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에서 미용사에게 머리를 맡긴 세 시간 동안 읽었다. 

아이러니하지, 꾸밈노동에 대해서도 말하는 책을 꾸밈 전문가에게 시간과 몸을 맡기고 내내 읽었다는 게. 


자기 자신에 대한 돌봄, 일하는 여성의 시간/꾸밈노동/업무태도/결혼과육아/성차별에 대한 모든 고충들, 다이어트와 몸에 대한 강박, 여성성에 대한 강요와 정작 여성성이 주인의식을 갖고 발휘되자 나타나는 혐오 등이 섞여서 한꺼번에 디밀어진다. 

일본 사회의 여성에 대한 단면이 잘려져 나와 수없이 겹쳐진 층들이 들이밀어지는 듯한 느낌. 


소설의 제재는 가지이 마나코가 과연 남자들을 죽였는가? 가지이 마나코는 어떤 여자인가? 이 부분인데 정작 소설의 시작은 리카가 친구 레이코를 만나러 가면서부터다. 왜 이런 시작인가 처음에는 의아해하면서 읽었는데, 책을 덮고나니 너무나 잘 이해되는 첫장면이었다.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다. 


가지이 마나코를 취재하면서부터 소설은 본격적으로 흘러가기 시작하고, 나는 과연 이 취재가 대체 어디로 어떻게 끝날지 궁금해하면서 보기 시작했는데, 중간중간 소설은 딴 길로 샌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다른 일면들이 저마다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인물들의 다른 일면을 등장시키는 작가의 솜씨가 능숙해서 가지이 마나코와 관련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그런데도 궁금해서 계속 넘기게 된다. 이를테면 시노이 요시노리와 얽히는 장면 같은 거. 


가지이 마나코는 자신이 직접 만든 요리를 애인에게 대접해보라고 하는데, 세상에, 요리를 만들 고민에 골몰하는 리카가 만나는 것은 시노이 요시노리인 것이다. 이 전, 시노이 요시노리가 처음 등장할 때 리카는 화장실에서 화장도 지우고, 머리도 불끈 묶고 일부러 여성적인 면모를 지우겠다는 결의를 드러내면서 만나러 간단 말이다. 하지만 리카가 그렇게 여자로서 시노이를 만나는 게 아니라고 외모로서 주장을 하면 할수록, 리카가 시노이 요시노리와 만날 때의 성적인 긴장감이 드높아지는 게 느껴진다. 리카가 성적인 긴장감을 느끼고 있으니 외모를 의식하는 거 아니겠는가? 시노이 요시노리가 리카를 성적으로 대한 적은 전혀 없는 정보원이지만, 리카가 그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그저 편안한 취재원으로만 생각한다면 대체 왜 외모를 의식하겠는가? 

그런데 애인에게 대접할 요리를 만들어야하는 마당에 만나러 가는 게 시노이인 것이다. 

하, 별 거 아닌 장면인데 읽는 내가 이렇게 긴장하면서 책장을 넘기는지. 

그리고 이렇게 만났는데, 시노이 요시노리의 전혀 몰랐던 아내와 딸에 대한 과거가 언뜻 드러나면서, 리카는 오븐이 있는 시노이의 집으로 가는 것이다. 와... 나는 침을 삼키면서 본 것이다. 그래서? 그럼 만든 케이크는 시노이에게 대접하는거야? 그런 거야? 


뭐 그렇게 흘러가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가지이 마나코를 소재로 대화하다가 어떤 부분에 이르면 갑자기 걷잡을 수 없이 날카롭게 튀는 못 같은 레이코의 반응이 정말 이해가 안되던 것도, 읽어나가다보면 레이코가 왜 그랬는지 알게 된다. 알게 되자마자 곧 레이코의 폭주가 시작되어버리고, 아, 정말 난 레이코가 이해되면서도 잘 모르겠다 싶을 때 레이코의 과거에 대한 장면이 시작되는데, 그 부분에서 레이코에 대한 어이없는 마음도 스륵 녹아버렸다. 

문장은 그냥 단순하게 리카에게 거짓말을 했다, 그런 거였지만, 

그 부분이 눈에 들어왔을 때 먼저 앞에서 

리카는 여학교의 잘생긴 아이돌 같은 존재였고, 레이코는 리카를 정말 좋아했고,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레이코는 리카를 동경하는 존재처럼 눈을 반짝이며 바라보았고, 리카를 위해 주먹밥 도시락까지 싸서 가져왔고... 

그리고, 리카와 동질감을 느끼기 위해서 거짓말을 했고.

그 부분에서 그만 레이코는 미워할 수 없는 인물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폭주했지. 

레이코의 폭주가 시작되면서 걷잡을 수 없는 리카의 마음처럼, 나 역시 소설이 너무 레이코처럼 폭주하는 건 아닌가 한숨을 쉬었지만, 아무튼, 책장을 덮고 난 후의 기분은 몹시 만족스럽다. 

리카 같은 방식의 승리도 있는 거야, 깨닫게 되는. 

리카는 구치소에 갇혀 있는 가지이 마나코를 만나러 가면서 내내 가지이 마나코가 원하는 것을 대신 먹고, 하고, 느낌을 자신만의 말로 말해주러 갔었으니까, 이런 식의 승리도 잘 어울린다. 

가지이 마나코에게 한 방 얻어맞은 리카가 다시 그 한 방을 돌려주지는 못하지만 뭐 어때, 리카는 정말 많은 걸 얻었다. 넘어져도 그냥은 일어나지 않는다, 어떻게든 넘어진 장소에서 뭔가를 주워서 일어난다. 

이제 리카는 예전과는 다른 리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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