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솔린 생활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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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마왕>, <그래스호퍼>, <골든슬럼버>의 작가 이사카 고타로의 신작입니다. 이번 작품의 특징은 특이하게도 자동차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군요. 배기가스가 닿는 곳까지라면 자동차는 서로 대화를 할 수 있지만, 자전거들과는 대화가 거의 되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의 화자는 녹색 데미오(일본의 차 브랜드 이름)로, 모치즈키 가의 애차입니다. 그는 늘 그 집의 장남 요시오를 태우고 다니며 할 일은 늘 돌아다니며 다른 차들과 이야기를 하는 일이죠. 그러던 어느 날, 요시오와 동생 도루가 이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은퇴한 여배우 한 명이 파파라치들을 피해 그 차에 탑니다. 이들은 그녀와 잠시 이야기를 한 뒤 내려주지만 얼마 후 터널에서 그녀는 교통사고로 죽고 맙니다.

자동차들 사이에서 며칠 동안은 교통사고가 가장 큰 화제가 되는 법이기 때문에 데미오는 그 사건에 대해 알게 됩니다. 그 와중에 누군가가 데미오의 주인 집 딸을 협박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데미오는 자신은 사람을 태우고 다니는 일밖에 할 수 없지만 결국 나름대로 온갖 사건의 연관성을 추리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사람이 아닌 물건을 주인공이나 화자로 한 작품의 대표작은 미야베 미유키의 <나는 지갑이다>를 들 수 있고, <한국 추리 스릴러 걸작선 2>에 실린 단편 <두 명의 목격자> 역시 택시 미터기와 핸드폰에 의해 서술되는 이야기입니다. 이 작품의 화자 역시 자동차로서 목격자인 차, 심지어는 범죄에 사용되었던 자동차까지 등장하여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모든 사건을 자동차와 연관지어 생각하는 등 매우 재치 있는 대화가 돋보이며 자동차들뿐 아니라 모치즈키 가의 삼남매, 이웃에 사는 호소미 씨 등 여러 명의 개성있는 캐릭터가 자동차의 눈으로 매우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왕따 사건, 갱을 통한 공갈 협박, 파파라치 등 여러 가지 사회 문제점을 전혀 무겁지 않게 풀어 낸 솜씨도 훌륭합니다. 특히 나중에 이 차들이 어떻게 되지 않을까 하고 자동차에 자신도 모르게 공감하게 될 정도로 몰입도도 좋았습니다.

아쉬운 점은 자동차끼리 이야기를 한다는 점 외에도 비현실적인 면이 강하고 무엇보다 우연히 이루어지는 일이 조금 많다는 점입니다.

아이디어, 구성, 사회 비판 등 여러 요소가 제대로 녹아 있는 작품입니다. 이사카 고타로라는 작가에게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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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김유철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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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문학과 순수문학을 번갈아 쓰면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김유철 작가의 최신작이 나왔습니다. <레드>, 붉은 색이란 뜻이죠. 제목대로 이 작품에서는 붉은 색, 즉 피의 향연이 펼쳐집니다.

 

김민성은 12년 전 모든 기억을 잃었다는 점 외에는 특별한 점이 없는 보통 소설가입니다. 그가 어느 날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는데, 한 여인이 그에게 접근해 옵니다. 그녀는 자신의 여동생이 얼마 전에 실종되었는데 그녀에게 일어난 일이 민성이 전에 썼던 소설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립니다. 한편, 여인들이 실종된 뒤 장기가 적출된 시체로 발견되는 일이 발생하고, 경찰은 피해자의 주변을 탐문하다가 그녀가 가입했던 특정 모임과, 그 모임의 강사를 쫓게 됩니다. 민성은 이 사건들이 고대 아즈텍에서 행해졌던 인신 공양과 흡사함을 느끼고 이 사건에 대해 알아보다가 이 모든 사건의 뒤에는 12년 전 용호농장에서 있었던 대규모 화재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민성의 기억이 사라진 곳도 바로 용호농장입니다.

 

스릴러 소설답게 이야기가 매우 빨리 전개됩니다. 또한 장기가 적출되박 형사와 민성의 시점을 번갈아가며 서술되며 이들이 사건의 진상에 접근하는 과정이 잘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아즈텍의 심장 꺼내는 의식, 백년전쟁 당시 어린이들을 학살한 악명 높은 질 드 레, 샤를 페로의 푸른 수염(질 드 레 이야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프레이저가 쓴 인류학 서적인 <황금가지> 등 여러 가지 상징과 지식이 이야기 전체에 나타나 있습니다. 또한 연쇄살인마를 만들어 낸 이 사회와, 인간의 어두운 면에 대한 묘사도 생생하고 마지막 결투 장면도 박진감이 넘칩니다.

아쉬운 점은 작품 분량에 비해 너무 많은 상징과 지식이 동원되어 보통 사람이 읽기에는 조금 어려울 것 같다는 점입니다. 이 많은 지식 중 한두 가지만 썼어도 이야기가 그리 복잡해지지는 않았을 것 같군요.

한국 스릴러 소설의 출간이 활발히 되어가고 작품 수준도 높아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앞으로도 더 좋은 작품이 많이 나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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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곶 미스터리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김예진 옮김 / 검은숲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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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러리 퀸의 국명 시리즈가 한국에 완역되다니 정말 미스터리 팬으로서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어느덧 9편의 국명 시리즈가 다 되었군요. 국명 시리즈는 작품 하나하나가 다 걸작이며 엘러리 퀸을 “미국 추리소설 그 자체”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시리즈입니다. 그 중 마지막 작품인 마지막 작품인 <스페인 곶 미스터리>의 리뷰를 올립니다.

 

한적한 해변의 ‘스페인 곶’이라 불리는 곳에 휴가를 떠난 엘러리 퀸이 그곳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에 말려들게 되면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 작품이죠. ‘스페인 곶’에는 어느 수수께끼의 대부호가 저택을 짓고 그곳에서 가족과 하인들만 데리고 살고 있으며 어느 날 그의 집에 많은 사람들이 초대된 가운데, 그 부호의 딸이 자신의 외삼촌과 길을 나서다가 웬 남자에게 납치당하면서 시작합니다. 엘러리 퀸은 우연히 그녀를 발견하고 구출하지만, 그러는 동안 그 저택에서 웬 남자가 나체에 망토만 걸친 채 시체로 발견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전형적인 고전 추리물의 공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괴짜 대부호, 외딴 곳에 거의 고립된 집(클로즈드 서클은 아니지만요), 그 집과 관련된 이들이 대부분 모여들면서 일어나는 사건 등등, 그리고 또, 엘러리 퀸 때부터 시작된 탐정들의 저주, “가는 곳마다 사건에 휘말린다”는 이야기까지 말입니다. 서문에 봐도 엘러리 퀸을 저택에 초대할까 말까 망설인다는 언급이 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전형적인 만큼 무리 없이 재미있게 볼 수 있습니다. 엘러리 퀸 특유의 소거법을 통한 사건 해결은 여전하며 마지막 반전도 훌륭하니까요. 더욱이 해설에도 나와 있지만 기존의 시리즈와는 달리 이번 사건은 범인의 동기가 무엇보다 중시되며 논리에다 이야기의 깊이가 더해졌습니다.

이렇게 올해 국명 시리즈 전권을 다 보게 되다니 정말 기쁩니다. 엘러리 퀸은 당시 반 다인이 발표하는 작품마다 ‘~살인사건’이라는 제목을 붙이자 자신도 ‘~미스터리’라 이름을 붙였다고 하죠. 훗날 엘러리 퀸 연구에 보면 국명 시리즈에는 아홉 편 외에도 <일본 부채 미스터리>(당시 대일 감정 때문에 <사이의 문>이라는 제목으로 바꿔 출간됨), <인디언 클럽 미스터리>(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비슷한 플롯 때문에 접게 됨), <스웨덴 성냥 미스터리>(<중간지점의 집>의 해설에 나오는 제목, 왜 국명 시리즈가 아닌지는 모름) 등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국명 시리즈 후에도 엘러리 퀸은 애거서 크리스티 못지않은 다작을 하였지요. 물론 각 작품마다 퀸 특유의 논리와 지성이 빛납니다.

엘러리 퀸의 작품은 본격, 고전, 논리를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앞으로 그의 작품이 더욱 많이 출간된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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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복 세이초 월드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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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모토 세이초의 단편집 중 초기 걸작을 모은 <잠복>을 읽었습니다. 읽는 내내 역시 마쓰모토 세이초는 대단한 작가라는 생각을 다시 할 수 있었습니다.

<얼굴>: 살인을 저지른 범인이 사건을 은폐하기 위하여 증인을 다시 살해하려고 하면서 생기는 일을 범인과 증인의 시점을 교차해 가며 다루고 있습니다. 작품이 의외로 평화롭게 흘러간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막판에 역시 반전이 있더군요.

<잠복>: 마쓰모토의 첫 단편이지요, 미스터리 자체보다는 형사의 눈으로 본 사건 관계자들의 애환이 더욱 눈에 띄었습니다.

<귀축>: 어느 인쇄공이 자신의 인쇄소를 차린 뒤 사업이 잘 되었다가 우연히 만난 여자와 바람을 피우기 시작하면서 생기는 몰락 이야기를 간결히 다루고 있습니다. 역시 바람이란 피워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일깨워 준다고 할까요, 하하하.

<투영>: 한 신문기자가 시골로 이사한 뒤 지방 신문에 취직했다가 살인 사건을 취재하고 결국 범인을 밝혀내기까지의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사회파 추리소설의 대부라 하지만 이 작품은 본격 추리물로서도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목소리>: 우연히 살인범의 목소리를 듣게 된 전화 교환수와 그녀가 살해되면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범인은 처음에 나타나지만 이 작품은 ‘누가’보다는 ‘어떻게’에 중점을 두어 범인의 알리바이 확보 수단을 밝혀내는 데 있습니다.

<지방 신문을 구독하는 여자>: 지방 신문을 구독하다가 갑자기 중단한 여인과 어느 살인 사건의 연관성을 밝혀내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막판 반전이 그리 새롭지는 않았지만 범인의 마지막 자존심은 약간 동정이 가더군요.

<일 년 반만 기다려>: 가정 폭력의 피해자가 된 한 여인의 이야기를 르포처럼 자세히 쓴 작품입니다. 더욱이 마지막 반전은 이 단편집 수록 작품 중에서도 최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카르네아데스의 널>: 한 남자의 몰락 이야기가 생생히 묘사된 작품입니다.

 

1955년작 <잠복>을 비롯하여 1957년 이전에 발표된 초기작인 만큼 사회파보다는 본격 추리물로서의 성격을 띈 작품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단편인데도 한 작품에서 사건 관계자 모두의 사연과 인간성을 군더더기 없이 표현해 낸 마쓰모토 세이초의 솜씨에는 정말 감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이 이번에 많이 소개되어 정말 기쁩니다. 앞으로도 좋은 반응이 있으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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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와 런던 미라 살인사건
시마다 소지 지음, 김소영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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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다 소지의 셜록 홈즈 페스티시라니, 의외였습니다. 어느 작품에서인가 시마다는 미타라이 기요시의 입을 통해 홈즈를 상당히 비하하였죠. 그런데 그래서 그런지 오히려 더욱 끌리더군요.

 내용은 간단합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도련님> 등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통하는 나쓰메 소세키가 1902년 런던 유학 시절에 자신의 주변에서 계속 이상한 소리가 들리자 셜록 홈즈에게 사건을 의뢰하러 갔다가, 어느 저택에서 여주인의 남동생이 중국에서 가져온 유물의 저주로 인하여 완전히 말라서 미라처럼 되어 죽는, 기괴한 살인 사건을 접하게 되고 홈즈와 함께 사건 해결에 나선다는 내용입니다. 그 때문에 이 작품은 나쓰메 소세키와 왓슨이 각 장마다 번갈아가며 서술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글쎄요, 뭐라고 하면 좋을지, 홈즈의 팬으로서 보기에는 불편한 언급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홈즈의 라이벌이자 천재 범죄자인 모리어티 교수는 원래 존재하지도 않는 인물로 홈즈의 망상이고, 홈즈는 중증의 피해망상증 환자로서 홈즈의 술수 때문에 왓슨이 몇 번이나 이혼하고, 홈즈 특유의 프로파일링은 번번이 빗나가는데다가 홈즈가 도저히 말도 안되는 변장을 해 가며 민폐를 끼치는 등의 서술이죠.

 왓슨의 눈으로 서술된 장을 보면 왓슨이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쓰메와는 다른 서술을 합니다. 나쓰메의 언급대로라면 왓슨이 결코 홈즈에 대해 좋게 쓸 이유가 없는데 말이죠. 그 자세한 사정은 차치하고 사건 구조만으로 본다면, 앞서 언급한 홈즈 팬으로서의 불편함만 감수한다면 틀림없이 재미있게 볼 수 있습니다. 살인 사건은 단 1회 일어나지만 신본격의 명수 시마다 소지답게 깨끗한 트릭과 마지막 반전을 통하여 결국 사건을 해결하게 되지요. 뿐만 아니라 나쓰메가 고양이가 된 사연도 간단하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나쓰메 소세키와 홈즈에게 모두 관심이 있고, 특히 본격 추리소설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역시 시마다 소지의 작품인만큼 추리하는 재미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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