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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그리는 초상화처럼
정재은 지음 / 플레인아카이브 / 2025년 8월
평점 :
난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가’를 세 번 봤다. 개봉 전, 개봉하고 나서, DVD가 나온 뒤. 모두 GV가 있던 상영으로 기억한다. 볼 때마다 울컥했던 영화. 정재은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지만 이 작품은 유독 마음에 남았다. 건축도 이 영화를 보기 전 정기용 건축가를 잘 알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세상 떠나기 전까지 무언가에 몰두하는 삶은 어떤 삶일까. 특히 할머니들 사이에 앉아있는 건축가의 어색하면서도 인상적인 엔딩장면도, 자기 뜻대로 안돼서 힘들어하는 모습도 마음에 남았다.
모든 게 점점 빨리 변한다. 몇 달 전 유행하던 것도 금세 사라지고 다른 걸로 대체되는 요즘, 10년이 훌쩍 지나 말하는 건축가에 대한 책이 나온다니 소식만 듣고도 너무 기뻤다. 나오자마자 책을 구입했고 며칠 만에 다 읽었다. 그리고 알라딘 빌딩에서 있었던 북토크도 다녀왔다. 그때 없었던 아이가 열두살이 된 만큼 시간이 흐른 뒤, 감독님과 만남은 뜻깊었고 역시 변함없이 영화, 책을 사랑하는 분이셨다.
‘같이 그리는 초상화처럼’ 은 다큐 ‘말하는 건축가’의 비하인드 책이자, 영화에 담지 못한 정기용 건축가의 말과 이야기, 정재은 감독의 다큐 만들기, 다큐가 어떻게 만들어지는 가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작고 하얀 책에 담겨있다니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책은 표지의 네모난 창문처럼 독자를 초대한다. 작가가 원한대로 이미지 한 장도 들어가지 않은 책은 십 몇 년 전 독자가 영화를 보던 때로 돌아가게 만든다.
흔히 보던 이미지와 설명 글로만 되어 있으면 아쉬웠을 거다. 이 책으로 비로소 영화가 완성됐다는 느낌도 받았다. 영화만큼 글도 잘 쓰시는 구나. 영화를 찍으며 고민했던 시간, 마음이 오롯이 담겨 전해졌다. 감독은 정기용 건축가를 추켜세우지만 않는다. 영화도 그랬지만 이 책도 그 점이 매력적이다. 물론 책 제목대로 초상화를 같이 만들어 나가기에 완벽하게 그릴 수 없을 수 도 있고,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어서 정기용 건축가를 제대로 알린 게 맞나 라는 부채감이 들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이런 망설임과 고민도 진솔히 전하는 책이 좋다.
어떤 일에도 정답은 없다. 이게 정답이라고 말하는 영화와 책을 싫어한다. 이렇게 하는게 맞을까. 카메라를 두고 고민하고 있는 감독과 나를 따라다니는 거울이냐고 해도 자기 얘기를 서슴치 않고 전해주는 한 건축가가 있어서 영화가 완성됐고, 이 책도 나왔구나 싶어 감동받았다.
북토크 다녀오고 서평단 신청해서 책이 한 권 더 생겼다. 영화와 다큐를 사랑하는 지인에게 전하려 한다. 꼭 ‘말하는 건축가’를 보지 않았더라도 다큐와 영화에 관심이 있다면, 어떤 일에 매진하는 어른이 궁금하다면 모두 이 책을 추천한다. 기회가 된다면 영화를 같이 보고 책도 묶어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도 있었으면 좋겠다. 앞으로 감독님 새 작품도 흥미가 생겼다는 책 쓰기도 무엇이든 계속 만나볼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