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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엔 누룽지나 오차즈케로 -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함께했던 혀끝의 기억
후카자와 우시오 지음, 김현숙 옮김 / 공명 / 2025년 5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고 솔직하게 쓴 글
" 마지막엔 누룽지나 오차즈케로 " 이 책은,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재일교포이자 여성 작가인 후카자와 우시오가 쓴 여성에세이 입니다. 일본에서 여성작가로서 여성을 위한 책을 다 수 집필한 저자는 이번에는 "음식"을 주제로 한 에세이를 내었습니다. 음식이란 인간을 표현하기 위해, 한 사람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쓰일 수 있는 가장 좋은 소재같습니다. 의식주라고 표현하는 진부한 말 조차도 이를 증명하겠지요. 이 책은 그저 가벼운 인생 에세이 같으면서도, 일본에서의 재일교포 및 여성이라는 신분이 주는 불합리함과 어려움에 대해 살짝 살짝 녹여져있습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나서 얼음을 꽉꽉 깨물어 먹는 모습을 본 남자는 "난 밀크티를 마시는 애가 좋아"라는 말을 합니다. 밀크티를 마시는 애라는 말의 이면에는 순종적이고 따르며 조신한 일본여자라를 순응적이고 수동적인 신분을 떠올리게 합니다. 커피라는 주제 하나로 더 중요한 주제를 조금씩 넣었습니다.
작가님은 재일교포로서 한국인의 정체성과 일본인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책에 내용을 담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추천사를 지나 첫 번째 챕터는 역시 김치입니다. 지금은 일본에서의 K드라마, K푸드 열풍이 대단해서 김치를 어디서나 먹을 수 있겠지만, 작가님이 처음 6살때 김치를 억지로 먹었을 때는 지금과 달랐죠. 예전에는 조선 절임이라고 불렀던 김치, 난생 처음 강제로 먹었던 김치는 아무맛도 안나는 신맛뿐이었다고 말합니다. 본인이 재일교포 3세이므로 2세인 엄마에 대해 어릴적 한국 배추김치를 만들던 모습으로 아직 기억하다는 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일부가 남아있는 것으로 전달되고 그것이 때로는 혼란으로도 다가올 것 같습니다. 김치하면 곧 마늘인데, 마늘냄새가 나면 한국인이라는 것이 들통날까봐 조심했다는 것, 재일교포 2세인 87세 노모가 된 엄마는 "이제는 마음놓고 김치를 사먹을 수 있어"라고 하는 말은 역사의 한 켠을 느껴지게 합니다.
얼마전에 저는 그 유명했던 런던베이글을 먹어봤는데 그냥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이 책에도 베이글이 나오는데, 작가님도 삼청동에서 줄서먹는 베이글에 들렸었나 봅니다. 형형색색의 베이글을 보면서 느낀 작가님의 의문, 반가움, 흥미로움도 결국 음식이란 그냥 음식일뿐이니 선입견이나 원리원칙이란 없지 않겠냐는 제 생각과 비슷하게 쓰여 있습니다. 베이글, 스시, 컵라면, 프라이드치킨, 고기, 보쌈, 수제 초콜릿, 애프터눈 티, 샌드위치, 그리고 마지막에는 누룽지나 오차즈케로 마무리되는 음식에 대한 여정은 작가님의 눈과 글을 통해 한국/일본을 함께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느낌을 전달받습니다. 내게 너무 익숙한 컵라면을 작가님은 다르게 표현하고, 나는 어색하기 짝이없고 완전히 일본스러운 오차즈케는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보는 것이 바로 에세이의 즐거움 아닐까요. 중간 중간 작가님의 친언니, 심장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언니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오는데, 사람의 모든 추억과 기억은 음식이 매개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