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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게 말걸기
대니얼 고틀립 지음, 노지양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책을 읽으며 저는 참 많은 생각을 합니다. 저는 원래 착한 책을 좋아하지 않아요. 입바른 말을 하는 책은 가증스럽기도 하고 우습기도 해서 탈선청소년처럼 '췟'하며 던져버리기 일쑤지요. (저는 원래 좀 비뚤어진 사람입니다. ^^;) 이 책도 착하기만 한 책인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 고틀립 할아버지가 하는 말은 뭐랄까 가슴에 무척 와닿습니다. 탈선을 일삼던 학생이 진실한 선생님이 하는 사랑의 말에 감화 받았다고 해야할까요. 하하하.
아무튼 이 할아버지의 글은 매우 진솔합니다. 진심, 진솔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어울리는 글이 저에게 책으로 와서 감사하다는 마음까지 듭니다. 참 많은 책들은 우리를 채직질합니다. 이기라고 하고, 나빠지라고 하며, 성공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성공하면 행복해질까요? 더 외로워지거나 허무해지는 것은 아닐까요. 무엇인가에 열정을 두는 것은 행복입니다. 하지만 수단과 목적이 바뀌는 것은 짧은 인생에 있어 자신에게 죄를 짓는 것 같아요. 소크라테스 때부터 철학자들이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지 많은 토론을 했지만 많은 이들이 인생의 목표는 행복이라고 말했잖아요. '행복'을 위해서 우리는 참 많은 노력을 하지만 고틀립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새로운 행복에 이르는 법을 알려줍니다. 가령 이런 이야기들이에요.
우리는 늘 만약 -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행복하겠다고 생각하며 인생을 살아간다. 각자 빈칸을 채워보자. 더 많은 돈, 말 잘 듣는 아이들, 완벽한 배우자, 빼어난 외모 등등. 나 또한 그랬다. 사실 내가 볼 때 이런 바람은 사람이라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나는 내가 잘났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앞서 말했듯 학창 시절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부끄럽고 속상할 때가 많았다. 게다가 나는 유난히 명석하고 매력적이어서 언제 어디서나 인기를 독차지하는 누나의 남동생으로 자랐다. 나도 외톨이는 아니었지만 또래에 비해 키가 너무 작다는 데 내내 열등감을 느꼈다. 학교 성적은 좋지 않았고 어른들은 내가 게으르다고 속단했다. 이따금 나는 남몰래 난 원래 덜 떨어진 인간이며 남들에 비해 뭔가 부족한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래서 나는 슈퍼우먼 같은 누나나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는 우등생 친구들과는 다른 부류라고 느꼈다. 항상 키가 더 크다면, 힘이 더 세다면, 머리가 더 좋다면 훨씬 더 행복해질 거라고 중얼거렸다.
나중에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는 내 업무 성과를 인정받는다면, 더 높은 연봉을 받는다면,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한다면 주류에 속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이룬 후에도 나는 그 안에 진정으로 속했다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고삐를 더 세게 당겼다.
내 목이 부러진 후에, 즉 내가 이제부터는 제아무리 용을 써도 잘난 사람 무리에 편입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서 반쯤 포기한 후에, 나는 이 사회에 잘 적응해 주목받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깊은 절망과 고독 속에 빠져 있던 나는 마치 가족을 찾아 헤매는 길 잃은 어린아이 같은 심정으로 나 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니란 것을 증명해야 했다.
관찰 결과는 이랬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 똑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 달라지기 위해, 더 나아지기 위해 자신을 괴롭히며 아등바등 살고 있었던 것이다.
앞서 등장한 불쌍한 재단사 맥스 이야기를 보면 알겠지만 변화가 언제나 좋은 것만은 아니다. 가끔은 더이상 나를 바꾸지 않기로 결심했을 때 가장 큰 변화가 찾아오기도 한다.
심리학자인 타라 브라크는 <철저한 인정>이란 책에서 자신의 환자였던 한 중년 여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녀는 병든 어머니를 간호하고 있었다. 마침내 임종의 순간이 가까웠을 때 어머니가 딸의 눈을 보며 말한다. "나는 평생 동안 내가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며 살았단다. 아, 내가 얼마나 인생을 낭비한 건지!" 이 말을 떠올리며 브라크는 이렇게 쓴다. "그 말은 어머니가 딸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이런 이야기들을 읽을 때 저는 버스 안이었고, 엄청난 피곤이 몰려오는 밤이었고, 기분이 들떠있거나 우울할 때였습니다. 그야말로 그럴 때 저는 심각하거나 재미없는 책을 읽게 되면 몇 장 못 넘기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고틀립 할아버지의 이 책은 어떨 때라도 책장을 자꾸 넘기게 했습니다. 힘들다고 말하지 않았는데 내 모습이 힘들어보인다며 알아서 어깨를 두드려주는 멘토선생님을 만난 느낌이라고 해야할까요. 그냥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게 만드는 고마움이요. 너무 피곤하거나 지치면 누가 건드리기만해도 눈물이 나잖아요. 저는 그렇거든요. 그냥 잘 울어요. 고틀립 할아버지의 책은 이런 바보 같은 저를 토닥여주어서 너무 고마운 책입니다. 옆에 두고 표지만 봐도 감사해요. 자꾸 쓰다듬게 됩니다. 고마워요. 고마워요.