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세대의 번아웃은 사회구조적 현상이며, 이 번아웃에는 이전 베이비붐 세대의 책임, 하락한 경제성장으로 인한 양질의 일자리 감소와 쇠퇴한 사회복지, 기술의 발달, 가혹해진 양육 기준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있다는 내용이 책의 요지이다. 

 

코로나로 인해서 일자리와 고용 형태가 많이 변하고 있기 때문에 이 책에서 말하는 현 상황은 곧 아주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말하는 워커홀릭이 힙하게 받아들여지는 풍조, SNS를 이용하면서 생겨나는 고독과 집중의 고갈 같은 부분을 깊이 공감하면서 읽었다. 

다른 인류학자, 사회학자, 행동경제학자들의 여러 연구들이 많이 인용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이 디지털 기술을 다루는 챕터 부분에 인용되었기에 장바구니에 담아보았다. 


칼 뉴포트 역시 인용되는데, 저자의 말대로 디지털 디톡스를 해본 적이 있다. 한달 동안 내가 가장 많이 썼던 5개의 어플을 지워서 접속하지 않는 디지털 디톡스였는데, 그 후 다시 서서히 원상태로 돌아갔다. 스마트폰을 없앨 고려를 해보기도 했는데 이미 내 생활에 아주 깊숙이 파고들어와 있어서 곤란하다. 무엇보다 재택근무 OTP와 접근 권한이 폰으로 검증되고 있고, 운전 시 내비게이션을 쓰고, 각종 관공서와 은행 어플 등이 있고... 


비정기적으로 보상처럼 내 뇌를 자극하는 여러가지 알람들 때문에 내 의지력만으로 스마트폰을 집어들고 싶은 욕망을 억제한다는 게 얼마나 부질없고 소용없는 짓인지는 이미 충분히 안다. 


요새 스마트폰을 다루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는 걸 느껴서 줄이려고 노력하는 참에 본 책이라 이 챕터 부분에 꽤나 집중해서 읽었지만, 책에서 다루는 성인 밀레니얼 세대들의 번아웃에 관련된 문제들은 바로 내 문제이기도 하다. 


이미 내 보스의 보스는 시도때도 없이 일에 모든 것을 때려박는 걸 성공의 중요 요인으로 여기고 있고, 좀더 강렬하게 시간을 많이 바쳐 일해주길 바란다. 본인이 이미 육아를 위해 아이를 재우는 시간에서조차도 메일과 기획서와 리뷰를 읽으며 업무에 올인하는 중이고, 다른 사람도 그러길 바란다. 

취미에 대한 찬사가 '돈 벌어도 되겠어요'인 것 역시 주변에서 들려오는 말이고, 개인의 삶에서 하는 모든 것들을 다 돈벌이로 치환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져버렸다. 

수많은 아웃소싱 역시 남 이야기가 아니며, 시궁창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또다른 시궁창 일자리를 찾아 돌려야하는 것 역시 남 이야기가 아니며, 여가에는 무엇을 해야하는지? 휴식에는 무엇을 해야 휴식인지 몰라서 방황하며 일하지 않을 땐 죄스럽고 일하면 비참한 것 역시 그렇다. 


그리고 결국 이 번아웃들은 개인에게서 촉발된 것이 아니기에, 해결방법 역시 개인이 심리치료를 받고 일기를 쓰고 스스로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채찍질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행동이 어떻게 남의 번아웃을 부추기는지를 생각해보고

모두를 위해 삶을 더 낫게 만들 해결책들을 지지해야만 한다. 

더 나아지는 변화는 공적인 영역에서 일어나야 한다. 


과로는 아방가르드적이고, 패셔너블하고 ,진보적인 것이 되었다. 반면 조합에서 보호하는 주당 40시간 근무는 고루하고 현실에 무지할 뿐더러 멋지지 않은 것이 되었다. 조합과 조합을 보호하는 법이 인기를 잃자 노동자 간의 유대 역시 인기를 잃었다. 그 대신 ‘좋아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고 쟁취한다는 목표 아래 무자비한 경쟁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 "모든 개인이 자신을 나머지 사회 구성원과 제로섬 전투를 벌이고 있는 독립 계약자로 간주할 때, 유대는 혐의가 된다. 개인이 일하지 않고 보내지 않는 모든 순간이, 다른 누군가가 앞서나가서 그를 불리하게 만든다는 의미가 된다."

밀레니얼 세대의 번아웃에는 참으로 많은 이유가 있다. 그중 가장 인정하기 어려운 이유 하나를 앤은 매일 직면한다. 너무나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것이, 많은 희생과 고생으로 얻은 것이, 행복도 열정도 자유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동의 일상을 이루는 모든 부분이 훗날 일터에 진입할 때를 대비한 최적화 과정인 것이다. 그렇게 아동은 성년을 한참 앞둔 나이에 작은 성인이 되고, 그에 수반되는 불안과 기대 역시 끌어안는다.

여성들이 전문적 일터로 진입하기 시작하자 그 결과로 불거진 ‘어머니 없는‘ 아이들, 지저분한 집, 여성화된 남성 전업주부들에 대한 불안을 어떤 식으로든 잠재워야 했다. 자칫하면 미약한 발전마저 백래시에 의해 무산될 테니까. 그리하여 암묵적 합의가 이루어졌다. 여성들은 오직 모든 사회적 기대를 만족시킬 때만 일터에 진입할 수 있었다. 여성은 야심을 가질 수 있었지만, 여전히 상냥해야 했다. [...] 그러나 과거엔 이 모든 자질을 온라인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포장하라는 기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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