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스치는 바람 1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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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정명은 <뿌리 깊은 나무>, <바람의 화원>으로 많은 독자를 확보한 작가입니다. 이 작품은 일제 강점기 한국의 대표적인 시인 중 하나인 윤동주의 시를 소재로 하고 있지요. 윤동주는 1944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후쿠오카 형무소에 잡혀 들어갔다가 이듬해 2월에 사망했지만 죽기 전 그의 모습을 보고 그가 생체 실험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설이 지금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윤동주의 마지막을 모티브로 삼아 쓰인 작품입니다.

 

 배경은 1944년부터 1945년까지, 즉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의 후쿠오카 감옥에서 시작합니다. 이 감옥은 일본에서 가장 위험한 사상범, 조선에서 데려온 독립군 군사 혹은 사상범들을 수용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징집되어 교도소 경비병으로 배치된 한 병사의 눈으로 서술됩니다. 어느 날, 죄수들을 사정없이 폭행하기로 악명이 높았던 간수 스기야마가 입이 꿰매진 채 목이 매달려 살해되는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소장에 의해 사건 조사를 명령받은 주인공은 한 명의 죄수를 범인으로 지목하게 되지만 조사하면 할수록 죽은 간수의 의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간수가 의외로 피아노 조율도 할 줄 알고, 시나 문장에 대하여도 많은 조예를 가지고 있다는 점 등, 그리고 그 간수와 가장 친분이 깊었던 죄수 히라누마 도준, 본명 윤동주와 만나게 됩니다.

 

 살인사건은 단 한 건이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 정부는 자국은 물론 식민지에도 온갖 사상적 억압을 가합니다. 이 교도소는 특히 심하여 조선어로 된 책이나 문장은 무조건 소각해야 하는 검열관 스기야마, 글을 쓸 줄 모르는 죄수들의 엽서를 대필해 주는 윤동주가 검열 때문에 몇 번 만나며 스기야마가 점점 문장, 시 등을 접하게 되고 인간의 사상과 문장이 담긴 시에 점점 감화되어 결국 윤동주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되는 과정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또한 이 작품의 구성도 절묘합니다. 사건의 진행에 따라 그 상황에 맞는 윤동주의 시가 하나씩 소개되고 윤동주 외에도 괴테, 릴케 등 여러 나라의 걸작 문학 작품을 접할 수 있으며 억압받는 세상에서 윤동주와 인간의 자유에 대한 열망, 예술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윤동주의 메시지는 인상 깊었습니다. 책들은 태워진다고 해도 그 문장을 읽은 사람의 마음속에서는 죽지 않는다는 이야기, 그렇습니다. 우리가 책 한 권을 통하여 얻는 지식이나 정보는 결국 우리의 마음 속에 존재하게 마련이니까요.

 감옥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그리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면 <쇼생크 탈출>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더군요. 강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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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거울 속에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헬렌 맥클로이 지음, 권영주 옮김 / 엘릭시르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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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매클로이(Helen Mccloy, 1904~1994)는 미국을 대표하는 여류 본격 추리작가이자 마이클 셰인 시리즈의 작가 브래드 할리데이의 아내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어렸을 적부터 추리소설에 깊은 흥미를 갖고 지내다가 1938년에 <죽음의 무용>이라는 작품으로 등단하였죠. 여기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정신과 의사 탐정 배질 윌링은 그녀의 탐정 시리즈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면 교외에 있는 어느 여자 기숙학교에서 교사 포스티나가 어느 날 돌연히 사표를 내라는 말을 들으며 시작됩니다. 그녀는 해고당할 만큼의 잘못을 한 적이 없는데 무슨 일일까요, 그녀를 둘러싼 여러 가지 나쁜 소문이 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나쁜 소문만이 아니라 그녀가 동시에 두 군데에서 목격되는 사건이 종종 발생했다는 점입니다. 그녀에게 쌍둥이 형제는 없는데 말이죠.

그 뒤 계속 도플갱어 사건이 발생하자, 포스티나의 친구인 기젤라는 자신의 남자친구인 배질 윌링을 부릅니다. 윌링은 여러 각도로 사건을 조사하다가 포스티나가 전 학교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포스티나를 괴롭히고 험담하기를 일삼던 동료 교사가 석연치 않은 사고로 죽는 일까지 발생하게 되죠. 더욱이 그녀를 죽인 이는 바로 ‘포스티나’입니다. 윌링은 이 모든 사건이 포스티나를 노리고 있음을 짐작하지만 막판에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는 밀실 살인이 발생합니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오늘날 보기에 트릭에는 조금 무리가 있지만 그 고딕 로망같은 분위기, 과학적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기이한 분신 사건과 그 뒤의 진실을 파헤치는 명탐정의 활약이 아주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즉 고전 작품답게 매우 단순한 트릭이지만 그 불가사의한 분위기와 여류작가 특유의 심리 묘사가 이 작품의 백미이기도 하죠. 더욱이 에드워드 호크가 실시한 장편 밀실 추리소설 베스트 15 설문조사에서 12위를 한 작품인 만큼 본격 추리물이자 밀실물로서의 매력도 출중합니다.

배질 윌링 시리즈는 단편집까지 모두 14권이 출간되었는데 <어두운 거울 속에>는 8번째 작품입니다. 다른 윌링 시리즈도 볼 수 있으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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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 듯 시크하게 Nobless Club 17
한상운 지음 / 로크미디어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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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운 님의 <무심한 듯 시크하게>를 읽었습니다.

 시작은 다른 형사드라마나 영화와 비슷합니다. 주인공인 열혈 형사 정태석과 그 파트너인 유병철이 마약 단속을 나갔다가 마약 조직의 거물인 변성수라는 이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됩니다. 마약 패거리 중 한 명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태석은 병원 장례식장으로 가서 변성수를 잡으려 하지만 놓칩니다. 반드시 그를 잡겠다고 마음먹은 태석은 변성수가 해외파 성형외과 의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변성수의 뒤를 쫓고 마약을 찾기 위해 변성수가 한 때 만났던 여성에게 신분을 속이고 ‘무심한 듯 시크하게’(이 표현에 대한 의미 풀이도 극중에 있습니다) 접근합니다.

 수사해 나가는 과정이 실감나고, 진부한 듯한 내용인데도 태석과 병철이라는 매력적인 인물이 이야기를 재미있게 이끌어 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변성수가 마약범이었다는 말을 들은 간호사들의 반응은 우리나라의 외모 및 물질 만능주의를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한국의 많은 수사드라마나 영화와 크게 다른 점을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점, 그리고 마약 밀수하는 방법이 다른 작품에서 소개된 방법과 같았다는 점 등입니다(물론 작가님이 표절하셨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복수의 작가가 우연히 비슷한 방법을 생각해내는 일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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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서브 로사 1 - 로마인의 피 로마 서브 로사 1
스티븐 세일러 지음, 박웅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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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세일러의 <로마 서브 로사-로마인의 피>를 읽었습니다. 스티븐 세일러가 로마사를 전공한 만큼 이 작품은 로마 시대를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기원전 80년, 로마 제국은 독재관 술라에 의해 지배되고 있습니다. 이 때 활약한 이가 로마의 대표적인 철학자이자 변호사, 작가였던 키케로지요, 키케로는 어느 날 주인공인 '더듬이' 고르디아누스에게 사람을 보내 사건을 의뢰합니다. 한 부자 노인이 살해되고 그 아들이 범인으로 몰리자, 재판 전까지 아들이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 달라고 합니다. 고르디아누스는 로마 시내는 물론 피해자의 고향을 찾아 여행을 하면서 사건을 조사하죠.

이 작품은 실제로 키케로가 맡았던 사건과 그 기록을 토대로 하였고, 키케로의 법정 연설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그리고 역사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한 번쯤 관심을 가져 보았음직한 로마 제국, 그 로마의 서민들과 그들의 삶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돋보입니다. 고르디아누스가 만나는 해방 노예와 검투사들에 대한 인상이 깊게 남고요.
<로마 서브 로사>는 "장미 아래서"라는 뜻으로 로마 인들이 비밀 회의 장소에 장미를 꽂아 두는 풍습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죠, 즉 세일러는 이 시리즈를 통해 로마 역사의 큰 전환기를 추리물 형식으로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작품에는 카이사르, 폼페이우스와 함께 로마의 삼두 정치를 연 크라수스가 본격적으로 등장한다고 하니 기대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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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창 노블우드 클럽 6
존 딕슨 카 지음, 임경아 옮김 / 로크미디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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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딕슨 카의 탐정 중 하나인 헨리 메리베일 경이 등장하지요. 메리베일 경은 <세 개의 관>에 나오는 펠 박사와 이명동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비슷한 인물입니다. 뚱뚱하고, 독설가이고, 남 돕기를 좋아한다는 점이지요. 카의 다른 작품인 <흑사장 살인사건>에서 그의 별명은 '마이크로프트 홈즈'라고 나옵니다. 움직이지는 않지만 정부 기관에서 일한다는 점, 홈즈만큼 날카로운 추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줄거리를 소개하겠습니다. 제임스 앤스웰은 장래성 있는 청년으로, 어느 날 한 여인을 만나게 되고 곧 결혼 약속까지 합니다. 그런데 결혼 얼마 전에 장인 될 분이 그를 집으로 초대합니다. 장인은 그에게 술을 한 잔 주는데 갑자기 제임스는 쓰러지고 맙니다. 문제는 깨어나 보니 장인 될 어른은 화살에 맞아 죽어 있고, 그 화살은 원래 방 벽에 장식되어 있던 것이고 방문도, 창문도 모두 안에서 잠겨 있습니다. 정황상 그가 피해자와 싸움을 하다가 우발적으로 죽였다는 말이 되지요.
이제 무대는 법정으로 옮겨집니다. 살인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을 위기에 선 제임스, 그를 돕기 위해 나선 변호사인 헨리 메리베일 경입니다. 메리베일 경은 화살의 깃털, 잉크 패드의 위치 등에 주목하지요. 처음에는 조금 짜증나지만 오히려 그런 사소한 단서 하나하나가 범인을 밝히는 데 도움을 줍니다.
메리베일 경은 충분히 무죄를 증명할 자신이 없으면 아예 나서지 않는 인물입니다. 압도적인 상황 증거 속에서도 사건의 진상을 차근차근 밝혀 나가는 메리베일 경의 활약이 돋보이며, 영국의 전통 법정인 올드 베일리에 대한 묘사도 훌륭합니다. 과연 딕슨 카의 작품답더군요.

 아쉬운 점이 있다면 범행 과정이 딕슨 카의 다른 작품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이건 스포일러이므로 밝히지 않겠습니다)이죠, 그리고 마지막에 트릭을 풀어낼 때에는 삽화가 있어야 이해하기가 쉬울 것 같습니다.
역시 밀실의 대가 딕슨 카다운 트릭이 사용되고 법정물로서의 재미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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