‘복숭아 넥타에도 고통을 느낄 줄 알게 되었다’고.
우리는 그 분홍 불빛이 110년동안 꺼지지 않았다는 걸 외면하고 살았다. 그 불빛은 대구 뿐만 아니라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수많은 곳에서 빛났다.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나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책의 마지막 문장 ‘공감은 힘이 세다’ 는 걸 느꼈다.
습지에는 아파트가 세워졌지만 묻히지 않도록 다시 쓰고 알려줘서 작가와 출판사 목소리를 들려준 분들에게 감사하다. 불이 꺼지지 않았던 건 누구 때문이었는지. 다들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