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밤에 본 것들
재클린 미처드 지음, 이유진 옮김 / 푸른숲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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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클린 미처드의 작품은 한국에는 이번에 처음 소개되는군요. 신문 기자였던 작가는 남편과 사별한 후 홀로 네 아이를 키워 가면서 틈틈이 쓴 소설을 발표하여 큰 인기를 얻었고 데뷔작인 <저 깊은 바다의 끝>은 13주간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죠. 최근에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작품을 많이 발표하고 있으며, 이번에 소개하는 작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화자인 앨리, 로브, 줄리엣이라는 세 명의 청소년입니다. 세 명 모두 잠깐이라도 햇볕을 쬐면 생명까지 위험해지는 색소성 건피증, 줄여서 XP라 불리는 희귀병 환자지요. 이 세 사람은 그 때문에 희귀병 병동에서 만났고 언제나 함께 다닙니다. 이들의 유일한 쾌락은 파쿠르, 즉 건물을 타고 넘는 일입니다. 밤에 거리에 나가 건물들 사이를 뛰어다니며 자유를 만끽하지요.

그러던 어느 날, 이들은 어느 집에서 뭔가 수상한 금발의 사람을 보게 됩니다. 그 사람 옆에는 누군가가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앨리가 교통사고를 당해 팔이 부러지고, 앨리의 친구마저 교통사고를 당해 죽자 앨리는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범인을 추적해 나가는 동시에 로브와의 사랑도 키워 나갑니다.

 

재클린 미처드는 이 작품을 통하여 사춘기 소녀의 심리를 자세히 묘사하였고, XP와 파쿠르라는 소재를 잘 버무려 냈습니다. 특히 주인공이자 화자인 앨리와 그 가족들의 모습을 통해 앨리가 병을 극복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를 해 보려는 모습, 또한 희귀병 환자의 가족들의 심리와 행동 등을 보여줌으로서 감동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병을 극복하려는 앨리, 병원 침대에서 죽기는 싫다며 파쿠르의 세계에 빠져드는 줄리엣, 이들을 돕는 로브 등 캐릭터 묘사도 좋고, 앨리와 그 주변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지 점점 기대하면서 보게 되는 스릴러로서도 훌륭합니다.

단지 추리물로서 보면 결말과 수수께끼 풀이가 그리 깔끔하지 못하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사건보다 주인공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중점을 뒀다는 점 때문에 정작 사건 진상은 조금 흐지부지하더군요.

재클린 미처드의 작품이 앞으로 더 많이 소개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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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콜 드 파리 살인사건 예술 탐정 시리즈 1
후카미 레이치로 지음, 박춘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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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콜 드 파리(Ecole de Paris)는 1차 세계대전 뒤 파리에 몰려든 외국인 예술가들, 마크 샤갈, 파블로 피카소, 생 수틴, 키스 반 동겐, 모딜리아니 같은 작가들의 집단을 말합니다. 이 당시 예술가들의 삶은 대부분 비참했습니다. 경제도 어려웠으며 예술만으로는 생계를 이어 나가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죠.

 

아카츠키 화랑은 에콜 드 파리 화가들의 작품 컬렉션으로 유명합니다. 어느 날 이 화랑의 주인이 자신의 서재에서 칼에 찔려 죽은 채 발견됩니다. 문제는 그 서재에 외부인 침입 흔적이 없었으며 문도 창문도 안에서 굳게 잠겨 있었다는 점입니다. 단서는 피해자가 쓴 <저주받은 예술가들>이라는 책뿐입니다.

이 사건을 담당한 운노 형사는 피해자의 금전 관계, 갈등 관계 등을 수사합니다. 정신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 관리인, 라이벌 화랑 주인, 피해자의 의절한 동생 등이 주요 용의자로 떠오릅니다. 그 와중에 운노 형사의 조카인 슌이치로가 미술 관련 자문을 해 준다는 핑계로 사건 해결에 뛰어들게 되죠. 수사하면 할수록 이 사건은 에콜 드 파리, 그 당시 그림들과 관련이 있음이 밝혀집니다.

읽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무엇보다도 신본격의 법칙에 충실합니다. 명문가 내부에서의 집안 갈등, 저택에서의 밀실 살인과 이를 통해 일어나는 여러 문제점들, 탐정에 의해 명쾌히 해결되는 결말까지도요. 또한 캐릭터 묘사도 훌륭합니다. 운노 형사의 조카인 슌이치로는 내키는 대로 지껄이고 행동하는 이 같지만 지식도 많고 통찰력과 관찰력도 뛰어난 이며, 경부인 오베시미는 비현실적이라 여겨질 만큼 개그 캐릭터이고, 그 외 형사들 하나하나의 묘사도 잘 되어 있습니다. 책을 덮은 후에도 그들의 행동이 눈에 선하더군요.

또한 중간 중간에 에콜 드 파리라는 예술가 집단과 그 그림들은 물론 1차 대전 후 파리의 상황 등에 대한 묘사는 물론, <저주받은 예술가들>을 통해서 볼 수 있는 화가들에 대한 설명도 유익했습니다. 추리소설로서의 재미와 덤으로 예술사 지식까지 얻고, 양쪽의 분량 배분도 적당하였습니다.

굳이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앞서 언급한 대로 오베시미 경부의 개그는 조금 오버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점입니다.

신본격의 팬이거나 예술에 관심이 있는 독자 분에게 강력 추천합니다. 후카미 레이치로의 작품을 더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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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 따위 두렵지 않다 미스터리, 더 Mystery The 4
니시무라 교타로 지음, 이연승 옮김 / 레드박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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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추리소설에 등장했던 여러 명탐정이 모여서 추리대결을 벌인다. 이는 추리 독자는 물론 작가에게도 로망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남의 캐릭터를 가져다 쓰는 만큼 그 작가의 팬들에게서 항의를 받을 위험도 있고 잘못하면 그 캐릭터를 망쳤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으니 이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니시무라 교타로라는, 일본을 대표하는 추리작가 중 한 사람이 이러한 일에 도전하였군요.

 

이 작품은 일본의 유명한 도난 사건인 ‘3억 엔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왔습니다. 일본의 대부호 한 명이 세계적인 명탐정 네 명, 즉 엘러리 퀸, 에르퀼 푸아로, 매그레, 아케치 코고로를 불러 자신이 3억 엔 사건을 그대로 재현할 예정이니 그 사건의 진상을 풀어 달라는 의뢰를 합니다. 그는 실제로 3억 엔을 준비했으며 그 범행을 저지를 사람까지 물색해 놓았던 것입니다. 네 명의 탐정은 모두 나이가 칠순이 넘었지만 아직은 머리가 잘 돌아가기에 사건을 풀어 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얼마 후, 그 부호의 계획대로 3억 엔을 훔친 범인이 아파트에서 시체로 발견되고 이 게임은 더 이상 게임이 아니게 됩니다. 네 명의 명탐정은 각자의 머리를 굴려 사건의 진상을 추론해 나갑니다.

 

다른 사람이 이미 만든 캐릭터를 활용하여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캐릭터일 경우에는 더 그렇죠. 셜록 홈즈의 경우 소년, 노인, 타임슬립, 현대판, 심지어는 여성 버전 등 여러 페스티시 및 패러디가 나와 있지만 이 중에는 코난 도일이 본다면 화를 낼 것 같은 방법으로 만들어진 작품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니시무라 교타로의 노련한 솜씨는 이 작품 곳곳에서 빛을 발합니다. 각 탐정 중 한두 명을 편애하지도 않으며 무엇보다도 일본에서 실제로 있었던 3억 엔 사건을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흥미가 따르고, 마지막에 역시 탐정들답게 논리적인 사건 해결 방식도 돋보입니다.

아쉬운 점은 엘러리 퀸, 에르퀼 푸아로 등이 실제 활약했던 사건 언급이 많아 그 작품들의 스포일러가 담겨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탐정 캐릭터들이 기대보다는 밋밋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본문 다음에는 추리작가 아야츠지 유키토가 니시무라 교타로와 인터뷰한 내용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니시무라 교타로라는 작가에 대하여 좀 더 많이 알 수 있으니, 이 인터뷰도 절대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명탐정 시리즈도 총 4편까지 있다니 보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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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솔린 생활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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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 <그래스호퍼>, <골든슬럼버>의 작가 이사카 고타로의 신작입니다. 이번 작품의 특징은 특이하게도 자동차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군요. 배기가스가 닿는 곳까지라면 자동차는 서로 대화를 할 수 있지만, 자전거들과는 대화가 거의 되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의 화자는 녹색 데미오(일본의 차 브랜드 이름)로, 모치즈키 가의 애차입니다. 그는 늘 그 집의 장남 요시오를 태우고 다니며 할 일은 늘 돌아다니며 다른 차들과 이야기를 하는 일이죠. 그러던 어느 날, 요시오와 동생 도루가 이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은퇴한 여배우 한 명이 파파라치들을 피해 그 차에 탑니다. 이들은 그녀와 잠시 이야기를 한 뒤 내려주지만 얼마 후 터널에서 그녀는 교통사고로 죽고 맙니다.

자동차들 사이에서 며칠 동안은 교통사고가 가장 큰 화제가 되는 법이기 때문에 데미오는 그 사건에 대해 알게 됩니다. 그 와중에 누군가가 데미오의 주인 집 딸을 협박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데미오는 자신은 사람을 태우고 다니는 일밖에 할 수 없지만 결국 나름대로 온갖 사건의 연관성을 추리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사람이 아닌 물건을 주인공이나 화자로 한 작품의 대표작은 미야베 미유키의 <나는 지갑이다>를 들 수 있고, <한국 추리 스릴러 걸작선 2>에 실린 단편 <두 명의 목격자> 역시 택시 미터기와 핸드폰에 의해 서술되는 이야기입니다. 이 작품의 화자 역시 자동차로서 목격자인 차, 심지어는 범죄에 사용되었던 자동차까지 등장하여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모든 사건을 자동차와 연관지어 생각하는 등 매우 재치 있는 대화가 돋보이며 자동차들뿐 아니라 모치즈키 가의 삼남매, 이웃에 사는 호소미 씨 등 여러 명의 개성있는 캐릭터가 자동차의 눈으로 매우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왕따 사건, 갱을 통한 공갈 협박, 파파라치 등 여러 가지 사회 문제점을 전혀 무겁지 않게 풀어 낸 솜씨도 훌륭합니다. 특히 나중에 이 차들이 어떻게 되지 않을까 하고 자동차에 자신도 모르게 공감하게 될 정도로 몰입도도 좋았습니다.

아쉬운 점은 자동차끼리 이야기를 한다는 점 외에도 비현실적인 면이 강하고 무엇보다 우연히 이루어지는 일이 조금 많다는 점입니다.

아이디어, 구성, 사회 비판 등 여러 요소가 제대로 녹아 있는 작품입니다. 이사카 고타로라는 작가에게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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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김유철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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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문학과 순수문학을 번갈아 쓰면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김유철 작가의 최신작이 나왔습니다. <레드>, 붉은 색이란 뜻이죠. 제목대로 이 작품에서는 붉은 색, 즉 피의 향연이 펼쳐집니다.

 

김민성은 12년 전 모든 기억을 잃었다는 점 외에는 특별한 점이 없는 보통 소설가입니다. 그가 어느 날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는데, 한 여인이 그에게 접근해 옵니다. 그녀는 자신의 여동생이 얼마 전에 실종되었는데 그녀에게 일어난 일이 민성이 전에 썼던 소설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립니다. 한편, 여인들이 실종된 뒤 장기가 적출된 시체로 발견되는 일이 발생하고, 경찰은 피해자의 주변을 탐문하다가 그녀가 가입했던 특정 모임과, 그 모임의 강사를 쫓게 됩니다. 민성은 이 사건들이 고대 아즈텍에서 행해졌던 인신 공양과 흡사함을 느끼고 이 사건에 대해 알아보다가 이 모든 사건의 뒤에는 12년 전 용호농장에서 있었던 대규모 화재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민성의 기억이 사라진 곳도 바로 용호농장입니다.

 

스릴러 소설답게 이야기가 매우 빨리 전개됩니다. 또한 장기가 적출되박 형사와 민성의 시점을 번갈아가며 서술되며 이들이 사건의 진상에 접근하는 과정이 잘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아즈텍의 심장 꺼내는 의식, 백년전쟁 당시 어린이들을 학살한 악명 높은 질 드 레, 샤를 페로의 푸른 수염(질 드 레 이야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프레이저가 쓴 인류학 서적인 <황금가지> 등 여러 가지 상징과 지식이 이야기 전체에 나타나 있습니다. 또한 연쇄살인마를 만들어 낸 이 사회와, 인간의 어두운 면에 대한 묘사도 생생하고 마지막 결투 장면도 박진감이 넘칩니다.

아쉬운 점은 작품 분량에 비해 너무 많은 상징과 지식이 동원되어 보통 사람이 읽기에는 조금 어려울 것 같다는 점입니다. 이 많은 지식 중 한두 가지만 썼어도 이야기가 그리 복잡해지지는 않았을 것 같군요.

한국 스릴러 소설의 출간이 활발히 되어가고 작품 수준도 높아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앞으로도 더 좋은 작품이 많이 나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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